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입주민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한 아파트 관리소장...산재"
[노동] "입주민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한 아파트 관리소장...산재"
  • 기사출고 2020.10.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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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세 유발 · 악화"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9월 18일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남 양산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리소장 A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9구합62826)에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7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부분의 세대를 매입하여 국민임대아파트로 운영되고 있는, 5개동 625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7년 7월 20일 오후 4시 56분쯤 소속 회사 대표에게 '사장님 죄송합니다. 몸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출근하기 힘듭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대표로부터 '내일부터 당당 되겠습니까. 내일 금요일이니까 연차든 휴가든 며칠 쉬고 이야기하시죠'라는 답장을 받은 다음 오후 5시쯤 1시간 일찍 퇴근하고 다음날 아파트에 출근하지 않았다. A씨는 그러나 토요일인 7월 22일 오전 3시 30분쯤 산책하고 오겠다고 하면서 외출한 뒤 자택 부근 산책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A씨의 배우자는 "A씨는 통장과 부녀회장 등 입주민들 간의 갈등 중재, 입주민들의 민원처리 문제로 장기간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사망 직전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층간소음 민원처리와 관련하여 부당하고 모욕적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는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2015년 11월 이 아파트에 입주하여 2017년 10월 퇴거한 B씨는 아파트에 입주한 이후 A씨가 사망할 때까지 약 1년 8개월간 관리사무소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 접수 및 처리부에 기록되어 있는 민원 내역도 A씨 사망 전까지 7회에 이르러 다른 입주민들에 비해 상당히 반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외에도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민원을 제기하였고 보통 2주 이상 해당 민원의 해결을 요구했다. 민원의 내용도 주로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어서 A씨로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웠는데, 그밖에도 주차장에 CCTV 사각지대가 있는데 자신의 차량이 사각지대에서 훼손되면 누가 책임질 것이라고 항의하는 등 합리적인 민원 제기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재판부는 "B는 층간소음 문제로 LH에 직접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였고 LH에서도 해당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주택 이전을 제안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파트의 관리업무에 관하여 LH의 감독과 지시를 받는 A의 입장에서 이러한 민원의 존재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B는 2017. 5. 3.부터 4회에 걸쳐 근무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에 A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하여 언성을 높여 민원을 제기한 바 있고, 특히 2017. 7. 9.(일요일)에는 07:16경에 17분 15초 동안이나 통화를 하였는데, B가 그 날 새벽 04:30경 관리사무소에 이미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위 통화에서 민원 처리에 관하여 강하게 항의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B는 2017. 7. 20. 14:00경부터 1시간 동안 공개된 장소에서 A에게 일방적으로 질책과 폭언을 하였고, B가 1975년생으로 A보다 나이가 10세 적은 점, A의 잘못이 아니라 LH의 업무처리에 관한 문제를 A에게 항의한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위와 같은 사건은 A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는 2017. 7. 20. B와의 대화를 마치자 바로 회사 대표에게 사직의 의사를 표시하였고, 회사 대표가 사직을 만류하였음에도 관리과장에게 업무를 인계해주고 일찍 퇴근한 후 다음날 출근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다음날 새벽 자살에 이르렀다"며 "원고의 진술에 의하면 A는 퇴근 후 다음날까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였고 잠도 자지 못하였으며, 계속 불안감을 호소하였는데, 위와 같은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면, 결국 2017. 7. 20. B의 민원 제기가 A의 사망 전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