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Law Talk] CSR, 컴플라이언스 넘어 ESG의 시대로
[리걸타임즈 Law Talk] CSR, 컴플라이언스 넘어 ESG의 시대로
  • 기사출고 2020.12.3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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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변호사]

바야흐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기업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다. 오랫동안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와 주주가치 실현이었다. 그런데 시장에서부터 커다란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8월 애플과 아마존 등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180여 곳의 CEO들이 참여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주주를 위한 눈앞의 이윤만 추구하지 않고 근로자와 고객, 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근본적 책무를 이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주주자본주의의 종식, 지속가능한 부와 공정한 번영, 포용적 자본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올해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비즈니스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법 준수는 시작에 불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제기되었다. 그리고 윤리경영, 준법경영으로 이어졌다. 준법경영(Compliance)은 지속가능한 기업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법을 준수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법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말도 있다. 기업이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성택 변호사
◇임성택 변호사

CSR은 계속 진화하였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소극적 측면'에서 기업이 공유가치 또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적극적 측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CSV(공유가치 창출, Creating Shared Value) 또는 SV(사회적 가치, Social Value)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오래다. 국내 기업 중에도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와 함께 동시에 추구한다는 선언을 한 기업들이 있고, 해당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여 재무정보와 함께 공시하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그런데 CSR은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고 준법경영을 하여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때로는 사회공헌과 혼동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흐름 바꾸는 ESG

이른바 ESG가 자본주의를 바꾸는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일컫는 말이다. ESG는 투자의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ESG와 같은 비재무적 지표를 고려하여 투자하여야 한다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재무적인 요소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도 기업가치 또는 지속가능성에 결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ESG를 투자자들이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ESG 관련 지표를 공시하거나 보고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ESG가 기업가치를 높이는데도 핵심적 지표가 되고 있다.

과거의 담론과는 달리 ESG는 시장에서부터의 변화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UN책임투자원칙(PRI)에 연기금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이제 ESG를 외면하는 회사는 투자를 받기 어렵거나 기존에 받은 투자도 철수될 위기에 직면했다. 실제로 최근 네덜란드 연기금은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전 주식 790억원어치를 매각했다. 금융기관들이 ESG를 고려하게 되면서 ESG를 외면하면 대출 등 자금조달도 어렵게 되었다. 금전적 신용뿐 아니라 ESG와 같은 사회적 신용이 중요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거래처의 변화도 뚜렷하다. ESG를 고려하여 기업운영을 하는 이른바 '착한 기업'은 소비자의 각광을 받고, ESG와 관련한 사건 · 사고가 일어난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되었다. 거래관계의 변화도 뚜렷하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재생에너지만으로 기업운영을 하겠다는 기업들의 선언인데 여기에 참여한 기업들은 공급망에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 구글 등과 거래하는 한국기업들도 이러한 요구를 받고 있다.

S(사회, Social)의 영역으로 인권경영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서구에서는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과거 인권은 국가나 시민단체의 관심이었으나, 이제는 기업과 인권이 연결되고 있다. 오늘날 기업은 국가보다도 더 밀접하게 개인의 삶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UN)은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만들고, OECD는 '기업과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기업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원칙에 따라 인권을 존중해야 하고,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책과 절차를 만들어야 하며, 나아가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수단을 갖추어야 한다는 원칙은 국제규범이 되고 있다.

日 공적기금, 여성 인덱스 만들어

지배구조의 변화도 뚜렷하다. 형식화된 주주총회, 거수기가 되어버린 이사회, 지배주주가 지배하는 회사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ESG의 투자요소로 여성 인덱스라는 것을 만들었다. 기업의 여성 비율, 여성 신입직원 채용 비율, 여성의 임원 비율 등을 지표로 하여 투자 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요소는 일본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담론이 책무나 책임의 측면에서 제기되었다면, ESG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담론이라는 차이가 있다. ESG를 투자를 받기 위한 포장이나 홍보로만 여기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이윤 추구, 즉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ESG를 기업의 조직, 문화, 사업 등에서 관철하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기업은 가장 많은 부를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기후변화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양극화와 고령화, 저출산 등은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국제화된 지구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시장에서부터 변화를 불러온 ESG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처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ESG가 지구를 구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걸어 본다.

임성택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stlim@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