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자식 명의로 부모님 휴대폰 개통도 금지…위헌 소지"
[형사] "자식 명의로 부모님 휴대폰 개통도 금지…위헌 소지"
  • 기사출고 2019.04.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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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판사가 직권으로 '통신 실명제' 위헌심판 제청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 ·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창원지법 권순건 판사는 4월 5일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 · 사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하는 전기통신사업법 30조와 같은법 97조 7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2018고단3593 등).

A씨는 2018년 7월 27일경 인터넷 네이버 카페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선불폰을 개통하여 주면 1대당 2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 사람에게 휴대전화 개통에 필요한 신분증 사본, 통장 사본 등을 카카오톡으로 전송하여 김포시에 있는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자신 명의로 가입된 선불폰을 개통하여 사용하게 하고, 그 대가로 2만원을 송금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전기통신사업법 30조는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97조 7호).

A씨의 재판을 맡은 권 판사는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30조와 같은법 97조 7호(심판대상 조항)이 헌법 18조 등을 위반하였거나 표현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였다거나 과잉금지의 윈칙 등에 위반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어 위헌의 소지가 존재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권 판사는 "심판대상 조항은 일단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기 위하여는 이를 이용하려는 자기 명의로 전기통신역무 이용계약을 체결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통신으로만 사용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형사 처벌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이른바 '통신 실명제'를 구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통신 실명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떠한 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했는지가 별도의 여과장치 없이 기록될 수밖에 없어서 이를 밝히려고 할 경우에는 공개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통신 실명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떠한 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했는지를 통신의 비밀로 보장하는 헌법 18조에 위반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심판대상 조항에 의하여 구현되는 통신 실명제는 다수 국민들의 통신에 관한 기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권 판사에 따르면, 심판대상 조항은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대신하여 성인인 자식들이 자신들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부모님에게 건네주어 부모님으로 하여금 이를 사용하게 하고 요금 등을 대신 내어주는 행위, 좋아하는 이성 친구를 위하여 자신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여 좋아하는 이성에게 건네주어 이성으로 하여금 이를 사용하게 하고 요금 등을 대신 내어주는 행위, 회사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이 번거로워 직원이 자신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여 회사의 업무로 사용하는 것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행위들은 현재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로서 이것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여러 검색 사이트에서 '부모님 휴대폰 개통' 등으로 검색하면 자기 명의로 개통해서 부모님께 건네주면 된다는 식으로 답이 나올 뿐 이것이 위법하다고 지적하는 글을 찾아볼 수 없다. 권 판사는 "이와 같이 심판조항은 국민 대다수가 정당한 사회행위로 보는 행위들까지 모두 처벌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여지가 크고, 본 심판조항은 익명으로 휴대폰에 가입하는 것도 금지하고 그와 같은 행위가 이뤄진 경우도 처벌하는바, 이러한 입법례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판사는 이어 "익명이나 타인 명의로 통신하고자 하는 욕구는 헌법상 보장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이나 행복추구권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서도 도출된다고 여겨진다"며 "국가는 최대한의 자유로움을 보장하여야 하고 이를 제한하기 위하여는 바로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익명이나 타인 명의로 통신하는 것 자체로 인하여 우리 사회의 기본적 질서에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으로 여겨지고, 일률적으로 익명이나 타인 명의로 통신하고자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형사처벌하는 해당 조항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 권 판사의 판단.

권 판사는 마지막으로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통신 실명제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과태료 방식의 제제가 아니라 형사처벌 방식의 제제를 선택하는 것은 비례원칙 위반이라고 보인다"며 "심판대상 조항은 입법형성권을 일탈하였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