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실종 33년 만에 정신병원서 발견된 장애인…국가 · 해운대구, 2000만원 배상하라"
[손배] "실종 33년 만에 정신병원서 발견된 장애인…국가 · 해운대구, 2000만원 배상하라"
  • 기사출고 2019.12.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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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전산입력 · 수배, 지문 조회 등 안 해"

집을 나가 실종된 지 33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장애인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내 2000만원을 배상받게 되었다. 국가와 지자체가 신원확인을 소홀히 해 장기간 가족들과 연락이 두절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송인우 판사는 11월 27일 실종된 지 33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정신장애 2급 장애인 홍 모(여 · 60)씨가 국가와 부산 해운대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5가단5066987)에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홍씨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2살이던 1980년 1월 직장을 구하겠다며 집을 나가 같은해 3월 광주에서 친언니에게 전화한 이후 연락이 두절된 홍씨는 2년 뒤인 1982년 6월 부산진역에서 경찰에 발견되었으나 자신의 인적사항이나 가족 관계 등을 정확히 말하지 못해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이후 31년이 지난 2013년 12월 해운대구청이 신원미상 행려자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지문 조회를 통해 홍씨의 신원을 확인했고 홍씨는 3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은 홍씨가 1980년 5 · 18민주화운동 무렵 사망했다고 생각해 홍씨에 대해 실종신고나 유전자등록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홍씨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법률지원을 받아 "경찰과 지자체가 신원확인과 연고자 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송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은 미아 · 가출인수배규칙 4조 3항 등 및 실종아동등 · 가출인 업무처리규칙 20조 1항에 따라 1991. 8.경부터 매월 1회 이상 또는 수시로 보호시설에 수용된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하여 전산 또는 경찰정보통신망에 입력 · 수배(전산입력 · 수배)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1991. 8.경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보호시설인 위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던 원고의 인적사항 등을 전산입력 · 수배하였어야 하고, 이후에라도 원고에 대한 전산입력 · 수배가 되어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이를 실시하였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런데 원고가 2013. 12.경 위 병원에서 퇴원하였고, 이 사건 소장부본은 그로부터 1년 4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5. 4. 1. 피고 대한민국에 송달되었음에도, 피고 대한민국이 전산입력 · 수배에 관한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 오히려 피고 대한민국은 위 수배규칙 4조 3항의 의미가 보호시설에서 요청하는 입소자에 한하여 전산수배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이 시행된 이후의 전산수배 업무는 경찰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홍씨가 수용되었던) 위 요양원 및 병원이 위 수배규칙의 대상인 보호시설이 아니고 위 전산입력 · 수배규정은 권고적 성격의 규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은 원고에 관하여 위 수배규칙 및 업무처리규칙에 따른 전산입력 · 수배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아 · 가출인수배규칙은 1991년 7월 31일 제정되었다.

송 판사는 이어 "미아 · 가출인수배규칙이 매월 또는 수시로 전산입력 · 수배되어 있지 않은 무연고 보호시설 입소자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하여 전산입력 · 수배하도록 명하고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이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경찰은 1991년경부터 2013년 원고가 퇴원할 때까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피고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의 원고에 대한 전산입력 · 수배의무 위반은 국가배상법 2조의 요건에 부합하는 위법한 부작위"라고 판시했다.

송 판사는 또 "경찰은 2015. 12.경 시행된 실종아동법에 따라 실종 정신장애인의 조속한 발견과 복귀를 위하여 수색 및 수사,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실시할 책무가 있고, 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관계인으로부터 보고 또는 자료제출을 받거나 관계 장소에서 관계인 및 실종 정신장애인에 대하여 필요한 조사를 하여 지문정보를 포함한 신상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은 실종아동법 시행 이후 상당한 기간 내에 원고가 가족들에게 조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지문조회를 실시할 의무가 있었다으나, 피고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은 실종아동법 시행 직후 위 병원 입소자들 중 일부에 대하여만 선택적으로 지문과 유전자정보를 조회하고 원고에 대하여는 2007. 2.경까지 지문 조회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2007년 및 2008년 잘못된 방법으로 지문 조회를 하고는 2013년까지 지문 조회를 실시하지 않았다"며 "경찰공무원이 이와 같이 원고에 대한 지문조회를 늦게 실시하거나 지문조회를 실시하지 않은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한 권한의 불행사 또는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할 때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의 의무 위반이어 위와 같은 지문조회 의무 위반 역시 국가배상법 2조의 요건에 부합하는 위법한 부작위"라고 밝혔다.

송 판사는 "경찰이 2007년 및 2008년 원고의 지문을 채취하여 이를 주민등자료와 비교 · 대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원고의 지문을 채취하고도 원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였는데, 이 또한 국가배상법 2조에 해당하는 피고 대한민국의 위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송 판사는 해운대구에 대해서도, "피고 해운대구의 공무원이 2004년 상반기가 지나도록 원고에 대한 지문조회를 의뢰하지 않은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한 권한의 행사라 할 것이므로, 피고 해운대구 공무원의 위와 같은 신원확인의무 위반 역시 국가배상법 2조의 요건에 부합하는 위법한 부작위"라고 밝혔다.

송 판사는 "피고들의 각 위법행위로 인하여 가족을 찾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가족들과의 연락이 단절된 채 요양원 및 병원에 수용보호되어 있던 원고가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은 경험칙상 분명하다"며 "피고들은 공동하여 위와 같은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송 판사는 다만, 원고의 가족들이 가출 또는 실종신고 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 대한민국이 1991년경부터 원고의 인적사항을 전산입력하여 수배하였더라도 원고의 신원확인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의 가족이 유전자를 등록해두지 않았기 떄문에 유전자 대조를 통한 신원 조회가 불가능하였던 점, 원고가 자신의 이름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말하고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과 가족 등 연고자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였던 점 등을 감안해 위자료 액수를 2000만원으로 정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