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게임의 규칙도 보호될 수 있을까
[리걸타임즈 칼럼] 게임의 규칙도 보호될 수 있을까
  • 기사출고 2019.08.0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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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경 변호사]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물이라고 정의하여 각종 권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기 이전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적어도 저작물로서는 보호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의 규칙은 게임에서 이용자 간 승패나 목적의 성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므로 그 자체로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지금까지 판례의 기조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 게임의 규칙도 다른 구성요소들과의 선택, 배열 및 유기적인 조합에 따라 창작적인 표현의 한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여 게임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다212095 판결).

'팜히어로사가' vs '포레스트 매니아'

킹닷컴 리미티드의 게임인 '팜히어로사가'는 농작물을 캐릭터로 하여 같은 타일을 3개 이상 직선으로 연결시켜 사라지게 함으로써 점수를 얻는 게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매치-3-게임에 해당한다. 또한 기본적인 매치-3-게임 규칙 이외에도 게임의 모드와 난이도를 세분화하고, 단순히 특정 3개 타일을 연결시켜 없애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목표를 도입하며, 단계별로 여러 가지 방해 규칙을 둠으로써 이용자의 흥미와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김도경 변호사
◇김도경 변호사

한편 주식회사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의 게임인 '포레스트 매니아'는 숲 속에 사는 동물들을 주된 캐릭터로 하는 매치-3-게임으로, 해당 게임 역시 마찬가지로 여러 모드, 난이도 및 방해 규칙을 두었는데, 그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각종 모드, 레벨 및 방해 규칙의 도입 단계, 배열 및 조합을 '팜히어로사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동안 법원은 게임의 규칙 그 자체는 저작권법이 보호하지 않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고, 게임 규칙의 선택, 배열 및 조합이 저작권으로 보호되기 위해서는 무한히 많은 표현 형태 중에서 저작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더욱이 화면이나 게임의 용량, 호환성, 기타 PC, 모바일 게임이 가지는 한계로 인하여 표현이 제한되는 경우에는 어떤 특정한 규칙이 게임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작성자의 개성 있는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과거 법원의 판례 하에서는,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규칙을 사용한 게임에서 그 구체적인 표현 방식(캐릭터, 아이콘, UI의 배치, 특수효과 등)이 달라지더라도 저작물로서의 창작성을 인정받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상황이었다(사실 계속적 영업 의사가 있는 게임 회사가 다른 게임의 표현 방식까지 그대로 베껴 게임을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1, 2심 법원, 유사성 부정

이번 '팜히어로사가' vs '포레스트 매니아' 사건의 1심, 2심 법원에서도 위와 동일한 입장에서, 매치-3-게임이라는 규칙은 아이디어에 불과하고, 규칙들의 조합 자체만으로는 게임 개발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주로 게임의 표현방식(화면 구성, 디자인 등)에 중점을 두어 서로 비교한 다음 유사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게임 저작물이란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미술저작물, 영상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 저작물 등이 결합되어 있는 복합적 성격의 저작물이라고 본 다음, 게임물에는 게임 사용자의 조작에 의해 일정한 시나리오와 게임 규칙에 따라 반응하는 캐릭터, 아이템, 배경화면과 이를 기술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컴퓨터프로그램 및 이를 통해 구현된 영상, 배경음악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복합적 성격의 저작물인 게임물은 게임 제작자의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선택, 배열하고 조합함으로써 다른 게임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게임물의 창작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게임물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각각의 창작성을 고려함은 물론이고, 구성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선택, 배열되고 조합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그 게임물 자체가 다른 게임물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게임은 복합적 성격의 저작물"

이러한 판단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팜히어로사가'의 개발자가 그동안 축적된 게임 개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팜히어로사가'의 성격에 비추어 필요하다고 판단된 요소들을 선택하여 나름대로의 제작 의도에 따라 배열, 조합함으로써, '팜히어로사가'는 개별 구성요소의 창작성 인정 여부와 별개로 특정한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된 주요한 구성요소들이 선택, 배열되고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어 앞선 다른 게임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갖게 되었다고 보았고, 원심의 판결은 그러한 점을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하여 파기환송하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게임 규칙 그 자체에 대하여 아이디어로서의 성격을 부정하거나 저작물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창작적 표현이라는 근간은 계속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똑같은 매치-3-게임의 규칙을 이용하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게임 제작자로서는 여기에 어떠한 변칙을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난이도로 어떠한 시각적 요소를 결합하여 적용할 것인지를 (이용자가 최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의도하여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이용자는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흥미롭다고 판단되는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게임 어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매치-3-게임 중에서도 살아남는 게임이 일부에 불과한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즉, 게임의 단순한 시각적 표현뿐 아니라 게임 구성요소들을 서로 어떻게 선택, 배치, 조합하는가 역시 게임 제작자의 역량이자 개성이 되는 것이고, 다른 게임과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보호가치 있는 창조적 표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판결들은 게임 규칙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는가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사실상 그대로 베낀(dead copy) 수준의 게임이 아닌 이상 저작권 침해가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게임 규칙을 비롯한 게임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선택, 배열, 조합되었는지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바, 게임의 저작물성을 보다 입체적이고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게임 제작자의 저작권이 보호될 수 있는 영역 또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의의가 있다.

게임 제작자의 저작권 보호 확장 의의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하여 게임물 저작권 분쟁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게임 개발사들로는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게임 및 이미 유통하고 있는 게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면밀한 점검의 기회를 갖고, 앞으로의 게임 시장에서는 서로 간의 더욱 건전한 게임 개발 경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도경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okyung.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