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조세형사사건과 행정사건의 관계
[리걸타임즈 칼럼] 조세형사사건과 행정사건의 관계
  • 기사출고 2020.02.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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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는 기본적으로 세금을 매기기 위한 조사이다(국세기본법 제2조 제21호). 그런데 세무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조세범칙조사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다. '조세범칙조사'는 조세범 처벌법에서 정한 범칙행위를 확정하기 위한 조사로서(조세범 처벌절차법 제2조 3호), 단순한 과세권 행사를 넘어 처벌을 위한 절차이다.

고의 · 부정한 행위 있어야 고발

가장 대표적인 조세범칙행위는 '조세포탈'이다. 조세포탈의 구성요건은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고의로 부정한 행위를 통하여 세금을 탈루하는 것'으로 풀어쓸 수 있다. 과세관청은 납세의무가 있는 자에게 과세처분을 할 수 있지만, 나아가 그 자를 조세포탈로 고발하기 위해서는 '고의'와 '부정한 행위'라는 요건이 추가되는 것이다. 세무조사 결과 과세관청이 납세의무자를 상대로 과세처분을 하고 동시에 조세포탈로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납세자가 이에 불복할 경우, 과세처분에 대해서는 조세심판청구 등의 쟁송절차가 진행되고, 고발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 등 형사절차가 진행된다.

◇이종혁 변호사
◇이종혁 변호사

편의상 전자를 '조세행정사건', 후자를 '조세형사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이 두 절차는 동시에 진행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두 절차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조세불복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 이 둘의 복잡한 관계를 풀어서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조세행정사건과 조세형사사건은 "납세의무"를 요건으로 삼는 점에서 공통된다. 즉 납세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과세처분은 물론이거니와 조세포탈도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납세자가 납세의무의 성립 자체를 다투는 경우에 조세행정사건과 조세형사사건은 사실상 쟁점이 동일하다.

한편 조세포탈의 성립 여부가 납세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행위가 조세포탈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면, 부과제척기간이 연장되고(국세기본법 제26조의2 제2항 제2호), 신고불성실가산세가 가중된다(같은 법 제47조의2 제1항 제1호 등). 따라서 납세자가 납세의무는 있지만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다투는 경우에도 사실상 두 절차의 쟁점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절차의 결론은 일치해야 논리에 맞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이 두 절차의 결론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과세관청은 납세의무자가 부정행위로 세금을 탈루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조세포탈을 무혐의로 결정하고서는, 부과제척기간을 연장하고 부정과소신고가산세를 붙여서 과세하는 경우가 있다. 양쪽의 쟁점은 같지만 절차가 서로 달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인데, 납세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세형사사건이 조세행정사건에 미치는 영향

보통 조세형사사건이 조세행정사건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조세형사사건의 결론이 조세행정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많이 문제된다.

만약 검찰에서 조세포탈을 무혐의로 판단할 경우 이는 조세행정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준사법기관인 검찰에서 조세포탈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린 만큼, 조세행정사건을 심리하는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에서는 그 결과를 중요하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수사기관이 수사를 통해서 부정행위나 고의가 없음을 확인한 경우 그 결과는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조세행정사건이 반드시 검찰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기본적으로 "법원은 동일한 사실관계에 관한 검찰의 무혐의결정의 이유와 배치되는 사실인정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0. 6. 9. 선고 99두2314 판결).

한편 조세형사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 그 결과는 조세행정사건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판례는 "행정소송에 있어서 형사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와 배치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대법원 1999. 11. 26. 선고 98두10424 판결). 실무에서도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은 조세형사판결의 결론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며, 그와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선행하는 조세형사사건의 결론은 조세불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죄판결은 경정청구 사유 아니야

만약 납세의무에 대하여 기한의 경과로 불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조세포탈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납세의무자는 이 형사판결을 근거로 다시 납세의무를 다툴 수 있을까? 국세기본법은 후발적 경정청구 제도를 마련하고 있고, 그 사유의 하나로 "과세표준 및 세액의 계산 근거가 된 거래 또는 행위 등이 그에 관한 소송에 대한 판결에 의하여 다른 것으로 확정되었을 때"를 들고 있다. 문언을 보면 위의 판결에 "형사판결"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그에 관한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등 실무상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처음으로 판단을 내렸다. 원심은 관세법상 납세의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것은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가 된다고 판단하였지만, 대법원은 과세절차와 형사소송절차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 1. 9. 선고 2018두61888 판결). 이 판결은 관세법의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에 관한 판단이지만, 그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국세기본법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법원이 형사판결에서 납세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분명한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납세의무자에게 해당 납세의무에서 벗어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판결에 따르면, 같은 쟁점에 대해 조세형사사건과 조세행정사건의 최종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납세자 입장에서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고 본다.

조세행정사건이 조세형사사건에 미치는 영향

반대의 경우로, 조세행정사건의 결론은 조세형사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세행정사건에서 과세처분을 취소할 경우 조세포탈의 전제가 되는 납세의무 자체가 소급적으로 소멸하므로 애초부터 조세포탈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대법원은 "조세의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행정판결이나 심판결정 등이 내려진 경우에 관련 조세포탈에 관하여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태도를 밝혔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3도14716 판결). 그렇기 때문에 과세처분의 취소가 확정되었다면, 아직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되어야 하고, 설령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심사유가 된다. 실무상 조세형사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후에 과세처분이 취소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형사재판의 진행 중에 과세처분이 취소되어 곧바로 형사재판이 종결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조세쟁송을 통해서 두 절차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납세의무의 성립 이후에 위법소득의 추징과 같은 후발적 사유가 발생하여 납세의무가 사후적으로 소멸한 경우에, 대법원은 이미 조세포탈이 기수에 이른 후의 사정으로 보아 여전히 유죄라는 입장이라는 점을 아울러 알아두자(대법원 2017. 4. 7. 선고 2016도19704 판결).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