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영업비밀 자료 집에 가져갔어도 학습 목적이면 무죄"
[형사] "영업비밀 자료 집에 가져갔어도 학습 목적이면 무죄"
  • 기사출고 2019.06.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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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배임 고의 단정 곤란"…전 삼성전자 전무 무죄 확정

삼성전자 전무가 국가핵심기술로 고시된 영업비밀 자료를 집으로 반출했으나 업무에 참고하기 위한 공부할 목적으로 집에 가져간 것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제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5월 30일 영업비밀 유출과 관련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전 삼성전자 전무 이 모(55)씨에 대한 상고심(2018도17274)에서 이같이 판시, 영업비밀 유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회삿돈 7800만여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배임)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가 1심부터 상고심까지 이씨를 변호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등에 적용되는 중앙처리장치 등의 개발 · 생산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품질팀장으로 근무하던 이씨는 2016년 5~7월경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모바일 Application Processor SoC 설계 · 공정기술 및 30나노급 이하 파운드리에 해당되는 공정 · 소자 기술' 자료 등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상 국가핵심기술로 고시된 기술이 담긴 자료 47개 등 총 68개의 영업비밀 자료(이 사건 기술자료)를 3차례에 걸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부신피질기능저하증으로 2016년 5월경 회사에 병가를 신청하여 같은해 6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병가가 예정되어 있었던 이씨는, 병가를 앞두고 비서에게 지시하여 자신의 PC나 이메일에 첨부파일로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보안용지에 출력하도록 하고, 부하직원에게 스터디를 하자며 중요한 기술자료를 출력해 오도록 한 후 2016년 5월경과 6월경 정보보호지침에 규정된 승인절차를 밟지 않고 이 사건 기술자료를 자신이 출퇴근에 사용하는 임원용 차량에 실어 사업장 밖으로 반출하여 집에 가져다 놓았다. 또 병가 중이던 7월 10일경 한밤중에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중요한 기술자료가 포함된 이메일 출력물을 같은 방법으로 반출하여 집에 가져다 놓았으며, 7월 29일 자정 무렵 다시 사무실에 갔다가 임원용 차량을 타고 사업장 밖으로 나오던 중 출입문에서 정밀검색을 당하여 차량 안에 있던 자신의 가방에서 기술자료가 출력된 보안용지 31장이 발견되는 바람에 회사로부터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그 후 이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이 사건 기술자료를 포함하여 2009년경부터 시작해서 보안용지에 출력된 6000여장에 달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이씨의 집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씨는 재판에서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공부할 목적으로 반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과거 이직을 시도했던 점이나 헤드헌터와 접촉한 점은 의심스럽지만 월급받고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으로서 언젠가 닥쳐올 퇴직의 시기를 대비하여 미리 헤드헌터와 친분을 쌓아 놓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이고, 피고인과 헤드헌터의 접촉이 1회의 만남 이후 계속되었다거나 이직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으며, 피고인이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피해 회사의 자료가 이직을 위해서든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서든 제3자에게 건네졌다는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이 집에 문서파쇄기를 사다놓고 검토가 끝나 필요 없게 된 자료를 세단하여 폐기한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자료들이 피고인이나 피해 회사의 관련 임직원 외의 제3자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기술자료가 출력된 보안용지의 유출행위가 특정시점이나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피고인이 부정한 목적으로 기회를 엿보다가 보안이 허술한 틈을 타서 기술자료를 반출하였다고 의심할 수 있겠으나, 피고인이 사무실에서 출력한 자료를 집에 갖다 놓고 메모하면서 공부하고 필요 없게 된 자료를 문서파쇄기로 폐기하는 행위는 2009년경부터 시작되어 2016. 7. 적발 당시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온 점에 비추어 이것이 반드시 이직에 사용할 목적으로 행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부정한 목적이나 업무상배임의 고의를 가지고 이 사건 반출행위를 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은 평소 자료를 출력하여 메모하면서 공부하거나 업무에 활용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기술자료 중 상당 부분에 피고인이 필기한 메모, 밑줄, 기호, 낙서 등이 적혀 있음이 확인된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이 집에서도 평소 습관대로 편하게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서 재택근무지원시스템(RBS)의 화면으로 자료를 열람하는 대신 출력정보가 남는 것을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출력물의 형태로 이 사건 기술자료를 반출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이와 같이 피해 회사에서의 업무에 참고하기 위한 학습 목적으로 이 사건 기술자료를 반출한 것이라면, 비록 피해 회사의 보안규칙상 학습 목적으로 이 사건 기술자료를 반출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더라도 그 반출행위 자체로 인하여 곧바로 피고인에게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이 '경쟁업체로 이직을 준비하며 사용할 의도'가 있었다거나, 그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기술자료를 유출함으로써 자기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의 점, 영업비밀 자료 유출로 인한 업무상배임의 점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2014년 4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업무 목적으로만 쓰도록 회사에 등록한 자신의 신용카드와 부하 직원들의 신용카드로 유흥비를 결제하는 등 80차례에 걸쳐 7800여만원의 회삿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배임)로도 기소되었는데, 이 부분 혐의는 유죄가 확정됐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