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승 교수]
[최영승 교수]
  • 기사출고 2004.06.2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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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절차의 계절에 서서
1966년 6월 13일 그 자신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으로 한때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미국 연방대법원의 어얼 워렌(Earl Warren) 대법원장은 'Miranda v. Arizona, 384 U. S. 436(1966)'라는 한 판결을 내 놓았다.

◇최영승 교수
이 판결에서 워렌은 형사절차에서 경찰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what the police should do)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언급함으로써 정치인 출신의 법관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깨끗이 불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진보적 성향으로 인하여 임명권자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도 그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지금까지 내가 범한 가장 어리석은 실수”라고 할 정도로 대법원장직을 잘 수행하였다.

그의 판결은 1963년 3월 어느 날 아리조나주의 피닉스 시경찰에 18세 소녀에 대한 유괴와 납치혐의로 체포된 트럭운전수이던 어네스토 미란다(Ernesto A. Miranda)라는 24세의 가난하고 무지한 한 멕시코계 미국인의 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 판결의 주인공의 인명으로서의 미란다라는 말은 이제 단순히 한 범죄인이라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우리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그것에 이르기까지 형사절차를 상징하는 일상적 어구(household word)가 되어버렸다.

미란다는 피해 소녀에 의하여 범인으로 지목되어 경찰에 연행된 후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두 명의 경찰관에 의하여 약 2시간 동안의 심문을 받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면서 자백진술서를 작성하였는데, 연방대법원은 이 임의성 없는 자백의 증거능력을 법정의 밖으로 내쫓아 버린 것이다.

법치주의 국가원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6월이라는 계절은 가히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계절이라고 할 만큼 형사절차의 민주화를 기약하기에 충분히 유명한 사건들이 탄생한 달이기도 하다.

1215년 6월 15일 영국의 러니미드(Runnymede) 초원에서 폭군 존왕이 6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자유민의 권리가 담긴 대헌장(Magna Charta)에 서명을 한 것이 그렇고, 또한 위 워렌 법원의 미란다판결이 그렇고, 그리고 1987년 적법절차의 원리를 우리 헌법내의 원리로 끌어들인 계기가 된 그 해 6월 29일에 있었던 6 .29 선언이 그렇다.

1992년 6월 23일 처음으로 한국판 미란다 판결로 불리우던 이른바 “신 이십세기파 사건 판결”이 있었던 것이 그렇고, 2000년 6월 26일에 있었던 미란다 판결의 헌법규범성을 재확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디커슨 판결도 그렇다.

그 중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동시에 그 반대자들로부터 가장 신랄한 비판을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단연 미란다 판결을 꼽을 수 있다.

형사절차에 있어서 미란다라는 인명은 이제 '미란다법칙' , '미란다카드' , '미란다고지'라는 말로 우리 형사절차에서도 통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대법원이 우리나라에 이 법칙을 수용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형사절차에서 미란다라는 이름이 경찰이나 검찰 등의 수사기관 종사자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어떤 것”, “범죄혐의를 밝혀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는데 방해되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미란다고지를 함에 있어서 피의자신문 조서상에 인쇄된 부동문자를 읽어주는 방법으로 혹은 부동문자 그 자체로서 이를 고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피의자에 대한 신문은 조서를 작성하는 단계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 역시 그렇다.

나아가 설령 미란다고지를 하더라도 이를 고지 받은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현실적으로 진술을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적법절차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적법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로서의 미란다고지는 완전하고(fully), 분명하고(plainly), 구체적이고(substantially), 공식적으로(formally) 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피의자를 체포하여 경찰서로 가는 도중 범죄혐의에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경우조차도 미란다법칙을 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는 아직도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어네스토 미란다는 1972년 아리조나주 피닉스시의 어느 술집에서 카드 게임을 하다가 싸움이 붙어 살해당하였는데 아리조나 주경찰이 미란다를 살해한 혐의자에게 미란다 고지를 하였음은 물론이다.

미란다 자신의 행위로부터 비롯된 법칙이 경찰로 하여금 이번에는 그 자신을 살해한 자를 향하여 미란다고지를 하게 하여 적법절차를 담보토록 한 것이다.

경원대학교 법정대학 겸임교수(법학박사) 겸 본지 편집위원(everpine2002@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