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중재규칙의 주요 내용
프라하 중재규칙의 주요 내용
  • 기사출고 2019.02.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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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판정부의 주도적인 절차 운영 주목

1월15일 서울국제중재센터(Seoul IDRC)와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KCAB INTERNATIONAL) 주최로 Seoul IDRC 제38회 강연회가 열려 캐나다의 대표적인 국제중재 전문가이자 Osgoode Hall 로스쿨 교수인 Janet Walker 교수가 강의를 했다. 강의 주제는 "프라하 중재규칙(The Prague Rules: Options and Opportunities for Asia)". 프라하 규칙은 2018년 12월 14일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채택된 "국제중재절차의 효율적 운영에 대한 규칙(Rules on the Efficient Conduct of Proceedings in International Arbitration)"을 줄여 이르는 말로, 강의에서 Walker 교수는 프라하 규칙이 추구하는 효율적인 국제중재 운영에 대하여, 특히 문서제출 절차(Document Production)와 전문가 · 감정인(Expert) 관련 절차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프라하 중재규칙의 다른 여러 내용에 대하여 국제중재인의 시각에서 설명하면서, 아시아의 중재기관들과 중재 변호사들이 프라하 규칙을 채택하고 활용하기를 권장하였다. 임수현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강의 내용을 정리, 요약했다.

10여년 전 국제중재 커뮤니티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주제가 국제중재 판정의 집행(enforcement), 중재판정부(Arbitral Tribunal)의 구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국제중재의 규칙(rule)과 증거수집 절차(evidence gathering) 등 즉, 국제중재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Janet Walker 교수 강의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제중재는 세계변호사협회(International Bar Association, IBA)에서 발행되는 각종 규칙의 적용을 받거나 그 내용을 참고하여 진행된다. 특히 1999년에 채택된 IBA 증거 수집 절차에 대한 규칙(IBA Rules of Taking of Evidence, 이하 "IBA 증거규칙")이 매우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중재에서 중재인들이 당사자들에게 IBA 증거규칙을 적용하거나 이를 중재인의 재량행사시 기준으로 참고하여 진행된다고 제시하고, 당사자들은 대부분 이를 이견 없이 수용하고 있다.

◇Osgoode Hall 로스쿨의 Janet Walker 교수가 1월 15일 진행된 Seoul IDRC 제38회 강연회에서 프라하 규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Osgoode Hall 로스쿨의 Janet Walker 교수가 1월 15일 진행된 Seoul IDRC 제38회 강연회에서 프라하 규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IBA가 채택한 규칙들의 발전 배경을 보면, IBA의 규칙들은 일단 국제중재가 그리 흔하지 않던 상황에서 발전된 것이고 영미법(Common Law) 중심, 그리고 유럽 중심 방식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국제중재는 영미법 국가에서 그 국가들의 당사자들간 분쟁해결 방법으로 발전해왔고, 대부분의 국제중재 관행과 규칙들도 사실상 런던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채택된 프라하 규칙은 영미법 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규칙들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규칙들을 통하여 더욱 효율적인 국제중재 Practice를 추구하고 있다. 프라하 규칙은 많은 부분을 대륙법(Civil Law) 실무로부터 가져왔다. 프라하 규칙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프라하 규칙을 발행한 배경과 의도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본 강의에서는 이러한 논란이 아닌 프라하 규칙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대륙법과 익숙한 아시아 국가의 중재 관련인들은 프라하 규칙의 내용에 대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라하 규칙, 대륙법 실무 반영

예전에 중재는 흔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대부분 상당히 큰 규모의 분쟁을 다루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국제중재가 국제거래에 보편적인 분쟁해결 방법으로 자리 잡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 많은 국제중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평균 사건의 규모는 작아지며, 중소기업 간의 분쟁에도 국제중재가 분쟁해결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국제중재의 사용자들은 국제중재를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있다. 프라하 규칙은 이와 관련하여 중재판정부의 주도적인 절차 운영(Case Management)과 관련된 규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프라하 규칙에서는 중재절차 기일(Case Management Conference)에서 중재판정부가 해당 분쟁의 구제사항(relief), 사실관계(facts), 그리고 법적 근거(legal ground) 등 실질적인 부분에 대하여 당사자들과 논의하라고 주문한다. 심지어 프라하 규칙은 주요 쟁점과 단서 등을 중재판정부가 제시할 수 있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영미법계 변호사들, 특히 영미법계 중재인에게는 상당히 새로운 것이다. 사실 중재판정부는 중재의 시작 단계부터 이런 실질적이고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들에 대하여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신청인(Claimant)은 중재 초반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입장들이고, 피신청인(Respondent)은 중재판정부가 신청인의 주장을 구성하는 것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미계 변호사들은 이러한 프라하 규칙의 입장에 대해 상당히 어려워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일부 영미계 변호사들은 마치 중재판정부는 중재절차의 마지막 직전까지 사건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프라하 중재규칙은 나아가서 중재판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Fact-Finding)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권장하고 있다.

IBA는 IBA 증거규칙이 영미법과 대륙법의 요소를 모두 고려한 상당히 균형적인 규칙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 대륙법계 중재 관련인들은 문서제출(Document Production) 절차가 있다는 전제 자체가 이미 균형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서제출 절차는 'Case-by-Case'라고 본다. 프라하 규칙은 여러 가지 방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E-Discovery를 포함한 문서제출 절차를 전반적으로 discourage하고 있다.

프라하 규칙이 채택하는 문서제출 절차에서 주목할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상대방이 아닌 중재판정부에 신청

첫째, 프라하 규칙상 문서제출 요청(Document Production Request)은 상대방 당사자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중재판정부에게 신청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국제중재에서 통상적인 문서제출 요청 방식으로 자리 잡은 Redfern Schedule과는 다른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프라하 규칙은 구체적인 특정 문서에 대하여 제출 요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청 문서의 범주(Category)로 요청할 수 있는 IBA 증거규칙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셋째, 프라하 규칙에는 문서제출 절차를 통해서 제출되는 문서는 자동적으로 비밀(confidential)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추정규정이 있다. 요컨대 프라하 규칙의 문서제출 절차는 대륙법 정신을 바탕으로 IBA 증거규칙보다 간결한 문서제출 절차를 제시하는 것이다.

◇Janet Walker 교수(좌)가 강연 사회를 맡은 임수현 KCAB INTERNATIONAL 사무총장과 대담하고 있다.
◇Janet Walker 교수(좌)가 강연 사회를 맡은 임수현 KCAB INTERNATIONAL 사무총장과 대담하고 있다.

현대 국제중재에서는 전문가 · 감정인의 증언(Expert Testimony)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영미법 시스템에서 양 당사자가 선임한 전문가들이 당사자들의 변호사들이 정리한 사실관계와 문서만 검토해 내놓는,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성에 맞춰진 전문가 의견은 마치 밤에 두척의 배가 지나가듯이(ships passing each other in the night) 전혀 다른 내용을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러한 현실은 중재판정부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점이 된다.

일단 프라하 규칙에서는 중재판정부가 중립적인 전문가를 선임할 수 있고, 당사자들의 개입 없이 전문가에게 직접 지시할 수 있고 전문가와 논의할 수 있다. 또한 중재판정부는 전문가가 중재기일(Hearing)에서 증언하도록 지시할 수도 있다.

공동보고서 제출도 명할 수 있어

또한 프라하 규칙에서는 중재판정부가, 전문가들이 다루어야 하는 이슈들에 대한 Joint List of Issues를 당사자들과 논의하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List of Issues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논의하여 공동보고서(Joint Report)를 제출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프라하 규칙의 규정 사항들은 영미법 전문가 시스템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프라하 규칙은 사실관계 증인과 관련하여, 자세한 증인 진술서보다는 증언 내용에 대하여 General Description을 제출하는 절차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중재판정부도 사실관계 증인을 소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라하 규칙은 또한 Lura Novit Curia 원칙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사자들이 주장하지 않은 법률적 근거라도 중재판정부가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법률적 근거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두심리 없는 중재도 허용

마지막으로 Hearing에 대하여 프라하 규칙은 구두심리 없이 진행되는 중재도 허용하고 있으며, 중재판정부가 시간 제한을 두고 중재기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라고 제시한다. 또한 프라하 규칙은 화상회의, 전화회의 등 효율적인 소통 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Hearing에 관련된 프라하 규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중재판정부가 Hearing 전에 당사자들과 중재의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쟁점들을 논의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Hearing에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내용이 다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최근 Neil Kaplan이나 Lucy Reed가 본Hearing 전에 별도의 Hearing을 통해서 핵심적인 내용에 대하여 논의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도라고 생각한다.

프라하 규칙은 국제중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중재가 IBA의 규칙과 영미법 중심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프라하 규칙으로 많은 것을 바꾸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프라하 규칙의 많은 요소들은 기존 규칙과 관행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특히 아시아와 같이 대륙법에 익숙한 관할권에서는 이러한 규칙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더욱 효율적으로 중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아시아권의 중재기관에선 프라하 규칙의 요소들을 채택하여 해당 중재규칙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본다.

◇강의 후 Walker 교수와 Q&A 세션을 통하여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영미법 중재인과 변호사들이 왜 중재 초기에 사건의 실질적인 내용이 논의되는 것을 꺼려하는가에 대하여 질문이 있었고, Walker 교수는 중재인이 끝까지 단서와 주장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일찍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프라하 규칙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서제출 절차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가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Walker 교수는 프라하 규칙은 구체적인 문서의 행태나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고, 기존 Redfern Schedule에 반영되는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겠지만, 문서제출 요청을 중재판정부에 제출하는 것 자체와 문서의 범주가 아닌 구체적인 문서를 지정하여 요청해야 하는 규칙들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Prague Rules를 작성한 Working Group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독일계 또는 러시아계의 대륙법 변호사들이다. 왜 프라하 규칙의 작성자 중에는 아시아계 변호사가 없는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Walker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

이대웅 미국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aewoong.lee@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