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FRAND 확약의 경쟁법적 쟁점
[리걸타임즈 칼럼] FRAND 확약의 경쟁법적 쟁점
  • 기사출고 2020.02.1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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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법원 판결 엇갈려…통일된 기준 마련 절실"

기술의 표준화는 제품간의 상호 호환성을 높임으로써 소비자의 효용을 증대시키고 이를 통해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런데 표준으로 채택된 기술들이 특허로 보호되고 있는 경우는 그 특허권이 남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대부분의 표준화기구에서는 표준 채택 기술에 관하여 특허권을 보유하는 표준화 참여자들로부터 해당 표준의 실시자들이 요청할 경우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소위 F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는 확약을 징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라이선스 제공 확약' 징구 일반적

위와 같은 FRAND 확약은 민사적인 계약법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소위 표준필수특허권자들의 시장지배적지위 여부가 문제 되고 있는 사건들이 많아 FRAND 확약의 경쟁법상 함의도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FRAND 확약은 표준필수특허권자와 실시자간의 권리, 의무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짐에도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현재 각국의 법원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을 만큼 모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곽은경(좌) 외국변호사, 장덕순 변호사
◇곽은경(좌) 외국변호사, 장덕순 변호사

현재 영국 대법원에 계류 중인 Unwired Planet v. Huawei 사건에서, 하급법원은 표준필수특허 관련 포괄적 라이선스의 허용 범위, 그리고 로열티 차별 정책이 경쟁법에 반하는지에 관하여 판단하였다. 본건은 특허권자인 Unwired Planet과 실시자인 Huawei간의 분쟁에서 Unwired Planet의 Worldwide 라이선스 제안을 Huawei가 수락하지 않을 경우 영국에서 침해금지 명령의 대상이 되는지 문제 되었고, 그 전제로 Unwired Planet의 라이선스 제안이 FRAND에 부합하는지도 쟁점이 되었다.

Unwired Planet v. Huawei 판결

1심 법원에서는 Worldwide 라이선스가 FRAND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지와 관련하여, 여러 국가에 걸쳐 표준필수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자가 한 국가에서의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와 다른 국가의 표준필수특허를 함께 라이선스하는 행위가 경쟁제한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여러 지역의 표준필수특허를 포괄하는 Worldwide 라이선스는 그 자체로 경쟁법에 반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덧붙여, 여러 국가에 걸쳐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Unwired Planet과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제조, 판매를 하는 Huawei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영국에 한정된 라이선스보다 Worldwide 라이선스가 FRAND 확약에 부합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비표준필수특허를 끼워 넣어 포괄적으로 실시허락하는 행위는 비표준필수특허 기술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1심 법원은 이러한 Worldwide 포트폴리오 라이선스의 FRAND 실시료율 산정에 대한 방법론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항소법원은 Huawei의 항소를 기각하는 결정문에서 Unwired Planet의 로열티 차별 정책과 관련하여, 가격 차별 정책은 때로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므로 가격 차별 정책 그 자체가 경쟁법에 의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FRAND의 비차별 정책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통해 로열티 금액 자체가 동일해야 한다고 해석되기보다, 시장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였을 때 공정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효과 기반의 접근방식'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FTC v. Qualcomm 판결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은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와 퀄컴간의 소송에서 퀄컴의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관행에 대한 경쟁제한성 여부를 검토하였는데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법원은 퀄컴이 단말 제조사에 대한 소위 ‘No-License No-Chip’ 정책을 통해 단말 제조사들이 라이선스 계약에 서명하지 않는 경우 샘플 및 소프트웨어, 기술지원 등을 제공하지 않고 칩 공급 중단으로 위협함으로써, 이를 통해 단말 제조사들이 퀄컴과의 라이선스 계약에 합의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였고, 퀄컴 칩셋을 구매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 결과적으로 경쟁사의 칩셋을 이용한 제품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으로 높은 로열티를 부과함으로써 경쟁제한 효과를 발생시켰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퀄컴이 통신 표준화기구인 ATIS 및 TIA와 맺은 FRAND 확약은 퀄컴으로 하여금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대해서도 라이선스를 허락해야 할 의무를 발생시킨다고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컴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 대해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한 것은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제한, 지연시키거나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반경쟁적 행위에 해당하며 이는 곧 단말 제조사들에 대한 반경쟁적 행위로도 이어졌다고 판단하였다. 경쟁 칩셋의 시장 배제를 통해 퀄컴은 모뎀칩셋에 대한 선택권을 상실한 단말 제조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높은 요율의 로열티를 부과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단말 제조사들로 하여금 제품 개발보다는 로열티 지불에 더 많은 비용을 쏟아붓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HTC v. 에릭슨 판결

다만 흥미롭게도 이 판결이 있고 이틀 뒤 텍사스동부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다소 다른 취지의 판결이 있었는데, HTC와 에릭슨이 FRAND 라이선스 요율에 관해 다툰 소송에서 법원은 통신 표준화기구 중 ETSI의 규정에 따른 FRAND 확약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최소부품단위로 라이선스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에릭슨이 HTC에 대하여 모뎀칩셋 기준이 아닌 단말의 판매가를 기준으로 로열티를 요구한 행위는 FRAND 확약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퀄컴 집행정지신청은 인용

위 퀄컴 사건의 법원은 또한 FRAND 확약에 의해서뿐 아니라 반독점법(Sherman Act)에 의하더라도 퀄컴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게 표준필수특허에 대한 라이선스를 허락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경쟁 상대를 도울 의무가 없지만, 판례(Aspen Skiing Co. v. Aspen Highland Skiing Corp., 472 U.S. 585, 602 (1985))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만족하는 경우 독점기업은 경쟁사에 대하여 일정한 경쟁법상 의무를 진다고 보고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 퀄컴이 종전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게 표준 필수특허에 대한 라이선스를 허여한 바 있으나 후에 이를 스스로 중단하였고, 이와 같은 거래 중단에 반경쟁적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칩 단위에서 표준필수특허를 라이선싱하는 시장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이 경우 퀄컴은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 대해 라이선스를 허락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본 판결의 집행에 대한 퀄컴의 집행정지신청을 항소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퀄컴은 당분간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 대해 라이선스를 허락하지 않은 채 종전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향후 항소심의 결과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고법의 퀄컴 판결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도 퀄컴의 라이선싱 관행이 불공정한 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공정위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앞서 2017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퀄컴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들에 대해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의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 제한한 행위(행위 1), 소위 'No-License No-Chip' 원칙을 고수한 행위(행위 2) 및 단말 제조사들에게 무상의 그랜트백, 포괄적 라이선스, 휴대폰 가격 기준 실시료 산정 행위 등 부당한 계약조건을 강제한 행위(행위 3) 등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역대 최대 수준인 약 1조 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퀄컴은 이에 공정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를 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무상의 그랜트백, 포괄적 라이선스, 휴대폰 가격 기준 실시료 산정 등(행위 3)에 대해서는 퀄컴이 대가를 제공하지 않은 채 크로스 라이선스를 강제하였다거나 보상의 불균형이 있었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정위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으나 나머지 처분에 대해서는 퀄컴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본 사건 역시 양측 모두 상고하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5G 시대의 도래와 함께 특히 통신표준필수특허의 적용범위가 급격히 확대됨으로써 표준필수특허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므로 FRAND 확약에 대한 경쟁법의 해석 및 집행에 관한 합리적이고 통일된 기준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곽은경 외국변호사 · 장덕순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ucksoon.chang@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