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정확한 병명 몰라도 폐결핵 증상 숨겼다면 보험금 안 줘도 돼"
[보험] "정확한 병명 몰라도 폐결핵 증상 숨겼다면 보험금 안 줘도 돼"
  • 기사출고 2019.05.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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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중요한 사항' 고지의무 위반

정확한 병명은 몰라도 폐결핵 증상이 있었는데 이를 알리지 않고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면 보험사가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4월 23일 나 모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의 상고심(2018다281241)에서 이같이 판시, "피고는 원고에게 보험금 2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률사무소 광화의 박성원 변호사 등이 상고심에서 피고 측을 대리했다.

나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노래방에서 근무하는 김 모씨의 부탁을 받고, 2014년 9월 5일 현대해상화재보험과 김씨를 피보험자로, 자신을 보험수익자로 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김씨가 질병으로 사망시 2억원을 지급받기로 하는 질병사망담보 특별약관에 가입했다. 이틀 후인 9월 7일 김씨가 사망하자 나씨는 보험금 2억원을 달라고 청구했으나 현대해상이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부검 결과 김씨의 사인은 '고도의 폐결핵'으로 밝혀졌다. 현대해상은 "나씨가 김씨가 상당한 기간 동안 고도의 폐결핵이라는 중병을 앓아왔고 특히 사망하기 2주 전부터는 몸이 아파서 출근도 하지 못하는 사망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며 "이는 '중요한 사항'에 관한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 또는 김씨가 이와 같은 사실을 숨긴 채 피고와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거기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며 나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폐결핵 환자의 70~80% 정도가 급성 혹은 거의 급성(아급성)으로 증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반드시 폐결핵 환자에게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증상은 아니며, 결핵으로 인한 증상이 환자 자신이나 의사들에 의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쉽게는 감기로 혹은 다른 폐질환 또는 흡연과 관련된 증상으로 취급되어 종종 증상만 가지고는 결핵인지 아닌지 진단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은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가 김씨의 급격한 증세악화 등 건강상태를 상세히 알고 사망을 예견하였음에도 피고를 기망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에 따르면, 김씨의 동거인인 양 모씨는 김씨가 사망한 2014년 9월 7일 경찰에 출석하여 김씨가 2주 전부터 밥을 넘기지 못하는 등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몸이 아파 나씨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출근을 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침, 가래, 체중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나씨도 1심 법원에서, 김씨에게 "너 왜 살이 이렇게 자꾸 빠지니? 병원에 좀 가보지 그러냐"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사실조회 회신에 따르면, '고도의 폐결핵'은 통상적으로 폐결핵이 양측 폐를 침범하여 폐 손상이 심한 경우를 의미하며, 발열, 체중감소, 식욕부진, 호흡곤란, 기침, 가래, 객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양씨 역시 김씨의 사망 이틀 전에 김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했는데, 양씨는 경찰에서 김씨의 체중이 감소하는 등 건강이 악화되어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아는 언니가 소개해 준 보험설계사가 김씨가 살고 있는 여관으로 찾아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양씨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보험설계사는 경찰에서 나씨가 자신을 김씨와 양씨에게 소개해 주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이에 의하면, 보험계약자인 원고와 피보험자인 김씨는 (피고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정확한 병명을 알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김씨가 질병에 걸려 신체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김씨가 사망에 이른 경과에 비추어 볼 때 김씨의 이와 같은 증상은 생명의 위험 측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상법 651조에서 정한 '중요한 사항'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원고와 김씨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러한 사정을 고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현저한 부주의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보험계약 체결 당시 원고 내지 김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항변을 배척한 원심에는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사실을 오인하거나 고지의무 위반에 있어서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