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남녀 직렬 정년 14년 차이 나는 국정원 직원규정 무효"
[노동] "남녀 직렬 정년 14년 차이 나는 국정원 직원규정 무효"
  • 기사출고 2019.11.12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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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위반"

국가정보원이 계약직 여성 직원이 담당하는 전산사식 분야의 정년을 남성 직원이 담당하는 직렬보다 14년 낮게 정한 것은 남녀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0월 31일 국가정보원 전산사식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두 여성 A, B씨가 "전산사식 직무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43세로 정한 것은 위법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3두20011)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윤지영, 차혜령 변호사와 법무법인 시민, 지평이 원고들을 대리했다. 국가는 정부법무공단이 대리했다.

A, B씨는 1986년 국가정보원에 기능 10급의 국가공무원으로 각각 공채되어 출판물의 편집 등을 담당하는 '행정보조 직군', '입력작업 직렬' 업무를 수행하다가 이후 행정보조 직군에 '전산사식 직렬'이 신설되어 1993년 12월부터는 전산사식 직렬 소속으로 출판물의 편집 등을 담당했다. 그런데 1999년 3월 국가정보원직원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기능직 직렬 중 전산사식,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영선, 원예의 6개 직렬이 폐지됨에 따라 두 사람은 1999년 4월 의원면직 되었다가 계약직(전임계약직) 직원으로 다시 채용되어 정보업무지원분야 중 전산사식 분야에서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폐지된 6개 직렬 중 A, B씨가 소속된 전산사식과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등 4개 직렬의 직원은 모두 여성이었고, 영선, 원예 등 2개 직렬의 직원은 모두 남성이었다.

두 사람은 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며 계속하여 근무하던 중 A씨는 2008년 12월, B씨는 2008년 3월 '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에서 정한 전산사식의 근무상한연령인 만 43세에 도달했으나, 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의 부칙 2조에 따라 국가정보원장이 별도로 정한 후속처리지침에 따라 그로부터 각각 2년을 더 연장하여 근무하다가, A씨는 2010년 12월, B씨는 2010년 6월 각각 퇴직했다. 이에 A, B씨는 "직렬폐지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가 이듬해 패소가 확정되자, "우리들이 근무한 전산사식 직무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43세로 정한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조기퇴직 하도록 부당하게 낮은 정년을 정한 것으로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어서 위법하다"며 다시 소송을 냈다. 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 20조는 전임계약직 직원의 근무상한연령을 상담, 전산사식, 입력작업, 안내 분야는 만 43세, 영선, 원예 분야는 만 57세로 정하였고, 부칙 2조에 따라 국가정보원장이 제정한 후속처리지침은 계약직으로 신규채용된 직원 중 전산사식,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분야의 근무자는 만 45세까지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

대법원은 "1999. 3. 31. 전산사식, 입력작업, 전화교환, 안내, 영선, 원예의 6개 직렬 폐지 당시 원고들이 속했던 전산사식 직렬은 사실상 여성 전용 직렬이었고, 영선, 원예 직렬은 사실상 남성 전용 직렬이었는데, 직렬 폐지 이후 개정 · 시행된 '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 20조는 전산사식 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영선, 원예 분야의 근무상한연령에 비하여 14년이나 낮게 정하였고, 국가정보원장의 후속처리지침까지 고려하더라도 12년이나 낮게 규정하였다"고 지적하고, "사업주의 증명책임을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 30조에 따라, 사실상 여성 전용 직렬로 운영되어 온 전산사식 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사실상 남성 전용 직렬로 운영되어 온 다른 분야의 근무상한연령보다 낮게 정한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는 국가정보원장이 증명하여야 하고, 이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 사건 연령 규정(국가정보원 계약직직원규정 20조 및 후속처리지침에서 전산사식 분야의 근무상한연령을 만 43세로 정하거나 또는 만 45세로 연장할 수 있도록 정한 부분)은 강행규정인 남녀고용평등법 11조 1항과 근로기준법 6조에 위반되어 당연무효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 11조 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 · 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근로기준법 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따라서 "이 사건 연령 규정이 남녀고용평등법 11조 1항에 위반되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는 법규적 효력은 물론이고 행정내부적인 효력도 없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이 사건 연령 규정이 남녀고용평등법 11조 1항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전혀 심리 · 판단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연령 규정을 행정내부 준칙으로 삼아 재계약 당시 계약기간 또는 계약기간 만료 이후 갱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전제한 다음 그에 따라 이루어진 국가정보원장의 퇴직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