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부사장으로 불렸어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했으면 근로자"
[노동] "부사장으로 불렸어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했으면 근로자"
  • 기사출고 2020.06.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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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퇴직금 지급하라"

유한회사인 보험계리법인에서 부사장으로 불리며 근무하다가 퇴사한 보험계리사가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부사장으로 호칭되고 일정 기간 이 유한회사의 사원(주주)의 지위에 있었으나 이는 형식적 ·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A씨는 대한생명보험에서 1999년 5월경까지 약 25년간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55세이던 2003년 2월경부터 유한회사인 S보험계리법인에서 프리랜서 보험계리사로 근무하면서 용역업무를 총괄했다. S사는 2005년 4월경 서울 마포구 용강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용역업무를 보조할 대졸 신입사원들을 새로 채용하였고, 그 무렵부터 소속 보험계리사들은 원칙적으로 상시근무를 하면서 매월 20일에 정기적으로 급여를 지급받았다. A씨도 2005년 4월경부터 '부사장'으로 불리며 S사로부터 일정액의 급여를 받았다. 

A씨는 2006년 7월경 S사의 출자좌수를 취득한 이래 2007년 4월 17일경 S사의 증자시 출자좌수를 2,000좌(전체 출자좌수 21,000좌)로 확대하였다가 2010년 3월경 출자좌수 2,200좌 전부를 2,200만원에 S사의 회장인 조 모씨에게 양도했다. S사는 2014년 1월 1일 주식회사로 조직변경하고 해산했다. A씨는 이후로도 S사에서 2015년 12월까지 계리사로 계속 근무하다가 2016년 1월부터 직원으로 신분이 전환되어 사무총장으로 근무한 후 2017년 3월 31일 퇴직한 뒤 S사를 상대로 프리랜서로 근무를 시작한 2003년 2월부터 직원으로 신분이 전환되기 전인 2015년 12월까지의 퇴직금 65,775,000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사무총장직으로 있던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의 퇴직금은 이미 정산되었음을 자인, 이 사건에서 청구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S사는 퇴직금 3,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하자 A씨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부사장'으로 호칭되며 일반 근로자가 아닌 S사의 관리자로서 근무하였다고 볼 사정이 다수 존재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대법원은 다시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6월 4일 "회사의 임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위 또는 명칭이 형식적 · 명목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매일 출근하여 업무집행권을 갖는 대표이사나 사용자의 지휘 · 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관계에 있다거나 또는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외에 대표이사 등의 지휘 · 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아 왔다면 그러한 임원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원고가 '부사장'으로 호칭되고 또 일정 기간 동안 유한회사 사원의 지위에 있었으나 이는 형식적 ·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피고에 대하여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9다297496). 홍윤기 변호사가 상고심에서 A씨를 대리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원고는 이전까지 프리랜서 형태의 보험계리사로 일하다가 2005. 4.경부터 피고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 상시출근하기 시작하였다"고 지적하고, "원고는 그 무렵부터 임원으로 등기되지는 않은 채 '부사장'으로 호칭되었으나, 보험회사로부터 의뢰받은 용역을 수행하는 보험계리사로서의 일반적인 업무 및 경영권을 가진 회장단의 지휘 · 감독 하에 근태, 급여 등 서무 관련 업무를 수행하였을 뿐 포괄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자신의 책임 하에 독립적으로 업무집행을 한 것이 아니었고, 보수, 처우 등에서 다른 경력직 보험계리사들과 비교하여 차별화된 우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는 2006. 7.경 유한회사이던 피고의 출자좌수를 취득하여 2010. 3.경까지 사원의 지위에 있었지만,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 등 경영권은 회장 조씨를 비롯한 회장단이 행사하였고, 원고를 비롯하여 출자좌수를 취득한 경력직 보험계리사들(주주사원 보험계리사들)은 회사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못하였다"며 "피고는 보험회사들로부터 의뢰받은 용역을 정리하여 보험계리사별로 배분한 다음 그들이 보험회사로 출근할 날짜를 지정하는 등으로 용역수행계획서를 작성하였고, 원고를 비롯한 주주사원 보험계리사들은 피고가 수립한 계획에 따라 피고 또는 보험회사의 사무실로 정시 출근하여 배분받은 용역 업무를 수행하였고, 원고는 그와 같은 용역 업무를 수행하면서 제3자를 고용하는 등으로 업무를 대행하게 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피고의 취업규칙은 일반 직원뿐만 아니라 주주사원 보험계리사들도 그 적용 대상으로 정하고 있고, 피고가 원고에게 매월 급여를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 형식으로 지급하였으나, 이는 피고가 우월적 지위에서 4대 보험의 적용을 피하는 등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임의로 정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