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변호사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업변호사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기사출고 2019.06.2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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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 1호' 황주명 변호사의 자전적 수필집
김장리와 결별-충정 설립 비화 등 공개
법무법인 충정의 설립자인 황주명(80) 회장은 대한민국 1호 사내변호사 등 한국의 법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약 10년 전 고희(古稀)를 맞아 충정의 실무에서 손을 떼고 은퇴했던 그는 5년 만인 몇 해 전 다시 충정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챙기고 있다. 바꿔보고 싶은 것, 법조계에 바로잡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최근 탈고한 자전적 수필집 《사람을 사람으로》에서 소개한 복귀의 변이다.
 
"내가 회사를 맡긴 세대는 환갑 근처다. 이들은 내가 물려준 대로 지키고 확장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후 세대는 내가 있을 때처럼 확장되기를 원하고 그러려면 내가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5년간의 자유인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다."
 
◇최근 자전적 수필집 《사람을 사람으로》를 출간한 법무법인 충정의 설립자 황주명 회장
◇최근 자전적 수필집 《사람을 사람으로》를 출간한 법무법인 충정의 설립자 황주명 회장

유신체제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해온 황 회장은 총 4부에 걸친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유신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던 판사생활 시절부터, 대한민국 1호 기업변호사, 국내 주요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충정의 창립자로서 겪어왔던 다양한 일화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197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끝으로 법복을 벗은 그는 지금부터 40년도 더 전인데도 좀 괜찮은 형사사건을 수임하면 500만원은 받았다는 개업변호사를 하지 않고 대한석유공사의 사내변호사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무렵 강남의 땅값이 평당 4만원대로, 이 계산대로라면 개업변호사가 받는 형사사건 보수 500만원은 강남 땅 125평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황 변호사는 "미국에서 공부도 했겠다, 외국 로펌이 하는 것도 좀 봤겠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일찌감치 기업에 법률자문을 해주는 것, 기업법무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황 변호사는 1974년부터 75년까지 1년간 미국의 조지워싱턴대로 법관 연수를 다녀왔다.

이어 대우의 상무이사 겸 법제실장으로 옮겨 석유공사 시절을 포함해 총 3년간 사내변호사로 근무한 뒤 후배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개업을 해서도 소송보다는 자문, 보다 자세하게 얘기하면 외국에 투자할 때 어떤 자문을 받아야 하는지 상담해주고,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합작에 대해 자문하는 기업자문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황 변호사는 "법원에서 오는 사건을 하지 않고 기업변호사로서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변호사 동네에서는 내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거였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내 성격을 고치지 않아도 되었다. 클라이언트가 보기 편하게 의견서를 길게 써주는 한편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으면 호통도 쳤는데, 그때는 기분 나빴겠지만 나중에 보면 자기보다 사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신뢰했고 다음에 또 나를 찾았다"고 말했다.

후배와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한 지 딱 1년이 지났을 때 한국 최초의 로펌으로 고(故) 김흥한 변호사가 주도한 김장리 법률사무소(법무법인 양헌의 전신)에서 합병 제안이 왔다. 황 변호사가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난 것은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합작 건에서로 당시 황 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사내변호사였고, 김 변호사는 외국 기업의 변호사였다. 합병은 성사됐다. 황 변호사는 1981년 4월 김장리에 합류해 1993년에 충정으로 독립할 때까지 12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젊은 변호사들의 건의로 1991년부터 김장리에서 대표변호사까지 역임한 황 변호사는 그러나 김장리와 결별하고 1993년 새로 법무법인 충정을 설립했다. 당초 계획은 황 변호사 팀만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으나 모두 11명이 황 변호사를 따라나오는 대형 사건이었다. 그때 황 변호사의 나이가 55세. 황 변호사는 《사람을 사람으로》에서 "같이 나왔던 변호사들이 들으면 섭섭할지 몰라도 계획대로 내 팀만 데리고 나왔으면 편했을 것인데, 맡은 일에 비해 변호사가 너무 많았다"며 열심히 벌어서 변호사들 월급 주고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5년 정도 고생한 후에 충정이 본 궤도에 올라서서 발전을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었다는 것이 황 변호사의 설명이다. 비결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남의 일을 맡아서 먹고 사는 거니까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라는 거다.

"진짜 열심히 잘했다. 소송을 맡으면 기록을 다 외웠다. 당사자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관련된 사람 이름까지 달달 외웠다. 그때 나한테 혼난 클라이언트도 많다."

황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성공하기 위해 이것보다 확실한 비결이 있을까 싶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나쁜 경쟁=황주명 변호사는 《사람을 사람으로》에서 법무법인 충정이 지금 정체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쁜 경쟁도 하지 않지만 변호사의 본분을 지키는 경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나쁜 경쟁이란 수단이 무엇이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경쟁을 가리킨다. 그는 변호사가 기업의 실무자에게 골프, 술 등으로 접대를 하고, 심지어 실무자와 짜고 클라이언트의 돈을 빼먹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실력 이외의 것으로 수임 경쟁을 하려고 하니 은행장 출신이나 검찰 직원 출신을 고문으로 모신다"며 "말이 좋아 고문이지 브로커이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해주려고 하니 전관(퇴직 고위공무원, 판사)을 찾는다"고 일갈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