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운전 중 헤어진 동거남 방화로 숨진 여성 버스기사…산재 아니야"
[노동] "운전 중 헤어진 동거남 방화로 숨진 여성 버스기사…산재 아니야"
  • 기사출고 2019.06.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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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개인적 원한에 기한 범행…업무기인성 인정 안 돼"

여성 버스운전사가 버스를 운전하던 중 헤어진 동거남의 방화로 화상을 입고 합병증으로 숨졌다.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까.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5월 16일 숨진 버스운전사 A(여)씨의 자녀가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8구합72765)에서 "업무기인성이 인정되지 않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와 2005년경부터 2006년경까지 동거를 하다가 헤어진 오 모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A씨를 찾아가 대화를 하자고 했으나 A씨가 응하지 않자, 2017년 3월 25일 버스 정류장에서 A씨가 운전하는 버스에 승차한 뒤 버스가 운행되는 동안 A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후 종점이 가까워 오자 오씨를 제외한 다른 승객들은 중간의 정류장에서 모두 내렸고, 버스에는 A씨와 오씨만 남게 되었다. A씨는 2002년 6월부터 이 회사에서 버스운전사로 근무했다.

A씨가 운전하는 버스가 오후 4시 40분쯤 종착역인 버스 차고지의 50m 전방에 이르게 되었을 때, 오씨는 A씨에게 '한 시간만 진지하게 대화를 하자'라고 말했으나 A씨가 대답을 하지 않자 미리 구입하여 가지고 있던 휘발유를 A씨의 전신에 쏟아부은 뒤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 사고로 버스 앞부분이 불에 탔고, A씨는 전체 피부 80%에 이르는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상 합병증으로 결국 4월 7일 숨졌다. 이에 A씨의 자녀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심사청구를 거쳐 소송을 냈다. 오씨는 현존자동차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2018년 4월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가해자는 A씨가 자신과 헤어진 뒤 대화에 응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A씨를 살해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한 후 실행하였다"고 지적하고, "A씨는 가해자의 개인적인 원한에 기한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른 것인바, A씨가 노선에 따라 버스를 운전하였고, 가해자의 버스 탑승을 거부할 수 없었으며, 버스운행업무 중 승객에 의한 폭행 사건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범행이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A의 사망은 A씨와 가해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 기인한 것이므로, 업무기인성이 인정되지 않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고는 "사업주가 A씨에게 제공한 버스의 운전석에 탈출구를 마련하지 아니한 결함, 승객과 사이의 격벽을 완전하게 마련하지 아니한 결함이 있었고, A씨의 사망은 이와 같은 시설물의 결함 또는 관리소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가해자는 A씨가 운전하는 버스의 오른쪽 뒤편에 앉아 있다가 기습적으로 A씨에게 다가가 운전석 앞부분과 A씨에게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였는바, 운전석에 탈출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의 방화행위로 인한 A씨의 사망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버스운전사와 승객을 완전히 격리하는 방식의 격벽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A씨가 사망에 이르지는 아니하였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 사건 범행은 가해자가 A씨에게 원한을 품고 미리 준비해 간 휘발유를 이용하여 저지른 방화범행이고, 일반적인 버스운행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은 이 사건 범행의 수위에까지 이르지는 아니할 것으로 보이는바, 사업주에게 이 사건 범행을 예견하여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일반적인 수준의 위험을 대처함에 있어 범행 당시 버스에 설치되어 있던 격벽시설의 수준만으로 부족함이 있었으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범행 당시 버스가 관련 법령에서 정한 보호봉, 격벽시설 요구기준에 미달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