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칼럼으로 말한다'
'판사들 칼럼으로 말한다'
  • 기사출고 2007.06.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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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김진원 기자
행여 법관이 판결외의 다른 형태로 소회나 의견을 밝히거나 하면, 그 법관의 성향 등을 가늠할 수 있어 재판의 중립,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오래된 법언(法彦)으로 기자는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의 기억을 되살려 보아도, 판사들은 외부 매체 등엔 글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판사의 글이라면 판결말고는 학술논문 등에서 읽은 게 대부분이다. 판결을 내리기까지 고뇌가 적지 않았지 싶지만, 판사의 일단의 심정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조그마한 글조차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법원 내부 소식지 등에는 더러 비슷한 성격의 글이 실리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부용일뿐이다. 법원 밖의 일반인들로선 접근이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는 판사들의 잔잔한 소회를 접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6월25일부터 홈페이지(seoul.scourt.go.kr)에 '법원칼럼' 난을 신설하고, 판사들의 칼럼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판사와 직원들이 법정이나 민원창구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뇌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는 법과 사람 이야기 ▲일상생활이나 재판절차에서 알아두면 좋은 법률상식과 절차의 소개 ▲법원의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과 진척사항 등 분쟁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법원과 법원사람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전하겠다는 게 법원칼럼을 개설한 이주흥 법원장의 발문(發文)이다.

이 원장은 "더 이상 '판결로만 말한다'는 격언에 안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법원의 실상과 법원 구성원들의 생각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법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지법 판사들이 칼럼란에 올린 4편의 글을 보니, 이 원장이 소개한 대로 법대(法臺)에 앉아 당사자를 바라보는 판사들의 진솔한 마음이 손에 잡히는 듯 하다. 송사에 깃든 안타까운 사연엔 가슴찡한 감동도 묻어난다.

무엇보다도 판결로만 말하지 않는데서 초래될 지 모르는 부작용의 우려는 접어도 될 지 싶다.

한 판사는 차용증을 받아놓지 않았다가 대여금소송에서 진 식당 아주머니의 소박한 법감정을 소개하며, 왜 계약서를 쓰고, 차용증을 챙겨야 하는지를 칼럼으로 풀어냈다. 또다른 판사는 직권으로 정신감정을 의뢰해 벌금형을 선고하고 풀어 준 장애를 앓고 있는 강원도 청년의 딱한 사정을 회고하며, 그 청년이 농사지어 보낸다고 한 감자가 기다려진다고 적고 있다.

법원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민초들에게 사법부는 여전히 높다란 담 너머의 세계고, 판사들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영감님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원장의 바람처럼 법원칼럼 개설이 국민과 법원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인식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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