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비밀유지권' 침해 우려 사실로 드러나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침해 우려 사실로 드러나
  • 기사출고 2019.07.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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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경찰-국세청-금감원-공정위 순

미국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Duty of Confidentiality)와 구별하여, 연방법과 주법, 보통법에 의해 변호사-의뢰인간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인정하고 있고, 영국도 보통법에 의해 변호사 특권(Legal Professional Privilege)이 인정된다. 또 '유럽변호사 행위규범(The Code of Conduct for European Lawyers)'은 "비밀유지는 변호사의 일차적인 권리이자 의무이다.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는 의뢰인의 이익뿐 아니라 사법제도 운영의 이익에도 봉사한다. 따라서 이는 국가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엔 아직 이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다. 특히 지난해 1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올 2월 가습기 살균제 수사와 관련해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서울중앙지검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의뢰인-변호사간 비밀유지권 침해에 대한 변호사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로펌과 기업 법무팀에 대한 압수수색뿐만 아니라 개인 의뢰인과 변호사간 메신저 대화내용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증거사용 등도 이어지고 있다.

변협 실태조사

대한변협이 지난 4월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비밀유지권 침해 피해사례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밀유지권을 침해한 권력기관은 검찰(응답자의 37.7%)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경찰(18.9%), 국세청(9.4%), 금융감독원(7.5%),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뒤를 이었다. 전통적인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 뿐 아니라 국세청 · 금융감독원 ·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로펌, 기업 · 기관의 법무팀, 개업 변호사의 사무실, 피의자의 사무실 등에서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7월 4일 조사결과를 분석해 발표한 변협은 응답자 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비밀유지권을 침해당한 방식은 피의자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여 그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34.5%)과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직접 압수수색하여 침해당했다는 답변(32.8%)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증거제출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비밀유지권을 침해하였다는 의견도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피의자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여 ▲변호사와의 이메일 등 교신 내역, ▲경찰 조사 참여시 변호사가 남긴 메모, ▲변호사의 법률 검토의견서 등을 증거로 수집하는 사례 등이 보고되었으며, 변호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경우에는 ▲피의자와의 문자메시지 · 카카오톡 대화내역, ▲상담일지 ▲의뢰인의 방어를 위해 준비 중인 변호인 의견서 등이 증거로 수집되었다. 또 사내변호사에 대해서는, 검찰 등이 ▲사내변호사와 로펌간 논의 내용, ▲거래 대상 로펌의 업무 내역서(time sheet)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변협은 이외에도 ▲의뢰인과 관련된 사람들을 소환하여 의뢰인과 변호사가 접촉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사례, ▲변호사가 근무 중인 로펌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압박하여 담당 사건 증거의 임의제출을 강요한 사례, ▲피고인과 구치소에서 접견한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피고인과의 상담 내용을 밝히지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한 사례, ▲피의자에게 변호인과의 상담 내용을 진술할 것을 요구한 사례 등 그 정도가 심각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밝혔다.

비밀유지권 침해에 대해 어떠한 대처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까. 조사에 응한 변호사들은 비밀유지권 침해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입법을 통한 비밀유지권 명문화를 들었다. 현행법에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특히 의뢰인과 변호사 간 온라인 · 오프라인 대화 내용, 상담 및 변론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 등에 대하여는 증거 수집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위법수집증거로 취급하여 증거능력을 배제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어 다수의 응답자들이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지적하면서, ▲피의자의 변소내용을 조서에 충실히 반영하지 않고, 직 · 간접적으로 진술을 강요하는 경우, ▲형식은 임의제출이지만 수사기관의 압박과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증거를 제출하도록 만드는 경우 등 낡은 수사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 침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검찰 등 국가기관의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변협은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은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전제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변호사간 상담 내용 및 이를 기록한 서류 등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협은 "위와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 도입을 위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앞으로 의뢰인 변호사간 비밀유지권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는 "법치주의의 실현, 진실한 법집행을 위하여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또는 권리를 공통된 가치로 추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소속 각 국가에 변호사의 비밀유지원칙 강화 및 보호를 요청하며, 이에 대한 국가의 침범은 변호사와 의뢰인간의 근본적인 신뢰관계, 변호사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사법의 진실성을 방해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