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펌 경쟁력 녹록하지 않아"
"한국 로펌 경쟁력 녹록하지 않아"
  • 기사출고 2007.04.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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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로펌에 떨어진다' 지적에 변호사들 이의 제기국제딜서 主카운셀 활약…3국간 법률서비스 진출도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가 최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내 법률시장 개방을 둘러싼 일련의 언론 보도내용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았다.

◇김진원 기자
"시장개방을 앞두고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충고는 고맙지만, 한국 로펌, 한국변호사가 미국 로펌, 미국변호사에 비해 능력이나 서비스가 턱없이 떨어진다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엔 결코 동의할 수 없고, 불쾌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예컨대, 자동차 시장 개방을 앞두고 포드나 GM에 비해 현대자동차가 만든 제품이 전혀 경쟁력이 없다고 깍아내리면 좋아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시장개방을 앞두고 미국 로펌, 미국변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언론이 이용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일종의 음모론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요컨대 시장개방을 앞두고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언론에서 국내 로펌의 업무수준이 외국 로펌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면, 국내 진출을 앞둔 외국 로펌의 마케팅 활동을 도와주는 일 밖에 더 되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또 "(한국 로펌들의 경쟁력은) 실제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중소로펌에 근무하는 한 미국변호사도 이같은 지적에 상당한 공감을 나타냈다.

외국로펌에서도 상당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 미국변호사는 "한국변호사들은 실력이 모자라지도, 서비스가 떨어지지도 않는다"며, "한국로펌의 경쟁력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잘 드러내 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국내 법률시장 개방의 파장과 관련해선 이 두 변호사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변호사 유능해 잘 대처해 나갈 것"

이미 한미FTA협상이 시작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난해 가을 기자가 만난 한 주요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FTA전망과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적으로는 한미FTA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내가 외국 로펌에서 근무해 봐서 잘 아는데), 시장이 열리더라도 한국변호사들이 워낙 유능하기 때문에 잘 대처해 나가리라 생각한다"고 매우 고무적으로 얘기했다. 그의 부탁도 있고 해서 당시 곧바로 기사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있게 논리를 전개하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던 게 사실이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약 열흘전인 지난 4월11일 대한변협은 국내 10대 로펌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미FTA타결에 따른 국내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변협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법률시장이 열리면 일부 기업들이 법률자문사를 현재의 국내 로펌에서 외국 로펌으로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변협은 이 자료에서 "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경쟁을 하는 분야는 순전히 외국법에만 관련된 분야가 아니라 국내법 또는 국내법과 외국법이 혼재된 사건에 관하여 경쟁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점에 대한 기업들의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법에 관해서는 국내 로펌이 훨씬 더 전문가이며, 경쟁력이 높다는 점에 대해 홍보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경제단체장들을 직접 방문해 이 점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시장개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변협이 홍보를 강화하기로 다짐하고 나선 것이다.

변협은 국내법 관련 사항에 대한 경쟁이라는 전제를 붙여 설명하고 있지만, 로펌 관계자들 중엔 이를 떠나 일반적인 로펌 프랙티스(practice)에 있어서 국내 로펌이 외국 로펌에 전혀 밀릴 게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얼마전 외국에서 발행되는 한 유명 법률잡지에서 아시아 지역 '올해의 딜'로 선정된 의정부 경전철 사업의 경우 법무법인 광장이 영국 로펌인 링크레이터스((Linklaters)와 함께 공동법률자문사로 선정됐다. 광장이 금융조달 등 여러 법률자문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수행하고 있어 더욱 의미있다는 게 광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국 로펌과 함께 참여한 국제적인 딜에서 한국 로펌이 '주 카운셀(lead counsel)'이 돼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한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의정부 경전철 사업은 모두 4750억원이 들어가는 민간투자사업으로 5월 착공에 들어간다.

"한국 로펌 주도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 추진"

연장선상에서 "시장이 열릴 경우 외국 로펌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는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를 적극 추진할 생각"이라는 한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의 말도 의미있게 들린다. 그만큼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 있는 계획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기업의 동남아 진출사업 등을 맡아 법률자문을 제공해 오고 있는 김&장법률사무소의 사례도 국내 로펌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중 하나로 자주 소개된다. 우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3국간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로펌은 물론 영미계 로펌을 제치고 국내 로펌이 법률자문 용역을 따낸 경우로, 법률서비스의 좋은 수출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 최고의 로펌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장의 뛰어난 경쟁력이 밑바탕이 됐음은 물론일 것이다.

시장이 열리면 어느 로펌이 타격을 받고, 누가 유리할 것이라는 등 말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로펌, 한국변호사들의 경쟁력을 지나치게 과소 평가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미의 대형 로펌들은 변호사 수도 많고, 오랜 역사를 통해 상당한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또 전세계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로펌들도 오래된 곳은 약 반세기의 연륜이 쌓여가고 있으며, 변호사들의 우수한 자질과 업무처리 능력도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법률서비스에 관한 한 일본 로펌이 우리 로펌을 못따라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와관련, 국내 최초의 로펌인 김 · 장 · 리 법률사무소의 최경준 대표변호사가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시장이 열려 외국 로펌이 들어오게 되면, 전문성으로 대표되는 경쟁력과 고객에의 대응 능력 등에 따라 로펌 선택의 승패가 더욱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경쟁력을 갖춘 로펌이라면, 시방개방으로 기존의 파이(pie)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을 높이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국내 로펌중에도 이런 평가를 받는 로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최 변호사의 부연 설명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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