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가수 유승준씨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위법"
[행정] "가수 유승준씨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위법"
  • 기사출고 2019.07.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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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13년 전 입국금지결정 따른 재량권 불행사 위법"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 · 43)씨가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7월 11일 유씨가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주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두38874)에서 유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반영해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LA 총영사는 취소판결의 취지에 따라 하자를 보완하여 유씨의 사증발급 신청에 대하여 다시 처분을 하여야 하고, 대법원이 판결에서 사증발급 신청에 대해 재처분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바, 사증이 발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사증발급 거부 당시 또는 재처분시 고려해야 했거나 고려해야 할 사정으로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의 대한민국 출입국과 체류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과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에도 38세 전까지만 재외동포(F-4) 체류자격 부여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법무법인 세종과 광장이 1심부터 유씨를 대리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유승준씨(블로그 캡처)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유승준씨(블로그 캡처)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유씨는 방송 등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2002년 1월 미국 시민권을 얻고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유씨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병무청이 법무부에 '유씨가 공연을 위하여 병무청장의 국외여행허가를 받고 출국한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써 사실상 병역의무를 면탈하였는데, 유씨가 재외동포의 자격으로 입국하여 방송활동, 음반출반, 공연 등 연예활동을 할 경우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되며 외국 국적 취득을 병역 면탈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유씨가 재외동포 자격으로 재입국하고자 하는 경우 국내에서 취업, 가수활동 등 영리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불가능할 경우 입국 자체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 법무부가 유씨의 입국을 금지하는 결정을 하고, 그 정보를 내부전산망인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에 입력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유씨에게 통보를 하지는 않았다.

유씨가 3년 후인 2015년 8월 주LA 총영사에게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의 사증발급을 신청했으나 불허되자 주LA 총영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LA 총영사는 유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유씨가 입국규제대상자에 해당하여 사증발급이 불허되었다. 자세한 이유는 법무부에 문의하기 바란다'고 통보하고, 여권과 사증발급 신청서를 반환했을 뿐, 처분이유를 기재한 사증발급 거부처분서를 작성해 주지는 않았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입국금지결정에 제소기간 내에 불복하였어야 하는데, 원고가 불복하지 않아 입국금지결정에 불가쟁력이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는 입국금지결정에 구속되고 그에 따른 사증발급 거부처분은 적법하고, 사증발급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입국금지결정의 하자를 사증발급 거부처분의 하자로 주장할 수 없다"며 유씨의 청구를 기각하자 유씨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먼저 "(13년 7개월 전에 있었던 원고에 대한) 입국금지결정은 법무부장관의 의사가 공식적인 방법으로 외부에 표시된 것이 아니라 행정 내부 전산망에 입력하여 관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이 입국금지결정은 법무부장관이 사증발급권한을 위임받은 재외공관장인 피고에 대하여 '원고가 출입국관리법 11조 1항 각호에서 정한 입국금지대상자에 해당하므로 대한민국 입국을 위한 사증발급이나 입국허가결정을 하지 말라'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상급행정기관의 지시는 일반적으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으므로, 사증발급 거부처분이 재외공관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해당하는 입국금지결정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출입국관리법의 사증발급에 관한 조항과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의 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에 관한 조항을 살펴보면, 재외동포에 대한 사증발급은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처분의 근거법령이 행정청에 처분의 요건과 효과 판단에 일정한 재량을 부여하였는데도, 행정청이 자신에게 재량권이 없다고 오인한 나머지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과 그로써 처분상대방이 입게 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를 전혀 비교형량하지 않은 채 처분을 하였다면, 재량권 불행사로서 그 자체로 재량권 일탈 · 남용으로 해당 처분을 취소하여야 할 위법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피고가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오로지 13년 7개월 전에 입국금지결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하였으므로 재량권 불행사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특히 "입국금지결정은 원고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병역 의무를 면하였음을 이유로 한 제재조치로, 이때 의무 위반 내용과 제재처분의 양정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입국금지결정을 유일한 이유로 한 사증발급 거부처분에 있어서도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의 대한민국 출입국과 체류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재외동포에 대해 기한의 정함이 없는 입국금지조치는 법령에 근거가 없는 한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사증발급 거부처분 당시 적용되던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남자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에도 38세가 된 때에는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외동포체류자격의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처분서 작성 · 교부' 안 한 것도 위법

대법원은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하면서 유씨의 아버지에게만 전화로 불허 사실을 통보하고, 처분이유를 기재한 사증발급 거부처분서를 작성 · 교부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사증발급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그 성질상 행정절차법 24조가 정한 '처분서 작성 · 교부'를 할 필요가 없거나 곤란하다고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출입국관리법령에 사증발급 거부처분서 작성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아 '행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 경우로도 볼 수 없어 행정절차법 위반, 위법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 "유씨가 2002년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할 때까지 수년 간 대한민국에서 활발하게 연예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공개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으나, 입국금지결정이나 사증발급 거부처분이 적법한지는 실정법과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별도로 판단하여야 한다"며 "입법자가 정한 입국금지결정의 법적 한계, 사증발급 거부처분과 같은 불이익처분에 있어서 적용되어야 할 비례의 원칙 등을 근거로 유씨에 대한 재외동포 사증발급 거부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