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아이콘'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진보 아이콘'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 기사출고 2020.09.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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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법관 지명, 미 대선 쟁점으로 부상

미국 '진보진영의 아이콘'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미 연방대법관이 9월 18일(현지시간)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긴즈버그 대법관이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차기 대법관 지명이 11월 3일 실시될 예정인 미 대통령 선거의 쟁점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를 추모해 조기 게양을 지시하면서도 신속히 후임자를 지명해 공석을 메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는 후임 대법관 지명은 대선이 끝난 후 새 대통령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두 9명인 미 연방대법관은 본인이 은퇴하지 않는 한 종신직이며,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인 53석을 차지, 장악하고 있다.

◇긴즈버그 미 연방 대법관이 9월 18일 별세함에 따라 차기 대법관 지명이 미 대선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사진은 긴즈버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생전 9명의 미 연방대법관들. 보수 5명 대 진보 4명의  구도였다.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이 9월 18일 별세함에 따라 차기 대법관 지명이 미 대선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사진은 긴즈버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생전 9명의 미 연방대법관들. 보수 5명 대 진보 4명의 구도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로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긴즈버그는 줄곧 진보 입장을 대변해왔으며, 긴즈버그가 대법관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미 연방대법원의 9명의 대법관은 '보수 5명' 대 '진보 4명'으로 보수가 좀 더 우세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긴즈버그 대법관은 췌장암 투병을 하면서도 내가 은퇴하면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보수 쪽으로 더욱 기울게 된다며 은퇴를 미루며 대법관 자리를 지켜왔고, 최근 손녀에게도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내가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대공황이 덮친 1933년 뉴욕의 부루클린에서 유대계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난 긴즈버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코넬대에 입학했으며, 1956년 전체 학생 500명 중 9명뿐이었던 여학생의 한 명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러나 코넬대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마틴 긴즈버그가 뉴욕의 로펌에 취직하자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 로스쿨로 옮겨 공동수석으로 졸업하고, 이후 럿거스대 로스쿨의 법학교수로 법률가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1972년 모교인 콜럼비아 로스쿨의 교수가 된 그녀는 성 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변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의 여성 인권운동 프로젝트에서 수석변호사를 맡아 각종 소송을 주도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인 1980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고 1993년 대법관이 된 그녀는 보수 우위의 대법원에서도 굳건히 '반대표'를 던지며 전향적인 판결을 이끌었다. 동성결혼 합법화,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여성 입학 불허에 대한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등의 판결을 내리며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약자에 대한 차별에 맞서고 다수의견에 굴하지 않으며 소수의견을 제시하는 그녀에게 미국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붙여준 애칭은 'notorious R.B.G', '래퍼토리어스 BIG'의 이름을 패러디한 별칭이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