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 소송' 안방 패소 이유는 '사기에 대한 사기'
'7조원 소송' 안방 패소 이유는 '사기에 대한 사기'
  • 기사출고 2020.12.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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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er 판사, "소유권 사기 소송 당한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의 다자보험(전 안방보험)을 상대로 한 7조원대의 소송에서 변호사 보수 등 소송비용까지 받아내는 완승을 거둔 승소 포인트는 무엇일까.

이 소송의 담당판사인 미 델라웨어 형평법원의 J. Travis Laster 판사는 11월 30일 매매계약을 이행해 매매대금 잔금을 지급하고 소유권을 넘겨가라는 다자 측의 청구는 기각하고, 반대로 다자 측은 미래에셋이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 계약금 약 7,000억원에 이자를 더해 반환하고, 미국내 고급 호텔 15개를 인수하는 계약 체결과정에서 미래에셋이 지출한 변호사비용 등 368만 5,000달러(한화 약 40억원), 이번 소송에 지출된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도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 계약금 외에 다자 측이 부담해야 할 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의 미래에셋 측 대리인은 미국의 유명한 소송 로펌인 퀸 엠마누엘(Quinn Emanuel)과 한국의 '국제분쟁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피터앤김으로, 약 7개월간 재판을 진행한 두 로펌에 지급된 또는 지급될 변호사 보수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퀸 엠마뉴엘과 피터앤김은 소송 초기 미래에셋을 대리한 설리번앤크롬웰(Sullivan & Cromwell)과 그린버그 트라우리그(Greenberg Traurig)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e디스커버리와 데포지션(deposition), 8월 하순 5일간 진행된 화상변론, 이후 10월에 진행된 Laster 판사 앞에서의 구두변론(oral closing) 등 지난 11월 30일 판결 선고까지 약 7개월에 걸쳐 다자 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 다자보험과의 7조원대의 국제소송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사진은 미래에셋이 인수하려던 호텔 중 하나인 뉴욕의 JW Marriott Essex House. 사진=홈페이지 캡처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 다자보험과의 7조원대의 국제소송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사진은 미래에셋이 인수하려던 호텔 중 하나인 뉴욕의 JW Marriott Essex House. 사진=홈페이지 캡처

리걸타임즈가 판결문 등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래에셋의 승소, 반대로 표현하면 다자 측의 패소는 매매목적물인 15개 호텔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90여개의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계약종료 직전까지 숨긴, Laster 판사의 표현에 따르면, 다자 측의 '사기행위(Fraud)'가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Laster 판사는 "(매매계약 체결 및 이번 소송에서 다자 측을 대리한) 깁슨 던(Gibson Dunn & Crutcher)과 다자가 궁극적으로 15개 호텔을 파는 7조원의 딜을 무산시킨 이슈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좀 거칠게 표현하면 그들은 사기에 대해 사기를 친 것(they committed fraud about fraud)"이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보통 재판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면 재판부로부터 어느 정도 동정(sympathy)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자 측도 15개 호텔에 대해 제기된 소유권 소송을 사기라고 치부하고 재판에서도 그렇게 주장했지만, 미래에셋과의 거래과정에서 자신들이 당한 사기행위를 감추었다가 Laster 판사로부터 '사기에 대한 사기'라는 지적과 함께 패소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깁슨 던은 다자가 15개 호텔을 미래에셋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할 때도 다자 측을 대리했다.

11월 30일에 나온 242쪽에 달하는 소설 분량의 판결문에서, Laster 판사는 "돌이켜보면, 이번 딜의 궁극적인 실패는 사기행위에 대한 정보 공개를 보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액션을 취하는 것을 지연시킨 안방과 깁슨 던의 결정에 연결될 수 있다(With the benefit of hindsight, the ultimate failure of the transaction can be traced to Anbang and Gibson Dunn's decisions to withhold information about the fraudulent deeds and to delay taking action to remedy the problem)"고 말했다.

2008년 이래 안방 측과의 수많은 상표분쟁에 연루되고 2015년 미 특허청에 'An Bang Group'이란 상표를 등록하기도 한 Hai Bin Zhou는 2018년 9월부터 미래에셋이 인수하기로 한 다자의 호텔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실이 미래에셋의 호텔 매수에 자금을 조달하기로 한 선순위 대주인 골드만삭스의 대리인(Cleary Gottlieb)에 의해 발견되어 소유권 이슈가 표면화되었을 때, 깁슨 던의 변호사가 호텔 매매계약에서 매수인인 미래에셋을 대리한 그린버그 트라우리그의 변호사에게 한 말은 "전과 기록이 있는 20대의 우버 택시 기사가 호텔들에 대해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Laster 판사는 재판에서  Zhou와 그 관련자들을 '상표 괴물(trademark trolls)'이라고 부르고 이들이 호텔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낸 것에 빗대 '부동산 괴물(real estate trolls)'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깁슨 던에선 Zhou와 그의 계열사들이 이러한 사기 소송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대응이 불충분했다고 Laster 판사는 결론을 내렸다.

Laster 판사는 판결문에서, "안방과 깁슨 던은 자신들이 사기 소송을 폭로하는 방법과 시기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정보의 공개를 보류했고, 그들은, 딜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호텔을 사려는 최종 후보들이 딜이 깨지지 않도록 너무 많은 질문을 할 생각이 없는 마지막 순간에 사기 소송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기로 계획한 것이 분명하다(Anbang and Gibson Dunn withheld information about the fraudulent deeds so that they could choose the manner and timing of the disclosure. It is apparent based on how events transpired that they planned to reveal the information to the final bidders at the eleventh hour, when deal momentum would be at its peak and the finalists would not be inclined to ask too many questions lest they lose the deal)"고 적었다. Laster 판사는 안방이 매매계약에서 충분한 권원보험이 확보되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Laster 판사는 나아가 미래에셋 측 변호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매매목적물인 호텔들이 통상적인 사업방식(ordinary course of business)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도 입증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팬데믹 자체는 매매계약에 포함된, 매수인이 계약을 종결짓지 않고 계약이행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material adverse event'의 예외에 해당하는 자연재해(natural disasters and calamities)라고 보았다. 즉, 코로나19 팬데믹은 계약해제의 이유가 될 수 없고, 매도인 측에서 매매목적물에 무더기로 제기된 소유권 소송을 해결하지 않고 숨겼고 호텔들이 통상적인 사업방식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미래에셋이 7조원이 넘는 계약에서 걸어 나갈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셈이다. 안방 측의 사기성이 인정되어 변호사비용과 계약 체결과 관련된 비용의 배상까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매수인에게 계약해제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로, 델라웨어 법원에서도 이번 판결이 매수인의 후퇴를 허락한 두 번째 판결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미래에셋 대 안방보험과의 7조원대 소송에서 미래에셋 측 대리인으로 활약한 퀸 엠마누엘 뉴욕사무소의 Michael B. Carlinsky와 존 리 홍콩사무소 대표, 피터앤김의 김갑유 변호사
◇왼쪽부터 미래에셋 대 안방보험과의 7조원대 소송에서 미래에셋 측 대리인으로 활약한 퀸 엠마누엘 뉴욕사무소의 Michael B. Carlinsky와 존 리 홍콩사무소 대표, 피터앤김의 김갑유 변호사

이번 소송은 미국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한국과 중국의 기업이 관련된 국제소송으로, 특히 대부분의 증인들이 중국에 있고, 많은 서류가 중국어로 작성되어 있어 미래에셋 측 변호사들의 어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19에 데포지션이 종종 통역을 동원하여, 원격으로 화상으로 이루어졌고, 시차 때문에 미국 동부시간으로 저녁에 시작된 데포지션이 밤을 새우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김갑유 변호사 등 피터앤김의 변호사들도 미 동부시간에 맞춰 한밤중에 회의실에 모여 퀸 엠마누엘의 변호사들과 수시로 화상 전략회의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제기된 빅소송 중 하나인 이번 소송의 미래에셋 측 대리인 중에선 특히 주변호사(lead counsel)로 소송을 이끈 퀸 엠마누엘 뉴욕사무소의 Michael B. Carlinsky와 옥스퍼드대를 나온 한국계 영국계 변호사인 존 리(John Rhie) 퀸 엠마누엘 홍콩사무소 대표, 피터앤김의 대표로 한국에서 진행된 e디스커버리는 물론 8월 하순에 열린 변론에 직접 참여해 구두진술과 증인신문을 진행한,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보유한 김갑유 변호사 등의 활약이 컸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