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수갑 찬 피의자 경찰 조사 모습 촬영 허용…초상권 · 인격권 침해"
[손배] "수갑 찬 피의자 경찰 조사 모습 촬영 허용…초상권 · 인격권 침해"
  • 기사출고 2019.07.1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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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보도자료 배포는 위법성 조각"

경찰이 언론에 피의자가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하도록 허용한 것은 초상권과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특히 법원은 이 판결에서 수사기관의 보도자료 배포, 피의자 촬영 허용 등 피의사실 공표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강하영 판사는 6월 28일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된 정 모씨 형제가 "경찰 수사 중 초상권과 인격권 침해를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2017가단5047454)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 "국가는 동생 정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형의 청구에 대해서는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정씨 형제는 2011년경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보험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동생에 대해서는 구속영장까지 발부됐다. 강동서 경찰관들은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2년 4월 25일 경찰서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교통사고 위장, 보험금 노린 형제 보험사기범 검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어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하여 동생이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용, 각 언론사에서 정씨 형제의 피의사실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36세 정씨 형제' 등으로 표현하고, 동생이 수갑을 차고 얼굴을 드러낸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조사받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하여 방송했다. 이에 정씨 형제가 보도자료 배포 등 피의사실 공표와 동생에 대한 촬영 허용 등 강동서 경찰관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초상권, 인격권 등이 침해되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강 판사는 먼저 피의사실이 포함된 보도자료 배포와 관련,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강 판사는 "강동경찰서 경찰관들은 원고들을 기소하기 전에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그로 인하여 원고들의 나이, 가족관계, 과거 경력, 피의사실 등이 보도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형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보도자료 배포로 인하여 원고들에 대한 피의사실이 공표되었고, 그로 인하여 원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통상 13년 동안 98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3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수령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상대방 운전자들의 진술과 CCTV 영상 등을 기초로 한 수사결과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므로 담당 경찰관들로서는 원고들에 대한 사기 및 공갈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 원고들이 지급받은 보험금 액수가 3억원을 초과하고 보험사기로 인한 피해는 결국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져 대다수의 선량한 보험계약자들이 입게 되는 것이므로 동일 또는 유사한 수법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하여 피의사실을 알리는 것은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점, 보도자료에는 원고들의 범죄 혐의에 관한 표현이 다소 단정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경찰 수사단계에서의 발표에 불과하고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최종적인 판단은 재판 결과에 따라 확정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으며, 원고들의 성과 나이만을 밝힘으로써 익명의 형식을 취한 점, 이 사건 보도자료는 피의사실을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공식적인 절치를 거쳐 배포한 것인 점, 형에 대한 무죄 판결의 이유에서 '피고인(형)이 공소사실과 같이 약 8개월 동안 4회의 교통사고를 당해 보험회사로부터 2000만원을 상회하는 보험금을 수령한 점, 상대방 차량 운전자들이 입원치료를 받지 아니하고 차량의 파손 정도가 대체로 중하지 아니한 점, 상대방 운전자들이 피고인이 과다한 보험금을 수령하였고 사고 경위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입원기간 중 잦은 외출을 하기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를 과장하여 보험금을 과다 수령하거나 또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보험금을 수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라고 판단하였고, 동생에 대하여는 유죄 판결이 확정된 점 등을 종합하면, 담당 경찰관들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강 판사는 특히 대법원 판결(2001다49692 등)을 인용해 "일반 국민들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 범죄에 관한 알권리를 가지고 있고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에 관하여 발표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러한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 할 것이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하여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발표에 한정되어야 하고, 이를 발표함에 있어서도 정당한 목적 하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하여 공식의 절차에 따라 행하여져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대하여도 유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할 것이므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가 위법성을 조각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공표의 절차와 형식, 그 표현 방법,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하여 생기는 피침해 이익의 성질,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사기와 공갈 혐의로 기소된 동생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사기 혐의로 기소된 형은 무죄가 확정됐다.

강 판사는 그러나 수갑을 찬 동생의 모습을 촬영하도록 허용한 것에 대해서는 초상권과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과 같이 피의자를 특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수사기관 내에서 촬영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고, 동생은 보험사기를 이유로 체포된 피의자에 불과하여 신상에 관한 정보공개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명시적으로 촬영 거부의사를 밝히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담당 경찰관으로서는 동생에 대한 촬영 요청을 허용하지 않거나, 촬영을 허용하더라도 얼굴 공개가 가져올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모자, 마스크 등으로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하고, "강동경찰서 경찰관들은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동생이 조사실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게 허용하였고, 그에 따라 언론사들은 동생이 수갑을 차고 얼굴이 드러난 상태에서 조사받는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하여 방송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부 언론에서는 조사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피의자신문조사에 기재된 피의자의 실명까지 나타나게 방송하였는바, 그로 인하여 피의자의 초상권과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동생에 대한 촬영 허용행위는 위법하고, 피고는 그로 인하여 동생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액수를 1000만원으로 정했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85조는 "경찰관은 경찰관서 안에서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동생이 낸 헌법소원에서, "강동경찰서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에 대한 조사과정의 촬영을 허용한 행위는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위헌임을 확인한다"고 결정했다. 

강 판사는 다만 형의 청구에 대해서는, "형에 대하여는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초상권과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고, 동생에 대한 촬영 허용행위로 인하여 간접적으로 형의 신원이 공개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는 보도자료 배포행위로 인한 피의사실 공표행위에 포함되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형의 청구는 이유 없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