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감사원 문책요구로 징계 앞두고 목숨 끊은 메트로 직원…업무상 재해"
[노동] "감사원 문책요구로 징계 앞두고 목숨 끊은 메트로 직원…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19.07.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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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상적 인지능력 현저히 저하"

감사원의 문책요구로 징계처분을 받게 되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메트로 직원에게 대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메트로 직원 김 모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6두59010)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업무상 재해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감사원은 201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서울메트로를 대상으로 '지하철 공기업 경영개선실태' 감사를 실시하여 '서울메트로가 스크린도어 설치공사에 대하여 부가가치세 영(0)세율을 적용하여야 함에도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 채 시공업체인 S사에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공사대금을 지급했으나 그후 S사의 폐업으로 약 17억 240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지 못한 손실을 입은 사실'을 발견하고, 2011년 11월 6일 서울메트로에 김씨 등 4명에 대해 정직 처분을 하라는 취지의 문책요구서를 보냈고, 서울메트로는 19일 후인 같은달 25일 김씨에게 문책요구서 사본을 주었다. 김씨는 감사원의 문책요구에 매우 억울해 하면서 재심을 청구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포기했다. 문책요구를 받은 직원들 중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2012년 2월 정직 1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가, 이후 자체상벌위원회에서 모두 감봉 3월로 감경되었다.

김씨는 감사원의 감사가 있기 전까지 불안, 우울 등의 증상으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나,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알게 된 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으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했고 사무실에서도 자주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김씨는 자리에 잘 앉아 있지도 않고 업무도 거의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동료 직원에게 "본부장님 날보고 아는 체도 않고 피하네. 회사 사람들도 모두 나를 범죄자 취급하며 욕하는 것 같다.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쳐다보면서 수군거리는 게 확실히 느껴지고 다들 손가락질 하는 것 같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기도 했다. 또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은 상태에서 승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는데, 감사원의 문책요구에 따른 징계로 승진에서 누락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했고, 회사로부터 회사가 입은 손실액에 대하여 구상권 행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불안해했다. 김씨는 11월 25일 회사로부터 감사원의 문책요구서 사본을 받은 후부터는 불면이 더욱 심해졌다. 부인에게 "세상에 난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네 눈에도 내가 파렴치범으로 보이지?"라는 말을 했으며, 매일 누르던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밤새 소파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담배를 사러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다시 담배를 사러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다음날인 11월 26일 오전 11시쯤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갔다가 같은날 오후 1시쯤 들어와 등산화로 바꿔 신은 후 산에 간다고 하면서 다시 집을 나갔고, 그 다음날 오전 8시 30분쯤 등산로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에 김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되자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김씨가 평균적인 근로자로서 감수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김씨는 감사원이 김씨 등을 조사하고 김씨에 대하여 문책을 요구하자, 자신이 억울하게 징계를 받고, 그 결과 승진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크며, 아울러 회사로부터 구상권 청구까지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에 이어진 김씨의 발언이나 행동 등에 비추어 보면 그가 위와 같은 스트레스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계속적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자살 직전에는 이상 행동에까지 이르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자살 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유서를 남겨놓지 않았고,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로프를 이용해 자살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김씨의 자살은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김씨는 평소 밝고 유쾌하였고, 동료들과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 전까지는 우울증 등 신경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업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이와 같은 증상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1년 9월 서울메트로에 입사하여 약 20년 2개월 동안 근무하였고, 자살하기 전까지 재정팀장으로서 세금과 자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회사에 근무하면서 서울시장과 서울메트로 사장으로부터 6회에 걸쳐 표창을 수여받았다. 재직 중 징계를 받은 적은 없었다.

대법원은 따라서 "김씨는 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김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의 자살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