[교통] 신호 위반 오토바이와 비접촉사고 내고 도주한 택시기사 무죄
[교통] 신호 위반 오토바이와 비접촉사고 내고 도주한 택시기사 무죄
  • 기사출고 2021.04.06 08: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지법] '신뢰의 원칙' 적용…"주의의무 인정 어려워"

택시기사 A(65)씨는 2020년 1월 3일 오후 11시 5분쯤 쏘나타 택시를 운전하여 대구 달서구 본리동에 있는 편도 3차로 도로를 2차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진행차로 전방의 교차로 신호등이 적색 정지신호인 것을 확인하고 유턴을 하게 되었는데, 반대 1차로를 따라 진행 중이던 B(17)군의 오토바이가 택시를 피하기 위해 급히 차로를 변경하면서 반대 3차로의 도로가에 불법으로 주차되어 있던 인피니티 QX50 승용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이 사고로 B군이 전치 약 14주의 절구의 골절 등의 상해를, 오토바이 동승자(17)가 전치 약 7주의 오른쪽 발부위 골절 등의 상해를 각각 입고 오토바이가 손괴되고 인피니티 승용차가 수리비 5,412,120원 상당이 들 정도로 손괴되었으나, A씨는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도주했다가 특가법상 도주치상과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됐다.

B군은 뒷자리에 동승자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적색 정지신호임에도 이를 무시하고 적어도 시속 약 80~90km의 속도(제한속도 시속 50km 이하)로 1차로를 따라 직진하여 오다가 뒤늦게 A의 차량을 발견하고, 급하게 오른쪽으로 오토바이의 방향을 틀어 차로를 변경하면서 인피니티 승용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즉 이 교통사고는 A씨가 운전하던 차량과 B군이 운전하던 오토바이 사이에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소위 비접촉사고였다. 

국민참여재판(2020고합411)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서 대구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상오 부장판사)는 3월 30일 '신뢰의 원칙'을 적용,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교통사고는 피해자 B의 신호위반, 과속 및 운전미숙, 지정차로 미준수 등의 과실과 (인피니티) 승용차를 승용차를 불법 주차한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피고인에게 반대차로에서 오토바이가 정지신호를 위반하고 과속하는 등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진행하여 올 것까지 예상하여 운전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와 관련하여서는 속칭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어서 운전자는 타인 역시 교통법규를 준수하리라 신뢰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타인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경우를 예상하여 그에 대한 방어조치를 취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에게 유턴을 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면 이를 전제로 하는 인과관계 인정 여부 및 도주의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이 적색 정지신호로 변경되자마자 급하게 유턴을 시도하거나 차선을 변경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피고인의 진행 방향 앞 쪽에 정지신호에 따라 정차하여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이 2대 정도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적색 신호로 변경되고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유턴구역을 통하여 유턴을 시도하였음을 알 수 있고, 달리 피고인에게 유턴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원인이 될 만한 도로교통법상의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의 입장에서 B가 자신의 진행차로 신호등이 적색 정지신호임에도 이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계속 직진하여 피고인이 유턴하려는 반대차로 1차로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정황은 없었고, 더욱이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50km 이하임에도 B는 위 제한속도를 초과하여 적어도 시속 약 80~90km로 빠르게 진행하였는데, 시속 80km로 진행할 경우 1초당 이동거리가 약 22m 상당이므로 피해자 B의 오토바이가 전방 교차로에서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 지점에 도달하기까지는 불과 몇 초가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B가 운전하는 오토바이와의 충돌을 방지하거나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B는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를 받지 아니한 상태로, B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2019년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한 이래 사고 발생시까지 운전 경험이 약 5~7회 정도에 불과하여 운전 실력이 미숙하였고, 차선 변경이나 제동장치 조작이 능숙하지 아니하였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6조 제1항 별표 9에 의하면, 고속도로 외의 도로에서 원동기장치자전거는 오른쪽 차로로 통행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의 경우 B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는 3차로로 통행하였어야 하고, 최소한 1차로로 통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그런데 B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위 피해자(B)는 신호를 위반하여 빠르게 교차로를 통과하기 위하여 1차로를 따라 진행하여 위와 같은 차로에 따른 통행차의 기준을 준수하지 아니하였고, B 진행차로의 1차로는 좌회전 차로에 해당하는데, 위 피해자는 좌회전 차량이 아님에도 1차로를 따라 직진하였다"고 덧붙였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도 전원이 만장일치로 무죄의견을 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