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제도 없는데 어떻게 증거자료 얻어내죠?"
"디스커버리 제도 없는데 어떻게 증거자료 얻어내죠?"
  • 기사출고 2019.05.2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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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재판 영어변론 단 1건 불과

"한국 법원에서 영어변론이 가능해졌고, 한국의 지식재산권 재판이 신속하고 공정하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 미국 기업이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특허침해를 당한 경우에 먼저 한국에서 특허침해금지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아보라고 권유하면 어떨까요?"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의 김형두 부장판사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출간된 《법학평론》 제9권에 기고한 "새로운 법조양성체제하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의 도입 방안" 논문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2018년 6월 13일부터 지식재산권 재판에서의 외국어변론이 허용된 이후 미국의 한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에게 이렇게 제안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 미국변호사의 대답이 의외였다. 이 변호사가 즉시 "한국에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느냐"라고 되물었던 것. 김 부장판사는 "미국과 같은 강력한 디스커버리 제도는 없지만 문서제출명령제도 등 증거를 입수할 수 있는 제도가 상당히 마련되어 있다"고 답변했으나, 이 미국변호사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이 미국변호사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는데 어떻게 상대방 회사로부터 증거자료를 얻어내서 원고에게 유리한 재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냐.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김 판사에 따르면, 이 미국변호사의 예상대로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외국어변론이 신청된 사건은 2018년 10월 말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한 건도 없고 특허법원에서만 단 한 건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그 한 건은 호주 철강회사인 블루스코프 스틸 리미티드가 특허청장을 상대로 낸 특허심판원 심결에 대한 취소소송으로, 원고 측의 영어변론 허가신청에 대하여 피고 측이 동의하여 2018년 11월 23일 제1회 변론기일에 영어변론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미국의 변호사들은 민사재판에서 디스커버리 절차를 중시하고, 한국의 민사재판은 증거수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김 판사의 의견이다. 입증책임을 지지 않는 당사자 측에선 증거자료 제출에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부득이한 경우에만 마지못해 증거를 제출한다는 것. 입증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상대방에 대하여 문서제출명령신청을 해보지만 문서제출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별다른 불이익이 없어 이 제도로도 부족하다고 한다.

예컨대 상장기업의 불법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은 다수의 소액 투자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증권관련집단소송에서조차 피고기업은 증거자료를 거의 내놓지 않는데, 법원이 문서제출명령을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응할 뿐이고 쓸모 있는 증거를 내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증거가 부족하면 입증책임을 지는 쪽이 패소하므로 입증책임이 없는 측에서 굳이 증거를 제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