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세법상 처분과 불복방법
[리걸타임즈 칼럼] 세법상 처분과 불복방법
  • 기사출고 2020.10.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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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과세권은 꼭 필요하지만 납세자에게는 무서운 권력이다. 잘못된 과세권 행사로 인한 납세자의 고통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과세관청의 공권력 행사가 잘못되었다면, 납세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공권력의 행사를 다투려면, 우선 "처분"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법에서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대상을 처분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례는 "처분은 행정청의 공법상의 행위로서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밝히고 있다(대법원 1999.3.22. 선고 96누433 판결). 하지만 이러한 기준만으로 개별 사안에서 처분성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기도 하고, 심지어 판례의 입장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만약 납세자가 처분성을 착각해서 처분을 기한 내에 다투지 못하면, 더 이상 구제받을 수 없다. 실제로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납세자의 권리를 지키려면, "처분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과세처분 일반론

우선 일반적인 주제로서 "과세처분"을 살펴보자.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이것은 처분이다. 과세관청은 납세고지서를 송달하는 방법으로 과세하는데, 이 통지 시점에 비로소 과세처분의 효력이 생긴다. 그리고 납세자는 과세처분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90일 내에 불복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즉, "납세고지서를 받으면 과세처분이 있는 것이므로 90일 내에 불복해야 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기억해야 한다.

◇이종혁 변호사
◇이종혁 변호사

만약 어떠한 과세처분이 있은 후에 과세관청이 동일한 세금을 추가로 과세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예컨대 1차로 2019년 종합소득세 100원을 부과했는데, 이후 2차로 2019년 종합소득세 20원을 추가로 부과하였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2차 처분만 유효하고 1차 처분은 2차 처분에 흡수되어 소멸한다(대법원 2013.10.31 선고 2010두4599 판결). 즉, 1차 처분은 없어지고, 2차 처분으로 2019년 종합소득세 120원을 부과한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납세자는 2차 처분만을 대상으로 전체 세액을 다투어야 한다.

반대로 1차로 2019년 종합소득세 100원을 부과했는데, 이후에 20원만큼 감액경정을 하면 어떠한가? 이는 과세관청이 1차로 부과한 100원 중 20원만큼 취소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존 1차 처분이 (세액이 줄어든 형태로) 존속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불복대상은 여전히 1차 처분이고, 이후의 감액경정은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위 2010두4599 판결).

부과처분과 경정거부처분

세금의 성격에 따라 처분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자. 우리가 아는 세금 중에서 '상속세와 증여세'는 부과고지방식의 세금이다. 즉, 납세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곧바로 납세의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고, 과세관청이 확인을 해서 결정을 해야 비로소 확정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납세자가 신고만 한 단계에서는 과세처분이 없고, 과세관청이 확인 후 세액을 결정하여 통지할 때에 비로소 과세처분이 있게 된다. 이때 과세관청이 별도의 납세고지서를 송달하지 않고, 납세자의 신고내용이 맞다고 확인하는 취지에서 '신고시인결정'을 통지하더라도, 판례는 이를 과세처분으로 인정한다(대법원 2016.8.18. 선고 2015두41562 판결). 이 경우 납세자는 신고시인결정을 과세처분으로 보아 불복을 해야 한다.

한편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은 모두 신고납세방식의 세금이다. 즉, 일단 납세자가 신고한 대로 납세의무가 확정된다. 만약 납세자가 정당한 세액보다 많은 세금을 신고한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신고행위가 무효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고내용에 따라 납세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세금을 돌려달라고 곧바로 청구할 수는 없다. 대신 이 경우 납세자에게는 경정청구를 할 권리가 주어진다. 납세자는 과세관청을 상대로 신고한 세금을 줄여달라는 경정청구를 하고, 과세관청이 그에 따라 감액경정을 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만약 과세관청이 감액경정을 해주지 않는 경우라면, 납세자의 불복을 위해서 "처분"이라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과세관청의 거부행위를 처분으로 보아 '경정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할 수 있도록 한다. 대부분의 조세행정소송이 "OO세부과처분취소" 또는 "경정거부처분취소"라는 사건명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분성 판단의 어려움과 판례 변경

앞서 말했듯이, 개별 사안에서 처분성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행정행위의 명칭으로 처분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컨대 납세자가 세법의 '통고처분'을 받았더라도, 이를 처분으로 보아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는 없다. 단지 고지된 통고금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고발되어 형사절차에서 다툴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대법원은 세무조사개시결정을 처분으로 인정하였다(대법원 2011.3.10. 선고 2009두23617 판결). 이로 인하여 재조사금지 등 위법한 세무조사를 당한 납세자는 곧바로 세무조사개시 자체를 다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처분성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각 유형별로 판례의 태도를 확인하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판례의 입장이 꼭 일관된 것도 아니다. 아래에서는 당초 판례가 처분성을 부정하였다가 이후에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첫째, 법인세법령의 소득금액변동통지는 '처분'이다(대법원 2006.4.20. 선고 2002두1878 전원합의체판결). 소득금액변동통지는 과세관청이 사외 유출된 소득에 대해서 소득처분을 한 다음, 원천징수의무의 이행에 관련된 사항을 원천징수의무자에게 통지하는 행위이다. 당초 대법원은 소득금액변동통지는 처분으로 볼 수 없다는 태도였다가, 위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서 처분성을 인정하는 태도로 변경하였다. 기존 판례에서는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의무를 불이행한 후 징수처분을 기다려 이를 다툴 수밖에 없었는데, 직접 소득금액변동통지 자체를 다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둘째, 최근 대법원은 결손금의 감액경정도 처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대법원 2020.7.9. 선고 2017두63788 판결). 종래 대법원은 결손금의 감액경정은 처분이 아니므로 직접 불복할 수 없고, 차후에 실제 과세처분이 이루어졌을 때 불복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그런데 2007년 말 법인세법 개정으로 제13조 제1호 후문이 신설되면서, 공제대상 이월결손금의 범위가 일정 범위로 축소되었다. 이후로 결손금의 감액경정이 처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최근 대법원은 결손금의 감액경정은 처분이므로 납세자는 이를 직접 다투어야 한다는 입장을 최초로 밝혔다.

이처럼 처분성의 범위를 확대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들은, 납세자들이 과세관청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 조기에 다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위와 같은 처분 후 90일 내에 불복하지 않으면 불복방법을 잃게 될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판례가 위와 같은 입장을 밝힌 이상, 이제 납세자는 지체없이 위의 처분에 대해서 불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법원에서도 처분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 납세자들이 처분성을 착각하여 불복시기를 놓쳤다는 이유로 불복을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판례에 의한 처분성의 확장이, 오히려 납세자의 불복 가능성을 제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