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친족이라고 무조건 친자확인 소송 못 내"
[가사] "친족이라고 무조건 친자확인 소송 못 내"
  • 기사출고 2020.06.2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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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40년 만에 판례 변경

증손자는 증조할아버지와 그 장녀 사이에 관한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을 낼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친족이라면 누구든 제한 없이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던 대법원 판례가 약 40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1909년 사망한 최 모씨는 2010년 8월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최씨의 장남의 손자(증손자)인 A씨는, 최씨의 장녀의 자녀(손자녀)인 B씨가 독립유공자 유족등록을 신청하여 2014년 10월 유족으로 최종 확정되자, 검사를 상대로 B씨의 어머니와 최씨가 서로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소송을 냈다. B씨의 어머니가 최씨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자신이 독립유공자 유족의 지위를 얻게 된다는 이유였다. 최씨의 자녀로는 장남과 장녀, 차녀가 있었는데, 장남과 그 배우자 및 자녀들, 장녀와 그 배우자, 차녀와 그 배우자는 최씨의 포상대상자 결정일 이전에 모두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A씨가 이와 같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을 받더라도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예우법)이 정한 기준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없고 달리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구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적격을 부정하고 소 각하 판결했다. 독립유공자예우법 5조 1항, 12조 2항, 4항 1호에 따르면,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중 선순위자 1명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보상을 받는 유족의 범위는 독립유공자의 배우자, 자녀, 손자녀 및 며느리 순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중 같은 순위자가 2명 이상이면 나이가 많은 자를 우선하게 되어 있다.

이에 A씨가 "최씨와 민법 777조의 친족관계에 있으므로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이익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6월 18일 "민법 777조의 친족이라는 신분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민법 865조 1항이 정한 제소권자만 제기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의 원고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 소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2015므8351).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1962. 1. 1.부터 시행되다가 1990. 12. 31. 폐지된 구 인사소송법은 인사(人事)에 관한 소송절차의 특례를 정하면서 '민법 777조의 친족이 언제든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35조, 26조)을 두고 있었지만, 1991. 1. 1.부터 시행된 가사소송법에는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제기권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종전 대법원 판례의 핵심적 근거조항이 사라졌다"고 지적하고, "우리 민법은 제정 당시부터 호주제를 전제로 한 가족제도를 유지해왔고, 호적부에는 호주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家)의 일원으로 기재되었으나, 2005년 민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전면적으로 폐지되면서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로 재편되고 호적부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부에도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변동사항이 기록되고 있고, 우리 사회의 가족형태도 이미 핵가족화되어 민법 777조의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날 가족관계는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사를 기초로 다양하게 형성되므로 이에 관한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친생자관계의 존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보는 것은 신분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제소요건이 엄격한 다른 소송절차를 대신하여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이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소기간의 제한도 없으므로, 여기에 더하여 원고적격 범위까지 넓히는 것은 다른 소송절차와 비교하여 균형이 맞지 않고 법령의 제한 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민법 865조 1항은 제3자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 경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민법 777조의 친족에게 일률적으로 원고적격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제3자의 권리나 재판청구권을 부당하게 제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법 865조 1항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의 제기권자로 부 · 모 · 자녀, 자녀의 직계비속과 그 법정대리인, 이해관계인 등을 열거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