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단협 중 '회사에 소송 걸면 성과급 90% 감액지급, 격려금 미지급' 부분 무효"
[노동] "단협 중 '회사에 소송 걸면 성과급 90% 감액지급, 격려금 미지급' 부분 무효"
  • 기사출고 2019.07.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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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 "재판청구권 침해…사회질서 위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근로자에게는 성과급을 90% 감액해 지급하고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의 해당 부분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회사와 해당 근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들 사이의 기존 법률관계의 보호 필요성 등에 비추어 단체협약 중 무효로 되는 부분은 이 부분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대구지법 민사8-3부(재판장 정지영 부장판사)는 7월 10일 이 모씨 등 대구에 있는 자동차용 여과지 제조 · 판매업체 H사의 근로자 9명이 그동안 못 받은 성과급과 격려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8나319922)에서 이같이 판시, 1심과 마찬가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감액한 성과급과 미지급한 격려금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재철 변호사가 원고들을, 피고 측은 법무법인 광장이 대리했다.

H사는 2010년도부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여 오다가 2014년 1월 노조와 성과급 지급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단체협약 부속합의(제1합의)를 체결했는데, 이 부속합의에서 '회사를 상대로 금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당해 연도에도 소송이 종결 확정되지 아니한 자' 등에게는 개인별 성과급의 10%만 감액지급한다고 규정했다. H사는 또 2014년 7월 노조와 성실 근무 근로자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제2합의)를 하면서, '지급일 이전 1년간 노동위원회, 경찰, 검찰, 법원이나 관공서 등에 회사나 회사 대표 등을 상대로 진정, 고소, 고발, 소송 등의 민원을 제기한 사실이 있는 자'는 민원의 결과나 취하 등과 관계 없이 격려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후 H사는 근로자들에게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100%를 지급했으나, 원고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이 종결 확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유로 제1합의에 따라 원고들에게는 2013년도부터 2017년도분까지의 성과급을 90% 감액하여 지급했다. 또 2014년 7월 원고들을 제외한 다른 근로자들에게 기본급의 100%에 해당하는 노사성실격려금을 지급했으나 제2합의에 따라 원고들에게는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이 "제1, 2합의 중 소 제기 등의 사유로 성과급을 감액 지급하고,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한 부분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이에 앞서 2013년 9월과 10월경 회사를 상대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유로 미지급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2건의 소송을 냈으나,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되어 1건은 2018년 12월 확정되었고, 나머지 1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원고들은 또 2014년 10월과 2016년 12월, 2017년 1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회사 등을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처분이 내려졌다. 원고들 중 1명은 무혐의처분 중 일부에 대하여 재정신청을 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원고들의 이러한 소송 제기, 고소 등을 이유로 회사가 성과급을 감액 지급하고,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성과급 등의 지급기준을 정함에 있어 회사에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고, 피고가 그 노동조합과 합리적 기준에 따라 성과급, 격려금을 차등 지급하는 내용의 합의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며 그러한 합의를 위해 사전에 근로자들로부터 개별적 동의나 수권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고소를 하였다는 사유 등만으로 성과급을 감액지급하고,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은 회사가 경제적 불이익과 임금을 통한 차별적 처우를 통하여 근로자들의 재판청구권 등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규정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이 사건 각 지급기준이 피고에 대한 정당한 소제기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금전요구를 함으로써 직장질서를 저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각 지급기준의 내용 자체만으로는 피고가 부당한 행위를 하여 그에 대하여 근로자들이 정당한 권리행사의 방법으로 소송 등을 제기한 경우에도 성과급을 감액지급하고,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특히 제2합의는 소송 등을 제기한 경우 그 결과나 취하 등과 관계없이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어 피고의 주장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하고, "각 지급기준은 원고들의 헌법상 권리인 재판청구권(헌법 27조 1항)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내용인바, 이는 단체협약의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노조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 또는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제1합의를 이유로 감액한 성과급과 제2합의를 이유로 미지급한 격려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무효의 범위와 관련, "각 지급기준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내용으로 민법 103조 위반으로 무효이나, 제1, 2합의의 체결 경위, 피고와 피고 노조 간의 자율적 합의의 존중 필요성, 단체협약의 단체법적인 성격, 피고와 원고들 외의 나머지 근로자들 사이의 기존 법률관계의 보호 필요성 등에 비추어 보면 제1, 2합의 중 무효로 되는 부분은 이 사건 각 지급기준에 한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협약자치의 원칙상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사이에 근로조건을 유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으므로,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노조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노사간의 합의를 무효라고 볼 수는 없고, 노조로서는 그러한 합의를 위하여 사전에 근로자들로부터 개별적인 동의나 수권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였는지 여부는 단체협약의 내용과 체결경위, 당시 사용자측의 경영상태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할 것(99다67536 판결 등 참조)"이라며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 103조에 의하여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와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99다56833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