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원천징수제도
[리걸타임즈 칼럼] 원천징수제도
  • 기사출고 2019.08.0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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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변호사]

지난 글에서는 본래 납세의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납세의무자가 아니면서도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원천징수의 경우이다.

◇이종혁 변호사
◇이종혁 변호사

원천징수(withholding tax)란 소득금액을 지급하는 자(원천징수의무자)가 지급받는 자(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그의 세금을 징수한 후 국가에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를 들 수 있다. 근로자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을 때에 애초부터 세금을 공제한 금액을 수령한다. 본래 소득세의 납세의무자는 근로자이므로, 근로자는 소득금액을 수령한 후 그 이듬해에 몰아서 소득세를 신고하여야 논리에 맞다. 하지만 현재 세법에 의하면, 회사가 근로자에게 소득금액을 지급할 때에 원천적으로 소득세를 징수해서, 그 다음 달에 근로자의 소득세를 대신 납부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회사는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것일까? 아니다. 납세의무자는 오직 급여를 수령한 근로자이고, 회사는 국가와 납세의무자 사이에 끼어 있다는 이유로 납세협력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원천징수제도는 이와 같은 독특한 성격으로 인하여, 그 운용과정에서 여러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다. 이에 관해 납세자의 입장에서 유의할 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징세의 편의"가 목적

우선 원천징수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자. 위에서 설명한 근로소득세 사례에서, 근로자들이 각자 소득세를 신고해야 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수많은 근로자들이 개별적으로 소득세를 신고해야 하고, 과세관청은 그 소득금액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또한 소득의 발생시점과 신고시점의 차이로 인하여, 세금이 탈루될 여지도 많아진다. 그런데 회사가 근로자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원천에서 곧바로 소득세를 징수하고, 회사로 하여금 그렇게 징수한 소득세를 국가에 납부하도록 한다면, 국가와 근로자 모두 상당한 수고를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세수입의 조기 확보도 가능해진다. 결국 "징세의 편의"를 위해서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 원천징수제도의 핵심이다.

이러한 원천징수의 필요가 근로소득에 한정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서는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 다양한 유형의 소득금액에 대해서 원천징수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원천징수의 또 다른 유형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득을 얻는 비거주자 또는 외국법인에 대하여 소득의 지급자가 세금을 미리 공제하고 지급하는 것이 있다(법인세법 제98조, 소득세법 제156조). 마찬가지로 소득을 얻는 비거주자 또는 외국법인이 납세의무를 부담하지만, 이들에 대한 징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소득의 지급자를 통해서 편리하게 세금을 걷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현재 세법에서 원천징수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소득을 지급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원천징수대상인지 여부를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불이행시 가산세, 형사처벌 대상

세법상 원천징수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원천징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 낭패를 보기 쉽다. 우리 세법은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원천징수대상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지울 뿐 아니라, 원천징수의무의 적정한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가산세 및 처벌 등의 무거운 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과세관청은 원천징수의무자가 납부하지 않았거나 적게 납부한 세액의 3%와 납부기한의 다음 날부터 하루당 0.025%를 곱한 금액의 합계를 원천징수불성실가산세로 부과한다. 또한 원천징수의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원천징수를 하지 않거나 원천징수한 세액을 납부하지 않는 경우에는 조세범처벌법상 형사처벌의 대상에 해당한다.

이처럼 원천징수제도는 국가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제도이지만, 원천징수의무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과도한 의무를 부담하는 측면이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국가가 편의나 효율이라는 명분을 들어 본래 국가가 해야 할 직무를 국민들에게 떠밀었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원천징수제도가 우리의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은 근로소득, 이자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 있다(대법원 1989. 1. 17. 선고 87누551, 552 판결, 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6두3964 판결). 헌법재판소도 법인세법상 소득처분에 따라 소득으로 의제된 경우 원천징수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에 대하여, 원천징수의무 부과 이외에 조세포탈 방지 등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고 위 조항으로 달성되는 공익이 법인이 입는 피해에 비하여 작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헌법재판소 2009. 2. 26.자 2006헌바65 결정).

대법, 헌재는 합헌 입장

학계에서도 원천징수제도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견해가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원천징수의무가 특별한 보상 없이 다른 사람의 의무를 대신하는 것인 만큼 헌법상 한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원천징수의무는 헌법 제38조에서 정하는 납세의무가 아니라 세법에서 별도로 정한 공법상 의무라는 전제에서, 원천징수의무자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서 희생하는 사익이 그로 인하여 도모되는 공익에 비하여 부당하게 크다면, 헌법상 비례원칙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최근 대법원에서 원천징수의무에 관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선고되어 소개한다. 매매계약이 매수인인 내국법인의 채무불이행으로 해제되는 경우 내국법인이 외국법인에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한다는 특약에 따라 계약금이 위약금으로 대체되었을 때, 그 금원에 대하여 내국법인이 법인세 원천징수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우리 세법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 중 국내에서 위약금 또는 배상금을 지급하는 자는 당해 법인에 대한 법인세를 원천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내국법인은 문제된 금원을 지급할 당시 그 금원의 성질이 계약금에 불과했으므로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는데, 이후 내국법인이 잔금 지급의무를 불이행함에 따라 계약금이 위약금으로 대체되었다. 이에 과세관청은 이를 위약금 또는 배상금의 지급으로 보아 내국법인이 원천징수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인세 및 가산세를 부과하였다.

대법, 계약금 몰취에 원천징수의무 인정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계약금이 몰취된 경우도 위약금 또는 배상금을 지급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매수인에게 그에 대한 법인세의 원천징수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아마도 대법원은 외국법인이 매도인으로서 위약금 상당의 소득을 올린 이상, 매수인에 대한 원천징수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징세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하는 단계에서 장래 계약이 해제될 것까지 예상하여 미리 원천징수를 하는 것은 거래의 관행상 상정하기 힘들다(오히려 매도인은 원천징수세액만큼 계약금이 미지급 되었다고 보아 채무불이행으로 문제 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와 같이 매수인이 법인세를 원천징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까지 무조건적으로 원천징수의무 이행을 강요하는 것은 납세자에게 과도한 협력의무를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천징수제도는 징세의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고, 실제로 우리나라 징세절차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원천징수는 납세의무자 아닌 사인(원천징수의무자)의 희생을 통해서 징세의 편의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천징수의무자에게는 과세관청에게 인정되는 조사권 등의 권한이 없다. 원천징수는 납세의무의 존부와 범위가 명확해서 원천징수의무자의 입장에서 별도의 조사나 판단을 할 필요 없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을 만한 사안으로 한정되어야 맞다. 하지만 현재 원천징수는 지나치게 넓은 범위에서 그리고 납세의무의 존부와 범위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국가가 징세 책임을 납세의무자 아닌 국민에게 떠밀어 우선적으로 세금을 확보하고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거래당사자들 사이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세법이 지나치게 징세의 편의에 치우쳐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