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긴급진단] Brexit,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까?
[리걸타임즈 긴급진단] Brexit,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까?
  • 기사출고 2019.04.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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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변호사]

1. 왜 그랬을까, Brexit?

"영국은 왜 Brexit(브렉시트)를 선택한 걸까요?"

◇박세훈 변호사
◇박세훈 변호사

런던에서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백발의 영국변호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그런 질문이야 이미 수 십 번 받아보았다는 듯이 담담하게,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영국이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의 실수일 뿐이라고.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는 역시 '영화'였었나 보다. 영화 속 영국 수상이었던 휴 그랜트는 미국 대통령과의 굴욕적인 협상을 뒤엎고, 정치인의 길이 아닌 영국인의 길을 선택했다.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즈, 숀 코네리, 그리고 해리포터의 나라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싱어롱(註: 영화 속 노래를 마음껏 따라 부를 수 있는 상영관을 말한다)' 극장을 찾아다니며 '보헤미안 랩소디'에 빠져 있었고, British Invasion(註: 롤링스톤즈,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같은 뮤지션들이 미국에서 얻었던 엄청난 인기를 일컫는다. '한류'라는 용어의 원조격이라고 보면 된다)의 주역들은 여전히 라디오 선곡표의 스테디셀러이며, 고급승용차 브랜드, Black Tea, 진품이든 가품이든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을 그 유명한 체크무늬 머플러 등등 생각할수록 'Made in UK'는 끝이 없다. 심지어 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은 Made in UK를 넘어 'Made in Heaven'이지 않던가!

국내 정치의 나쁜 손

그런데 Brexit는 영국의 자존심,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으려 했던 휴 그랜트의 정치는 아닌 것 같다. 세법에서 말하는 '경제적 합리성'과도 거리가 멀고, 국내 정치의 나쁜 손(註: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 역시, 영국의 대표적 경제학자다)이 국제적으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그 한 예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2016. 6. 23.의 충격적인 국민투표로 시작된 Brexit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수였다면 바로 잡혀질지, 또 다른 실수를 낳을지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이제는 '나, 돌아갈래' 해도 기차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 뭐가 달라지나요, Brexit?

Brexit가 우리 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FTA 분야임에 의문이 없다.

우리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EU와 FTA를 체결했고, 영국이 EU의 회원국인 이상 영국산(産) 제품에 대하여는 낮은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되면, 굳이 법령을 바꾸지 않더라도(註: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을 말하고, 이 법의 시행령에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각 FTA별로 그 적용 대상 국가들이 명시되어 있다) 그 날부터 영국산 제품에 대하여는 한-EU FAT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영국산'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 표현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법무법인 율촌이 3월 21일 영국 로펌 프레쉬필즈와 함께 브렉시트 전망과 대응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기업체 관계자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율촌의 강석훈 대표변호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법무법인 율촌이 3월 21일 영국 로펌 프레쉬필즈와 함께 브렉시트 전망과 대응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기업체 관계자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율촌의 강석훈 대표변호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아세안국가연합과도 FTA를 체결하였는데, 한-아세안 FTA에서는 각 회원국들의 독립성이 매우 강하다. 원산지증명서는 각국의 기관에서 직접 발급하고, 여러 나라에 걸쳐 제품이 생산될 경우 회원국 내에서 조달된 원재료에 대한 증빙을 소정의 형식에 맞추어 철저하게 갖추어 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제품이 운송될 때에도 다른 회원국을 경유하게 된다면 그 경유국으로부터 '연결원산지증명서'라는 것도 받아 놓아야만 안전하다.

EU는 한 몸

그런데 한-EU FTA에서 EU는 한 몸이라 생각하면 된다. 수출자가 EU 중 어느 국가로부터도 일단 '인증'이라는 것만 받아 놓으면, 제품을 EU 내의 어디서 생산을 하든, EU 내의 어느 곳을 경유하여 운송되든 문제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한-EU FTA는 영국산인지 프랑스산인지가 아니라, EU산인지 아닌지가 문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사업자, 특히 글로벌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출 관련 행정적 업무와 금융 등의 업무는 영국에서, 제품 생산과 운송 등은 공정에 따라 EU의 다른 국가들과 나누어 하는 것으로 분업을 시켜 놓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체인에서 영국과 EU를 갈라놓고 보아야 한다면, 원산지 증명절차나 원산지 판정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일단 사재기부터 해 놓을까 생각하기 전에, 지금 수입하고 있는, 지금껏 의심 없이 영국산 제품이라고 알고 있는 제품이 EU 내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었는지, 한-EU 협정세율을 그동안 적용받는 과정에서 어떤 서류들을 받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원산지를 인정받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판매자로부터 받은 원산지증명에 'GB'로 시작하는 인증수출자번호가 기재되어 있다면(註: GB는 영국이 해당사업자에게 발급한 인증수출자증명의 고유부호다) EU 내 다른 국가의 인증수출자번호로 대체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GB의 인증수출자번호로 원산지가 증명되어 수입되는 제품이라면, 실제 그 제품이 다른 원산지 기준에 의하여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따져볼 것도 없이 한-EU FTA에서 외면될 것이다.

인증수출자번호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제품의 생산 과정에 따라 Brexit의 여파를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원산지를 판정하는 기준으로는 제품의 최종적인 품목번호(註: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모든 품목에는 이를 분류하는 고유한 품목번호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HS코드라고 한다)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와 한-EU 당사국 내 원재료의 비중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기준은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다.

품목번호냐 원재료 비중이냐

예를 들어 영국에서 일부 가공이 가해지고 다시 프랑스로 가서 추가 가공이 가해지면서 이 때 그 품목번호가 변경되어 수출되고 이어서 그 품목번호를 기준으로 원산지까지 인정받아왔던 제품이라면 Brexit에도 불구하고 한-EU FTA의 적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품목번호가 아니라 원재료 비중을 기준으로 원산지를 판정하여 왔었다면, 영국이 EU에서 제외될 경우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에는 향후 품목번호를 기준으로 원산지 판정의 기준을 변경함으로써 계속하여 한-EU FTA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Brexit를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3. the Black Sheep, Oh Shit!

앞서 영국변호사의 말처럼 Brexit가 정치적 실수라고 한다면, 그 여파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또는 외교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영국과 별도의 FTA를 체결할 수도 있고, 그 협상 과정에서의 잠정적인 조치로 당장의 교역에 특별한 지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살핀 것처럼, 인증수출자번호를 바꾸거나 원산지 판정 기준을 바꾸는 것이 거래 관계상 쉽지 않을 수도 있고, 한-EU에서는 FTA가 적용되었던 제품이 한-영 FTA에서는 그 적용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도저히 타산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아가 그 동안 EU를 기준으로 하였던 각종 인증(註: 예를 들어 어떤 제품에 CE라는 마크가 있다면, 이 마크는 그 제품이 안전 · 건강 · 환경 및 소비자보호와 관련한 EU 이사회 지침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영국산 제품에 부착된 CE 마크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도 문제다)과 규제, 개인정보보호, 조세문제 등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것이고, 그래서 어떤 난관이 또 닥치게 될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Brexit가 'the Black Sheep(왜 굳이 말썽을 피워서)+Oh Shit(이런 젠장, 망했다!)'의 합성어처럼 여겨진다면, 이때는 또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할까.

Force Majeure 등 따져봐야

내키지 않더라도, 이때에는 법률전문가를 미리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Brexit를 예상하고, Brexit를 계약 해지나 거래조건 변경의 사유로 진작부터 명시해 놓은, 그런 노스트라다무스급 계약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Force Majeure, Doctrine of Frustration(註: 불가항력 등을 이유로 한 계약 이행 불능) 같은 일반 조항이나 법리를 이용하여 계약를 해지하거나 기존 조건을 변경할 수 있을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면 그 분쟁을 어느 관할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나중에 집행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등을 확인해 놓을 필요가 있다. 정치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법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미리 알아볼 수는 있으니 말이다.

박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parksh@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