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술에 취해 차로 지인 밟고 지나갔으나 살인 무죄
[형사] 술에 취해 차로 지인 밟고 지나갔으나 살인 무죄
  • 기사출고 2019.10.04 07: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법] "살인의 고의 증명 안 돼"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9월 9일 술에 취해 지인을 차로 밟고 지나가 숨지게 해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66) 씨에 대한 상고심(2019도1870)에서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음주운전 혐의만 유죄로 보아 징역 1년 2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와 B(당시 62세)씨는 여수시 성산공원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함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오전 3시 24분쯤 B씨가 운전하는 B씨 소유의 그랜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성산공원 공영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전면주차를 한 뒤 시동을 켜 둔 상태에서 B씨는 차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놀자고 하고 A씨는 노래방으로 가자고 하는 등 대화를 나누다가 오전 3시 34분쯤 승용차에서 하차했다.

A씨는 7분 후인 오전 3시 41분쯤 혈중알코올농도 0.130%의 상태로 B씨의 그랜저 승용차 운전석에 승차한 다음 그대로 11m 가량을 후진하여 승용차 뒤편 길 위에 누워있던 B씨의 몸통 부위를 승용차의 좌측 뒷바퀴와 앞바퀴 부분으로 차례로 밟고 지나가고, 2분 후인 오전 3시 43분쯤 재차 승용차를 운전하여 전진하면서 앞쪽에 쓰러져 있던 B씨의 몸통 부위를 다시 밟고 지나간 다음 약 1시간 후인 오전 4시 51분쯤 현장을 이탈할 때까지 B씨를 구호하는 등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기소됐다. B씨는 같은날 오전 10시 10분쯤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했다.

A씨는 성산주차장에서의  음주운전 외 또 다른 음주운전 혐의로도 기소됐다.

1심은 "피고인에게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된다"며 A씨의 혐의 전부를 유죄로 판단,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범행하였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피고인과 피해자는 노래방을 가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피고인과 피해자의 의견이 서로 다르긴 하였으나 그랜저 차량의 블랙박스에 녹화된 음성에 의하면 서로 술에 취한 상태임에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졌다거나 피고인의 감정이 상하였다는 등의 정황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사건 당일에 피고인의 우측 눈 부위에 상처가 발생하였고, 피고인의 안경다리가 사건 현장에 부러진 채로 있긴 하였으나 그랜저 차량 블랙박스의 영상에는 사건 발생 후로부터 약 30여분이 지난 04:19경에도 피고인이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감정서에도 피해자에게 발생한 상처가 다른 사람과의 몸싸움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얼굴에 난 상처가 피해자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입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피고인이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A씨가 노래방 가는 문제로 B씨와 대화를 하다가 기분이 상하여 다투게 되었고 오른쪽 눈 부위를 얻어맞아 안경까지 깨지게 되자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B씨를 때려눕힌 다음 살해한 것으로 보았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B씨는 키 약 176cm의 건장한 체격으로 A씨보다 나이도 어리며, B씨의 사실혼 배우자도 수사기관에서 B씨가 어디서 맞고 다니거나 남을 함부로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이어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자 하였다면 좀 더 빠른 속도로 멈춤 없이 이 사건 차량을 운행하여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내고자 하였을 것인데, 피고인이 느린 속도로 차량을 뒤로 빼고 다시 전진한 점, 피고인이 피해자를 역과하여 살해하고자 하였다면 차량을 일직선으로 전진시켜 역과를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나, 피고인은 핸들을 비스듬하게 좌측으로 돌렸는데 차량의 앞면 좌측에 주차장 입구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단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위한 의도로 차량을 후진과 전진하다가 과실로 바닥에 누워 있는 피해자를 역과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차량으로 피해자의 몸통 부위를 두 차례 역과한 후 피해자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