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5천억 미 집단소송 막아낸 이석현 변호사
[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5천억 미 집단소송 막아낸 이석현 변호사
  • 기사출고 2019.02.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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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합의 권고 거절하고
"라면값 담합 증거 없다" 판결 받아

"Did plaintiffs prove that there was a conspiracy to fix the prices of Korean ramen noodles? No."

법무법인 KCL의 이석현 변호사는 2018년 12월 17일 미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라시스코 연방지방법원의 William Orrick 판사 법정에 있었다. 이날은 라면값 담합을 주장하는 농심 상대 집단소송의 배심원 평결일로, 지난 1년간 서울과 샌프란시스코 현지를 오가며 농심 측 대리인으로 재판을 뒷바라지한 이 변호사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전부 승소 취지의 평결이 발표되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석현 변호사
◇이석현 변호사

첫 항목 결과 듣고 승소 알아

"미국의 배심재판은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Jury Verdict Form)를 배심원 대표(foreperson)가 판사에게 전달해 판사가 이를 낭독하면서 공개되는데, 이 사건의 경우 배심원 평결 결과가 7개의 Yes/No 의문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앞에 소개한대로 '원고들이 라면값 담합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했느냐? 아니다'란 맨 첫 번째 항목의 결과를 듣고 우리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 변호사는 배심원 평결 후 25일쯤 지난 1월 11일 Orrick 판사가 서명한 정식 판결문을 받았다. 판결의 주문은 '농심이 제조한 라면을 농심 측으로부터 직접 구입한 미국의 수입자들과 이들 수입자들이 배포한 라면을 슈퍼마켓 등에서 구매한 간접구매자가 제기한 또는 이들을 위해 제기된 모든 청구를 기각한다'는 것으로, 농심 코리아와 농심 아메리카가 원고들의 청구를 100% 막아낸 것이다.

이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관련 미국의 민사 손배소에서 합의(settlement)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판(trial)으로 진행되고 궁극적으로 배심원 평결에서 승소했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며 "그 동안 합의전담 판사가 세 차례나 합의 또는 조정으로 끝내길 강하게 권고했으나, 담합한 적이 없는데 미국 법정에서도 정의를 관철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농심에게 불리한 내용의 합의 제안을 거절하고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승소판결을 받아냈다"고 지난 1년을 회고했다. 또 "미국에서의 법정 변론을 담당한 미국 로펌 Squire Patton Boggs와 한국에서의 증거수집과 재판전략 수립, Squire의 소송 지원, 한미간 서로 다른 법적 개념과 법률이론 등에 대한 자문을 담당한 KCL의 성공적인 협업이 빚어낸 값진 결과"라며 "태평양을 건너다니며 거의 1년간 매달리다시피했는데, 법적으로도 의미 있는 대목이 적지 않아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080억 과징금 취소소송도 대리

이 변호사가 소속된 KCL은 농심에 부과된 1080억 7000만원의 과징금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도 맡아 대법원에서 승소한 로펌으로, 행정소송에 이어 미국 집단소송도 맡게 된 것이다.

소송은 4년여 전인 2013년 8월 6일 미국에서 제기됐다. 미국에서 농심 라면을 직 · 간접으로 구매한 소비자여서 집단인증 요건에 해당되면 비록 재판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똑같이 판결 결과가 적용되는 집단소송으로, 판결문에도 몇 십 개주의 구매자라고 원고 집단이 명시되어 있다. 소송의 대표당사자로 인증을 받은 원고들이 요구한 배상액은 1500억원. 그러나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기 때문에 패소했더라면 배상액이 50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또 미 법무부 반독점국에서의 조사가 아니라 2012년 7월에 나온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에 근거해 소송이 제기된 특이한 사건으로, 한국에서 라면값을 담합해 가격이 올랐으니 담합으로 인해 인상된 금액만큼 구매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원고 측의 논리였다. 그러나 원고들의 주장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법원에서 담합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미국 소송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처음부터 여러 문제를 안고 시작한 소송이었다.

◇이석현 변호사
◇이석현 변호사

공정위, 과징금 직권 취소

소송이 제기된 후 2년여가 흐른 2015년 12월 커다란 반전이 생겼다. 한국 대법원이 담합을 인정할 수 없다며 담합을 인정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파기해 환송하고, 한 달 후 공정위가 농심에 부과했던 1080억 7000만원의 과징금을 직권으로 취소한 것이다. 농심에선 미국에서 진행 중인 집단소송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말 농심 측에서 신청한 motion for summary judgement가 예상과 달리 기각되면서 또 한 번 상황이 바뀌었다. 농심에 비상이 걸렸고, 농심 측을 대리하던 KCL의 이석현 변호사실도 이때부터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재판에 질 경우 예상되는 5000억원에 이르는 배상액도 엄청난 액수이지만, 농심으로서는 소송의 단초가 된 한국에서의 담합 판정이 취소된 마당에 미국시장에서도 누명을 벗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에서 담합이 아니라고 하는 등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가 없지 않느냐, 소송 거리가 안 되지 않느냐 이렇게 주장하며 motion for summary judgement를 신청한 것인데,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배심원에 의한 정식 재판으로 진행되게 되어 많이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정의를 왜곡하는 여러 차례의 합의 종용에도 타협하지 않고 결국 온전히 정의를 지켜낸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이 변호사는 "승소를 확신했지만, 합의전담 판사가 재판에서 질 거라며 합의를 권고하고, 상대방도 합의를 원하는 상황에서 합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며 "농심 측에서 전폭적으로 KCL의 의견을 믿고 끝까지 따라주지 않았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 권고 거절

이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계의 여성 판사인 합의전담 판사는 "너희 패소한다. 그러면 5000억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낼 수 있겠느냐"며 강하게 합의를 압박했다. 합의제도가 발달한 미국에선 본격적인 재판 진행에 앞서 합의를 전담하는 판사가 먼저 합의를 시도하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본격적인 배심재판을 진행한다. 이때가 지난해 초로, 농심 입장에선 그러나 이 판사가 제시한 1000억원이 넘는 합의금이 너무 많은데다 담합한 적이 없다는 데 미국에서만 이를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합의로 끝낼 경우엔 물론 3배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고 합의한 금액만 지급하면 된다.

1차 합의 시도는 결렬됐다. 그러자 합의전담 판사는 JAMS(Judicial Arbitration and Mediation Services)라고 불리는 LA에 있는 조정센터에 사건을 보내 이곳에서 서로 의견을 좁혀보도록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정이 되지 않자 이번엔 합의전담 판사와 JAMS의 조정전담 판사가 함께 합의를 종용했다. 합의전담 판사는 특히 대리인이 아니라 농심 측 대표이사가 직접 합의법정에 나오라고 참석을 요청, 농심의 박준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해 가을 농심의 오래된 고문변호사인 임희택 KCL 대표변호사와 함께 직접 태평양을 건너 이석현 변호사까지 모두 3명이 합의를 시도하는 재판(settlement conference)에 참석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의 입장도 단호했다. 박 부회장은 특히 질 경우 그 많은 액수의 배상금을 낼 수 있느냐는 합의전담 판사의 지적에, "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정의에 맞지 않는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고 한층 확고한 태도를 견지했다. 물론 KCL의 이석현 변호사 등과 배심재판에서의 승소 가능성을 분석하고 의견조율을 거쳐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석현 변호사(우측 아래)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내용의 배심원 평결이 나온 2018년 12월 17일 Squire Patton Boggs의 변호사들과 샌프라시스코의 한 식당에서 1년간 이어진 재판을 회고하며 승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이 변호사 뒤 한 사람 건너 준 김(맨 우측) Squire 서울사무소 대표도 보인다.
◇이석현 변호사(우측 아래)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내용의 배심원 평결이 나온 2018년 12월 17일 Squire Patton Boggs의 변호사들과 샌프라시스코의 한 식당에서 1년간 이어진 재판을 회고하며 승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이 변호사 뒤 한 사람 건너 준 김(맨 우측) Squire 서울사무소 대표도 보인다.

하루 6시간씩 32일간 재판 진행

세 차례에 걸친 합의 시도가 결렬되고 지난해 11월 12일 Orrick 판사가 주재하는 본격적인 배심재판이 시작되었다. 미국 재판은 하루 몇 시간씩 매일 개정해 결심하는 게 특징으로, 농심 집단소송은 매일 오전 7시 반에 시작해 오후 1시 반까지 6시간씩 12월 14일까지 한 달 이틀간 진행되었다. 이 변호사는 "양측 대리인은 물론 배심원들도 매일 법정에 나와 증인신문 등을 지켜보았다"며 "12명의 배심원 중 2명은 개인사정으로 도중에 배심원에서 사퇴, 10명의 배심원이 최종 평결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재판이 끝나면 그날 재판에서 나온 내용을 분석하고 내일 재판을 준비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증인 신문 준비, 수시로 발생하는 증거다툼과 관련한 한국법 내지 한국 관련 자료에 대한 대응도 이 변호사의 몫이었다.

재판에선 한국에서 라면 담합이 있었는지 여부와 한국에서의 라면 담합이 미국시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미국 재판에서 한국 대법원의 판단과 다른 판단을 내려도 문제가 없는지, 한국 대법원 판결과 판단이 다른 미국 판결의 한국에서의 집행 가능성, 법인격부인론(法人格否認論) 등 여러 쟁점이 다투어졌다.

이 변호사는 우선 농심 코리아와 농심 아메리카를 분리해 담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있는 농심 코리아에서 있었던 일이고, 농심 아메리카는 한국에서 생산된 라면을 수입해 미국시장에서 판매한 데 불과하므로 피고에서 빠져야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렇게 되면 농심 코리아만 피고로 남게 되고, 농심 코리아는 자산 등이 한국에 소재해 있어 설령 미국에서 배상판결을 내리더라도 한국에서 진행될 집행판결에서 공서양속(公序良俗) 위반을 이유로 방어할 수 있고, 이러한 집행의 불확실성이 미 집단소송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서양속이란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의 줄인 말로, 한마디로 한국 대법원에서 담합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와 달리 담합했다며 배상을 명한 미국 법원의 판결을 한국에서 집행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많지는 않지만 대법원은 판결의 오류가 명백한 경우 공서양속을 이유로 외국 법원 판결에 대한 집행판결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이석현 변호사
◇이석현 변호사

공서양속 위반 vs 법인격부인론

반면 원고 측에선 농심 아메리카와 농심 코리아는 사실상 하나라며 일종의 법인격부인론의 역적용과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농심 코리아에서 담합이 있었다면 사실상 같은 법인격으로 볼 수 있는 농심 아메리카도 담합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렇게 되면 나중에 재판에서 이길 경우 원고 측은 최소한 농심 아메리카의 미국내 자산에 대한 집행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쟁점에선 원고 측의 주장이 받아 들여져 농심 아메리카의 피고 적격이 끝까지 유지된 가운데 배심재판이 진행되었고, 농심은 판결을 통해 농심 아메리카에 대한 청구도 막아냈다.

재판은 담합 여부에 대한 치열한 증거다툼으로 진행됐다. 특히 처음에 같은 피고로 함께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재판에 협조하기로 원고 측과 합의하고 피고에서 빠진 삼양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의 원고 측 지원이 농심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재판의 장애물이었다. 삼양식품은 한국 공정위의 담합 조사에서도 리니언시 즉,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통해 과징금 120억원 전액을 면제받았다.

뉴욕주 변호사이기도 한 이석현 변호사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삼양식품 회장과 그 부인인 김정수 대표이사 사장에 대한 특가법상 횡령 혐의 수사와 재판에 주목했다. 김정수 사장이 농심의 미국 배심재판에 와서 증언할 예정인데,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를 중시하는 미국법의 원칙에 비춰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회삿돈을 빼돌린 사람의 증언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증인 탄핵에 공을 들였다. 이 변호사는 김 사장 부부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기사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제출했다. 그러나 Orrick 판사는 보도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사장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는 판결문 등 공적 서류가 있다면 이를 입수해 번역해 내면 되겠으나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어 그런 서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김 사장에 대한 형사재판을 직접 방청했다. 그리고 김 사장이 검사의 신문에 혐의를 인정한다고 답변하는 내용 등의 재판 방청기를 영어로 써 미국 법정에 제출했다. 이 변호사 스스로 증인이 되어 김 사장이 미국 법정에 나와 증언할 경우 이를 탄핵하는 자료를 미리 확보해 제출한 것이다. 김 사장의 혐의를 인정하는 한국 법원에서의 유죄 판결은 농심에 대한 배심 평결 때까지 선고되지 않았으나, 이 변호사의 노력은 재판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Orrick 판사가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기 3일 전인 2018년 11월 9일 김정수 대표의 증인 진술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심리 3일 전 진술 배제 결정

김정수 대표는 배심 평결에 이어 판결문이 나온 후인 1월 25일 서울북부지법에서 50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미국에서의 재판이기 때문에 미국 현지 로펌이 법정변론을 책임졌지만, 소송의 전체적인 진행방향과 전략을 수립한 것은 KCL이에요. 그리고 한국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근거해 소송이 제기되었고, 이후 대법원에서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선고되는 등 한국에서의 진행 경과가 중요해 KCL과 현지 재판을 담당한 Squire와의 협업 및 KCL의 지원이 다른 국제소송보다 특히 중요했다고 봐요."

이 변호사에 따르면, Squire에선 물론 최정예의 소송 변호사를 재판에 투입했으며, 서울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는 준 김 미국변호사도 집중심리가 진행된 마지막 한 달간은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재판을 지원했다고 한다. 또 농심의 사내변호사인 오남성 상무가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합의와 배심재판을 뒷바라지하는 등 KCL-Squire-농심으로 이어진 3각 협조가 100% 승소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의견이다.

이석현 변호사는 "만약 배심재판에서 졌다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해 재판을 이어가는 항소심 전략까지 복안으로 가지고 있었다"며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린 배심원들과 공정한 재판 진행을 이끈 Orrick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