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근로자 비위에 전액 배상 판결 받은 최인욱 변호사
[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근로자 비위에 전액 배상 판결 받은 최인욱 변호사
  • 기사출고 2020.06.0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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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에 명시되지 않았어도 충실 · 청렴의무 부정되지 않아"

"그동안 잘 활용되지는 않았는데, 근로자가 횡령이나 배임 등 비위행위를 저질렀을 때 근로계약에 따른 충실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기업에도 적용 가능"

법무법인 한별의 최인욱 변호사가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을 대리해 최근 사업비를 부풀려 정부출연금을 빼돌린 연구원들을 상대로 약 9억원의 손해배상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연구원들의 비위로 피해를 입은 손해액을 전액 되찾게 된 의미도 크지만,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같은 준정부기관은 물론 일반 사기업 근로자들의 비위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한 주목할 판결이다.

최 변호사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의 경우에도 근로자를 채용할 때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해당 근로자는 근로계약이나 자치규정상 충실의무 또는 청렴의무 등을 부담할 것이므로 근로자가 이에 위반하여 비위를 저질렀다면 같은 법리를 적용해 손해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근로계약 또는 자치규정 등에 충실의무 등이 명시되면 더욱 분명하겠지만, 설령 근로계약 등에서 근로자의 충실 · 청렴의무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의무가 부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 변호사의 의견. 최 변호사는 "근로자의 충실의무는 근로계약에 부수되는 당연한 의무라고 보아야 한다"며 "서울고등법원 판결 중에도 '근로자는 근로계약에 의거한 신의칙상 부수의무 또는 충실의무로서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히 침해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 특별한 약정이 없는 경우에도 근로자에게 충실의무를 인정한 것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인욱 변호사
◇최인욱 변호사

최 변호사는 "사용자 입장에서, 기업의 이미지나 직원들 사기 등을 고려하여 근로자의 일탈, 비위행위가 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정직, 감봉 등 내부 징계절차로 끝내고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 소송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이번 판결은 그러나 근로계약상 충실의무 등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법리를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궁극적으로 손해배상판결을 받아내기 위해선, 사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해야 하고, 채무불이행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하며, 근로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을 것이 요구되는 등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재판에서 이러한 내용이 입증되어야 한다.

'손해 주체', 진흥원이냐 국가냐

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도, 정부출연금을 집행하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느냐, 궁극적으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아닌 국가가 손해를 입은 것 아니냐는 손해의 주체를 둘러싼 공방이 가장 어려웠던 대목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만일 손해의 주체가 국가라면 정보통신산업진흥원으로서는 소속 연구원의 비위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의 전보, 손해배상청구에 나설 수 없고, 소송 결과는 당사자적격 흠결로 패소할 수밖에 없는 곤란한 결과가 되는 상황이었다. 사업비를 부풀린 뒤 부풀린 사업비를 페이퍼컴퍼니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빼돌리는 비위를 저지른 해당 연구원도 재판에서 "횡령한 돈이 정부출연금이므로 손해를 입은 것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아니라 국가"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팀은 이에 대해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단순히 정부의 자금집행 대행기관이 아니라 별도의 회계를 운영하는 독립회계 주체이고, 독자적으로 세부사업에 대한 예산 집행을 한다는 점, 사업비에는 사업을 따낸 업체의 민간부담금도 포함된다는 점, 사업비를 부풀리면 그만큼 가용 가능한 사업비가 줄어든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현실적으로 원고에게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입증에 나섰다.

결과는 원고 측의 승리. 재판부는 우선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국가의 예산 외에 얼마든지 자체 수입을 통하여 사업경비를 마련할 수 있는 점, 예산의 운영계획을 스스로 수립하여 이를 집행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국가의 예산집행기관이 아니라 별도의 회계를 운영하는 독립적 기관이라고 보았다. 이어 "세부사업비에 따라 원고가 정부로부터 받는 출연금의 규모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정부출연금은 원고의 예산 중 하나의 재원일 뿐이므로 이 사건 사업 과제와 관련하여 지출된 돈은 원고의 지출이 된다"고 지적하고, "때문에 피고가 세부과제의 용역대금을 부풀려서 실제 지출하여야 할 세부과제 사업비가 증가하게 되면 원고가 나머지 세부사업에 사용할 예산이 줄어들게 되어 결국 원고는 실제 용역대금보다 부풀려진 용역대금 상당의 손해를 입는다"고 판시했다.

피고는 또 "국가재정법 제96조 제1항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로서 시효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것은 5년 동안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향후 국가가 원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 환수청구 등을 할 가능성이 사라져서 장래에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의 업무상 배임행위로 원고의 사업비가 필요 이상으로 지출된 때 이미 원고의 손해가 발생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손해배상청구 또는 환수청구 여부는 원고의 손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실상계 하는 게 보통

최 변호사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에선 근로자의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과실상계를 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최 변호사팀은 단 1%의 과실상계도 없는,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라는 전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 또한 최 변호사팀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로, 재판부는 "설령 원고에게 피고들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은 청렴서약서까지 작성하고도 원고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배임행위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취득하였는데, 이를 이유로 피고들의 책임을 제한한다면, 피고들이 결국 부정한 이익을 최종적으로 보유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며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 8월 소장이 접수되어 약 1년 6개월만에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고 그대로 확정된 이번 소송은 1심에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로 청구원인을 설정했다가 소멸시효 항변에 부닥쳐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근로계약상 의무 위반 즉,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로 청구원인을 변경해 승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불법행위의 경우엔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승소, 확정시킨 것이다.

오리지널 법학도 출신으로 변시 합격

충남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최 변호사는 요즈음 로스쿨 입학생 중 다수를 차지하는 이른바 '비법대 출신'이 아니라 서울대 법학부를 졸업한 오리지널 법학도 출신이다. 최 변호사는 특히 "학부 시절 사법시험 과목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법과목과 로마법, 프랑스법 강독 등 기초법학교육을 충실히 받을 수 있었는데, 기초부터 다진 법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변호사로서 실무를 처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법무법인 한별에서 제조업과 벤처기업, 빌딩관리단 등 다양한 기업과 단체의 자문, 소송 등을 많이 수행하며 어려운 사건에 단골로 투입된다.

"법학이 실용학문이지만, 이론적 뒷받침이 없으면 임시방편적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법률기교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고 봐요."

최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부 시절부터 이어진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사안의 해결에 나서는 뉴 솔루션을 추구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