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이름만 빌려준 바지사장은 근로자"
[노동] "이름만 빌려준 바지사장은 근로자"
  • 기사출고 2020.10.1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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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법] "산재 인정해야"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더라도 실제 경영자가 따로 있고, 실제 경영자의 지휘 · 감독을 받아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이른바 '바지사장'은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법 이종문 판사는 9월 9일 전북 임실군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사고로 사망한 A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9구단842)에서 이같이 판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조근원 변호사가 원고를 대리했다.

A씨는 2018년 6월 29일 오후 2시 30분쯤 B유한회사가 시공하는 이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던 중 굴삭기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같은 날 오후 5시쯤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A씨는 B사의 대표이사로서 위 회사의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A씨의 배우자는 "A씨가 B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기는 하나 이 회사의 실제 대표자 및 사업자는 C씨"라고 주장했다.

이 판사는 대법원 판결(2009두1440 등)을 인용,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동법상의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를 말한다'고 규정하는 외에 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보험급여 대상자인 근로자는 오로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의하여 판가름나는 것이고, 그 해당 여부는 그 실질에 있어 그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지, 법인등기부에 임원으로 등기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대표이사로서의 지위가 형식적 ·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여 회사의 대내적인 업무집행권이 없을 뿐 아니라 대외적인 업무집행에 있어서도 등기 명의에 기인하여 그 명의로 집행되는 것일 뿐 그 의사결정권자인 실제 경영자가 따로 있으며, 자신은 단지 실제 경영자로부터 구체적 · 개별적인 지휘 · 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경영성과나 업무성적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수를 지급받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산업재해보상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B사는 설립 당시 C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하다가 2012. 11. 29.부터 C의 배우자, 2016. 8. 23.부터 C의 처남이 대표이사로 등기되었으며, A는 C와 동서지간으로서 2017. 9. 22.부터 위 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었다. B사는 사실상 C가 자본금 전액을 출자하여 설립된 회사로서 C가 설립 이후부터 사실상 경영해 왔고, A가 대표이사로 등기된 이후에도 C가 인사, 자금관리, 세무, 회계 등 경영 전반에 있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A는 B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된 2017. 9. 22. 이전까지 C가 운영하는 또 다른 유한회사에서 노무비 내역 및 작업일보, 현장경비 사용내역 등을 작성하여 C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고, 2017. 9. 22. 이후에도 두 회사의 공사현장을 관리하면서 C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A는 B사에서 위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매월 약 400만원씩을 급여 명목으로 지급받았고, B사는 A에 대한 월 급여액에서 근로소득세 및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공제한 후 지급했다. 

이 판사는 "이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A는 B유한회사의 대표이사로 등기되어 있기는 하나, 그 실질에 있어서는 실제 경영자인 C로부터 구체적 · 개별적인 지휘 · 감독을 받아 근로를 제공하고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수를 지급받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A는 건설기계 운전면허 없이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당하였으나, 무면허운전이라고 하여 곧바로 범죄행위로서 업무수행성을 부정할 수는 없고, 굴삭기를 운전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 현장의 상황과 작업 대상 등에 따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A는 B유한회사의 근로자로서 C의 지시에 따라 위 회사가 시공하는 공사현장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것으로서 A의 업무수행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사고가 A의 무면허운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위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A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