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이사회 결의서 '기권', 찬성으로 추정 불가"
[상사] "이사회 결의서 '기권', 찬성으로 추정 불가"
  • 기사출고 2019.05.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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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150억 기부안' 기권한 최흥집 전 강원랜드 대표 등 배상책임 없어

회사의 이사가 이사회 결의에서 의안에 기권했다면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권을 찬성으로 추정해 기권한 이사에게도 결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5월 16일 강원랜드가 "태백시에 150억원 기부를 결의해 강원랜드에 손해를 끼쳤으므로, 150억원을 배상하라"며 최흥집 전 대표이사와 김 모 전 상임이사 등 전 이사 9명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6다260455)에서 이같이 판시, 기부안 결의 당시 기권한 최 전 대표와 김 전 상임이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부안 결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또 다른 김 모 전 이사는 강원랜드에 30억원을, 나머지 6명은 이중 15억원을 김 전 이사와 연대하여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태백시가 피고 보조참가했다.

태백시가 2001년 12월경 리조트 사업을 하기 위하여 민간업체와 공동출자하여 설립한 태백관광개발공사는, '오투리조트'라는 이름으로 태백시 황지동에 대규모 골프장, 스키장과 숙박시설을 건설하여 운영하는 사업을 진행했으나, 사업비 추가 지출과 오투리조트 회원권 분양 저조 등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태백관광개발공사의 지분 57.4%를 보유한 태백시는 강원랜드에 오투리조트의 운영자금을 대여 또는 기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강원랜드 이사회가 2012년 7월 태백시에 폐광지역 협력사업비로 150억원을 기부하되 기부금의 용도를 태백관광개발공사의 긴급운영자금으로 지정하여 기탁하는 내용의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을 결의, 이후 강원랜드가 태백시에 2012년 8월부터 2013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150억원을 기부했고, 태백시는 이를 태백관광개발공사에 전달하여 인력운용비 등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강원랜드 이사회가 150억원의 기부안을 결의할 당시 재적이사 15명 중 12명이 출석한 가운데 출석이사 중 최 전 대표와 김 전 상임이사는 기권했고, 7명은 찬성, 3명은 반대했다. 그러나 태백관광개발공사에 대해 2014년 8월 회생절차 개시결정이 내려지자 강원랜드가 최 전 대표와 김 전 상임이사, 기부안에 찬성한 이사 7명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상법 399조 1항은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같은조 2항은 "전항의 행위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것인 때에는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도 전항의 책임이 있다", 같은조 3항은 "전항의 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이사 등 7명은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 결의에 참여하여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에 대하여 찬성의 의사를 표시하였고, 피고 최 전 대표, 김 전 상임이사는 의사록에 이의를 한 기재가 있다는 주장, 입증이 없어(단지 기권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므로(상법 399조 3항), 피고들은 상법 399조 2, 3항에 기하여 연대하여 원고에게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다만 김 전 이사가 기부안을 발의하고 적극적으로 기부를 옹호하는 등 기부안 결의에 대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고려하여 김 전 이사의 책임을 20%로, 최 전 대표와 김 전 상임이사 등 나머지 이사 8명의 책임을 10%로 제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상법 399조 2항은 같은조 1항이 규정한 이사의 임무위반 행위가 이사회 결의에 의한 것일 때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고 있고, 상법 399조 3항은 같은조 2항을 전제로 하면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자로서는 어떤 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찬성하였는지 여부를 알기 어려워 증명이 곤란한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여 증명책임을 이사에게 전가하는 규정"이라고 전제하고, "그렇다면 이사가 이사회에 출석하여 결의에 기권하였다고 의사록에 기재된 경우에 그 이사는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라고 볼 수 없으므로, 상법 399조 3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고, 따라서 같은조 2항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 최 전 대표, 김 전 상임이사는 원고의 이사회에 출석하였으나,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 결의를 할 당시 그 의안에 대하여 기권한 것으로 의사록에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 최 전 대표, 김 전 상임이사는 상법 399조 3항의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라고 볼 수 없으므로, 상법 399조 3항에 따라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고, 따라서 같은조 2항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다만 (기부안에 찬성한) 김 전 이사 등 7명에 대해서는, "폐광지역 협력사업비 기부안 결의에 따른 기부행위가 폐광지역 전체의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정도와 원고에 주는 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기부의 대상과 사용처에 비추어 공익 달성에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 김 전 이사 등이 원고 이사회에서 결의를 할 당시 이와 같은 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피고 김 전 이사 등이 기부안 결의에 찬성한 것은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원심이 김 전 이사 등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적법하다고 보았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피고들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