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기업과 법] 부당지원행위의 제문제
[리걸타임즈 기업과 법] 부당지원행위의 제문제
  • 기사출고 2019.07.08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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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지원행위 외연 넓어졌지만 법원은 엄격한 증명 요구"

최근 KB 자산운용이 SM 엔터테인먼트(에스엠)에 대한 주주서한을 발송하면서 에스엠이 라이크기획에 영업이익의 46% 규모에 해당하는 인세를 부당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라이크기획은 에스엠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가 100% 지분을 가진 개인 회사로, 에스엠 소속 가수들을 대상으로 프로듀싱을 해주는 대가로 에스엠으로부터 19년간 965억원에 달하는 인세를 받았다고 한다. KB의 주주서한이 공개되면서 에스엠의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규정 위반 여부가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최영익 변호사
◇최영익 변호사

19년간 965억원 인세 받아

부당지원행위는 사업자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말한다. 부당지원행위는 외국의 입법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인데, 이는 부당지원행위 규제가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 문제에 대한 우려에서 마련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법 개정을 통하여 부당지원행위의 유형을 세분화하는가 하면, 올 3월에는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그룹에 대해서도 부당지원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하며 규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호에선 부당지원행위가 무엇이고, 실무상 어떤 점들이 주로 다투어지는가를 최근 심결례와 판례를 중심으로 짚어 본다.

부당지원행위는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거래대상 및 형식에 따라 ①부당한 자금 · 자산 · 인력을 지원하는 행위와, ②부당히 거래단계를 추가하여 실질적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 이른바 통행세로 나눠볼 수 있다.

통행세도 부당지원행위

전자는 예컨대 계열회사가 금융회사로부터 차입하는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여해준 경우, 계열회사가 실시한 유상증자시 발생한 실권주를 고가로 인수한 경우, 업무 지원을 위해 인력을 계열회사에 제공한 후 인건비를 자기가 부담하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후자에는 예컨대 지원객체를 통해 제품을 간접적으로 구매하면서 실제 거래에 있어 지원객체의 역할을 지원주체가 수행하거나 지원주체와 지원객체의 역할이 중복되는 등 지원객체가 거래에 있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경우 등이 해당할 수 있다.

부당지원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원주체가 지원객체에게 제공하는 거래가격과 정상가격 간의 차이로 인하여 쌍방 거래의 대가가 불균형하여야 하고, 지원행위로 인하여 관련 시장에 경쟁저해성이 발생하여야 한다. 실무에서는 경쟁저해성보다는 정상가격에 비하여 거래의 조건이 지원객체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되었는지의 여부가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듯하다.

공정위의 부당지원행위 심사지침은 정상가격을 '지원주체와 지원객체 간에 이루어진 경제적 급부와 동일한 경제적 급부 시기, 종류, 규모, 기간, 신용상태 등이 유사한 상황에서 특수관계가 없는 독립된 자간에 이루어졌을 경우 형성되었을 거래가격'으로 정의한다. 즉, 정상가격은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추상적 개념이다. 하지만 지원주체가 지원객체와만 거래하여 비교대상이 없는 경우에는 '특수관계가 없는 독립된 자간의 거래가격'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상가격은 추상적 개념

또 비특수관계인과의 거래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거래의 특수성에 따라 정상가격이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이에 따라 부당지원행위 관련 행정소송에서는 정상가격이 잘못 산출, 부과되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아래는 정상가격 산출의 비합리성을 지적하여 공정위의 처분을 뒤집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룹 내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설치 · 운영 · 보수하는 일을 전담하는 SI(시스템통합)분야는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2년 공정위는, SK 계열사들이 경쟁입찰을 통하여 거래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음에도 그룹내 SI 회사인 SK C&C에게 현저히 유리한 거래조건으로 거래하였고, 그 결과 계열사들은 손실을 보고 SK C&C는 이익을 얻은 것으로 판단하여 약 3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공정위는 SK C&C가 비계열사와 거래할 때에는 인건비를 대폭 할인해주면서, 계열사와 거래할 때에는 정부 고시 단가를 그대로 적용한 점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2016년 법원은 동 처분을 취소하면서, SK C&C가 SK텔레콤에 제공한 유지보수 서비스의 수준이나 범위가 다른 계열회사들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수준의 유지보수 서비스가 제공됐다고 보고, 계열사들이 정상가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SK C&C를 지원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신세계는 2009년부터 계열사 신세계SVN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베키아에누보' 등을 본점 등에 입점시킨 뒤 다른 매장보다 낮은 판매수수료율을 적용하여 부당지원했다는 이유로 2012년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공정위가 제시한 정상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공정위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든 근거 중 하나는 베키아에누보 매장은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델리 매장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어 입점 취급품목, 매장 크기, 이익률, 원가구조, 고객의 평균 체류시간, 고객유인 효과 등의 측면에서 신세계에 입점한 다른 매장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공정위는 위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정상 수수료율을 조정하거나, 다른 백화점이 베키아에누보 매장과 유사한 업체와 거래하면서 적용하였던 수수료율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정상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통행세와 관련하여 주로 문제되는 쟁점은 지원객체가 거래단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는지 여부이다.

롯데기공 끼워 넣어 41억 매출 제공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전문업체인 롯데피에스넷은 이전까지는 ATM 전문제조업체와 직거래를 통하여 ATM을 구매해 왔었는데, 사업 확장을 위한 ATM의 추가 구매 과정에서 2009년 9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보일러 전문 제작업체인 롯데기공(현 롯데알미늄)을 유통단계에 끼워 넣어 롯데기공에 약 41억원 가량의 매출이익을 제공했다.

공정위는 ATM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던 롯데기공을 거래 중간에 끼워 넣은 것은 재무상황이 어려운 롯데기공에 수익을 창출해주려고 했던 것으로 판단되고, 롯데기공은 아무런 실질적인 역할 없이 형식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면서 중간마진을 챙긴 것이라고 보았다. 또 롯데피에스넷이 계열사인 롯데기공을 통하여 ATM을 구매한 것은 과거 구매행태 및 관련 업계의 보편적인 거래관행에 부합하지 않는 이례적인 것일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의 거래방식에 해당하므로, 결국 롯데피에스넷이 ATM을 롯데기공으로부터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 것으로 보아 부당지원행위임을 인정했다.

부당지원행위를 주도한 회사의 임원들의 배임 등 민형사상의 책임 또한 빈번히 문제되는 주제이다. 부당지원행위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지원주체가 스스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원객체에게 이익을 지원하였는지 여부이기 때문. 아래는 회사의 부당지원 행위 결정을 내린 대표이사에 대한 주주들의 민사 손해배상 및 배임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정몽구 회장 상대 소송 제기

2008년 현대자동차는 글로비스 등 일부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의 방식으로 부당지원한 사실이 적발되어 공정위로부터 4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에 현대자동차 주주들이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회사 임원들이 계열사를 부당지원하여 현대차에 손해를 입혔다며 정 회장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현대자동차가 그룹의 계열회사에 자금을 지원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금 또는 대여금의 형태가 아닌 단가 인상을 통해 무상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은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며, 대표이사였던 정몽구 회장의 충실의무 및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총 826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지원주체는 부당지원행위 그 자체로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공정위의 처분으로 인한 과징금 납부의 손실을 입는다는 점에서, 주주대표소송을 통한 손실의 보전은 정당한 후속조치라 할 것이다. 하지만 위 글로비스 부당지원 사건에서 정몽구 회장 개인에 대한 업무상 배임 혐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글로비스와의 거래가 조직적인 지원 의사에 의한 것임을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민사책임보다 엄격한 입증을 요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계열사 부당지원에 관한 업무상 배임이 늘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정 회장은 부실 계열사인 현대우주항공에 대한 개인 보증채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출자하게 함으로써 현대자동차에 거액의 손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2007년 업무상 배임죄의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다.

부당지원행위는 전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인 만큼 그 규제에 있어서도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부당지원행위의 외연은 넓어졌지만, 법원은 아직까지 공정위에 엄격한 증명책임을 부여하여 규제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의계약보다는 가급적 경쟁입찰

기업 내부에서는 계열사나 특수관계인과의 거래가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지 않는지 미리 점검해보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계열사와 거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가급적 수의계약보다는 경쟁입찰에 의하도록 하고, 수의계약 시 거래가격의 합리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또 계열사와의 거래로 인하여 회사가 지나친 손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중간 유통단계에 계열사가 포함된 경우 계열사가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검토하여야 추후 문제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회사의 손익에 대한 고려 없이 계열사를 지원하는 행위는 임원 등 의사결정자 개인의 배임 및 민사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최영익 변호사(법무법인 넥서스, yichoi@nexuslaw.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