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로펌과 업무제휴 중소로펌서 활발할 듯
외국로펌과 업무제휴 중소로펌서 활발할 듯
  • 기사출고 2007.04.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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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독자생존 방침…광장, 세종 등 대형 로펌 소극적3년후 동업관계로 발전 가능성…로펌들 손익분석 분주
최근 한 대형 로펌이 파트너 회의를 열어 법률시장개방에 따른 대응방안 등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였다. 회의에선 특히 시장이 열리면 외국 로펌과 업무제휴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이 로펌은 그러나 회의결과 업무제휴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이 로펌을 잘 아는 한 관계자가 전했다.

한미FTA가 타결돼 3단계의 법률시장 개방일정이 제시되자 2단계 개방시기에 허용되는 미국 로펌의 국내 분사무소와 국내 로펌과의 업무제휴가 로펌업계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법무부의 설명에 따르면, 업무제휴란 국내법사무와 외국법자문사무가 혼재된 사건에 대한 ▲공동수임 ▲공동사무처리 ▲수익분배가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시장이 열리지 않은 지금도 대형 프로젝트 등의 경우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이 공동 자문사(co-counsel)로 함께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어 업무제휴가 허용된다고 크게 달라질 게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 국내 로펌들은 외국법 관련 사무가 생기면 외국 로펌에 사건을 소개(refer)하고, 외국 로펌들도 클라이언트의 일을 처리하다가 한국법 관련 업무수요가 있으면 한국 로펌에 소개하는 등 서로 업무협조를 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 자문시장 판도 변화에 적지않은 영향'

그러나 업무제휴의 허용이 내포하는 의미는 이런 표면적인 설명을 뛰어 넘는다고 봐야 한다. 국내 로펌과 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가 이뤄질 경우 해당 두 로펌의 비즈니스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고, 그 결과 국내 자문시장의 판도 변화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로펌마다 분주하게 업무제휴의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업무제휴는 3단계 개방시기인 제휴후 3년후 조인트벤처 동업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업무제휴가 한미 합작로펌의 전신쯤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제휴는 이런 점에서도 한국 법률시장에 참여하는 국내외 로펌이라면 관심을 놓을 수 없는 시장개방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우선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국내를 대표하는 토종로펌으로서 이미 독자생존의 방침을 세운 김&장법률사무소를 비롯해 변호사수가 1백명 이상에 이르는 대형 로펌들은 대개 미국 로펌 또는 조만간 FTA협상이 시작되는 유럽의 영국계 로펌 등과의 업무제휴에 소극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김두식 대표 취임이후 경력변호사의 영입 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의 관계자는 "외국의 유명 로펌들과 더욱 공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되, 조직의 통합이나 계약상 제휴 등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했다. 태평양, 광장도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외국의 유명 로펌들과 사건별로 협조하고 있는 대형 로펌들로서는 특정 외국 로펌과 공식적인 업무제휴관계를 맺으면, 이 로펌을 제외한 다른 외국 로펌과의 협조관계에 금이 갈 수 있어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공식적인 업무제휴 보다는 지금처럼 보다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사건을 주고 받으며 협조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 로펌은 '득보다 실' 유력…덩치 커 버거운 측면도

외국 로펌 입장에선 또 국내 대형 로펌들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덩치가 커져 장차 동업관계로의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업무제휴의 적절한 상대가 아니라는 현실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 영국변호사는 "IMF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국 로펌들이 워낙 규모가 커져 조인트벤처는 물론 업무제휴의 상대로 삼기도 버거운 측면이 없지 않다"고 국내 로펌업계의 달라진 사정을 얘기했다.

때문에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는 이보다 규모가 적은 중소 로펌, 그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부티크(전문 로펌)들 사이에서 더 많이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소 로펌으로선 시장개방으로 더욱 치열해질 국내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를 적극 모색해야 할 지 모르는데다 그것이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을 키우는 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 로펌 관계자중엔 한미FTA타결후 외국 로펌과의 업무제휴 가능성을 공공연히 얘기하는 변호사들도 없지 않다.

한 중견 로펌 관계자는 "외국 로펌 입장에선 우리 정도의 전문성과, 우리 정도의 규모를 가진 로펌이 업무제휴의 상대로 딱일 것"이라며, "시장이 열려 업무제휴가 허용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부티크 관계자는 "업무제휴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며, "외국 로펌들로부터도 이전부터 제의를 많이 받아 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국내 로펌과의 업무제휴에 나서는 외국 로펌은 대형 로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우선 대형이 아닐 경우 특별히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규모상 직접 진출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약 200명의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영국 로펌인 데이븐 포트(Davenport Lyons)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한국 시장 진출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직접 진출할 계획이 없다"며, "지금처럼 '글로벌 로그룹(Globalaw Group)'을 통해 한국 로펌과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Globalaw Group은 전 세계 50개가 넘는 나라의 76개 부티크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제법률사무소 조직으로, 국내에선 전자상거래 · 지적재산권(IP) 전문으로 유명한 법무법인 아람이 가입해 있다.

또 전세계 주요 지역에 변호사가 나가 있고, 고객 기반이 두터운 외국의 대형 로펌이라야 업무제휴에 나서는 국내 로펌 입장에서 보다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외국 로펌이라도 특정 분야의 전문성 등을 내세워 국내의 부티크 등과 업무제휴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 열리면, 다대다 협력구조도 변화 가능성"

유념해야 할 것은 업무제휴는 시장개방 후 2년, 동업은 5년후부터 허용되지만, 시장개방 원년(元年)부터 구조적인 변화가 앞서 일 것이란 점이다.

대형 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는 "일단 시장이 열리면, 공식적인 업무제휴 이전이라도 다대다(多對多)의 관계로 표현할 수 있는 현재의 국내외 로펌간 업무협조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전망한 적이 있다. 외국 로펌이 외국에 있는 단계에서 사건별로 업무협조하는 것과 외국 로펌이 한국에 분사무소를 열어 진출한 가운데 업무협조하는 것은 같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식 구도라 해도 종전과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중견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무실 위층에 미국의 한 대형 로펌이 사무실을 내고 서울에 진출해 사건별로 우리와 업무 협조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시장이 열리면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수 있다. 그 변화가 국내 변호사업계의 발전을 담보하는 방향이 되도록 관련 당사자들이 더욱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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