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글로벌 자금세탁 방지의무의 과거 · 현재 ·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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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출고 2018.12.0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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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철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이 11월 19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은행회관에서 미국의 자금세탁규제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와 함께 '2018 글로벌 자금세탁규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특히 미 재무성 고위관계자가 한국계 은행들에게 대북제재 위반이 없도록 엄중히 주의를 환기시키는 등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열려 한층 주목을 받았다. 미 금융 규제당국은 외국계 은행의 금융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으며, 자금세탁방지기준 위반시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 직접 발표하기도 한 정유철 변호사가 관련 내용을 요약한 글을 보내왔다. 정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친 2002년 지금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합쳐진 기관이었던 재정경제부 사무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금융정보분석원에서 경험을 쌓은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로, 이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 검사를 거쳐 2013년부터 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 제재심의위원도 맡고 있다. 편집자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무엇보다 금융거래에서 격변을 가져왔다. 즉 테러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 원천이 되는 테러자금 조달행위를 근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는 기존에 마약자금, 조직범죄 등과 관련되어 발전해온 자금세탁방지(AML, Anti Money Laundering)와 관련된 국제규범 시스템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각국은 자금세탁 방지시스템을 자국의 금융거래 체계와 관련하여 도입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정유철 변호사
◇정유철 변호사

이러한 자금세탁방지에 관련된 국제규범을 정립하는 기관이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이다. FATF는 1989년 G7 정상회의에 금융회사를 이용한 자금세탁에 대처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FATF에 34개국 가입

현재 우리나라,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34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FATF의 핵심적인 역할은 자금세탁방지와 관련된 권고사항을 채택, 이를 발표하여 각국에 도입을 권고하는 것이다. 명칭은 비록 권고사항(Recommendations)이나 사실상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 방지와 관련하여 각국이 취해야 할 사법제도, 금융시스템, 국제협력 등과 관련하여 포괄적인 사항을 규범적 형태로 제정하고 있고, 그 이행 여부를 상호평가를 통하여 확인하며, 미흡할 경우 해당 국가는 자금세탁방지 비협조국가로 지정되어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사실상 제외되는 등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국제규범이다.

FATF 권고사항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의 핵심기구로서 금융정보분석기구(FIU, Financial Intelligence Unit)를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설립 여부를 자금세탁 방지시스템 구축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보고 있다.

2001년 11월 FIU 설립

각국은 9.11 테러 직후부터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 조달 차단 시스템을 자국의 금융시스템에 도입하는 것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필수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1. 11. 28. 우리 정부도 당시 제정 공포된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률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을 재정경제부 산하기관으로 설립하였고, 나는 그 직후인 2002년 2월부터 사무관으로서 창립구성원으로 참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당시 금융정보분석원은 설립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기관으로 금융위원회,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등으로부터 전문인력을 파견 받았다. 금융회사들은 외환거래, 예금거래, 주식거래 등 개별 금융거래가 일정한 범죄와 관련된 것이 의심스러운 경우에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회사로부터 불법행위와 관련된 의심스러운 거래를 보고받는 경우에, 파견된 전문인력들이 이를 분석한 다음, 범죄와 관련된 혐의가 있는 경우에 이를 다시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등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위와 같은 금융회사에 의한 의심거래보고(STR, Suspicious Transaction Report)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금융회사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해당 금융거래를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고객확인제도(CDD, Customer Due Diligence)로, 이는 금융회사로 하여금 고객과의 거래 시 고객의 성명, 주소, 연락처 등을 확인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범죄와 관련된 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고객이 실제로 해당 거래의 당사자인지 여부 및 나아가 금융거래의 목적까지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고객확인제도 도입

이러한 고객확인제도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고객의 수요에 맞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정확한 고객확인을 통해 해당 거래가 범죄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최소화함으로써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고객확인제도는 최근에는 한층 진화하여 금융회사로 하여금 스스로 고객 및 거래유형에 따른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조달과 관련된 위험성을 평가하고 위험도에 따라 고위험 고객에 대해서는 스스로 한층 높은 수준의 고객확인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도입하는 일명 강화된 고객확인의무(EDD, Enhanced Due Diligence) 제도로 발전하였다.

FATF 권고사항은 1996년 마약 및 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1차적으로 개정되었고, 2003년에는 9.11 테러 이후 테러자금 조달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2차로 전면 확대 개정되었다. 2002년 하반기 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았을 무렵 나는 재정경제부 사무관으로 매달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본부로 출장을 가서 FATF 권고사항 개정을 위한 실무회의에 참석하였다. 이와 같이 FATF 권고사항 개정 논의에 참석하면서 나는 앞으로의 금융규제는 이전과는 새로운 방향으로 확대 발전할 것임을 깨달았다.

9.11 이후 전면 확대 개정

2012년 FATF 권고사항은 다시 일부 개정되었는데, 이는 당시 이란, 북한 등에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던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관련된 UN 안보리결의안에 의해 지정된 이란 및 북한 관련 단체와 개인의 자산을 동결하고 자금지원을 금지하기 위해, 해당 개인 및 단체와 관련된 금융거래에 대한 제재를 권고하는 내용으로, 이는 북한과 인접한 우리나라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최근 2018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FATF 총회에서는 가상화폐(Virtual Asset)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거래에 부과되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기로 하는 권고사항 개정안을 채택하였다. 이번 FATF의 권고사항 개정은 가상화폐거래소뿐만 아니라 ICO(Initial Coin Offering)와 관련하여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도 자금세탁 방지의무를 부과하도록 하여 그 적용 범위를 더욱 확대하였다.

◇법무법인 광장이 11월 19일 자금세탁규제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와 함께 글로벌 자금세탁규제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금융회사 관계자 등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았다. 광장의 정유철 변호사,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윤석 박사, 알릭스파트너스의 스벤 스텀바우어(Sven Stumbauer) 전무 등이 발표했다.
◇법무법인 광장이 11월 19일 자금세탁규제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와 함께 글로벌 자금세탁규제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금융회사 관계자 등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았다. 광장의 정유철 변호사,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윤석 박사, 알릭스파트너스의 스벤 스텀바우어(Sven Stumbauer) 전무 등이 발표했다.

가상화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 부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자금세탁방지 논의는 최초 1990년대 마약 및 조직범죄에 관련된 자금세탁을 억제하기 위해 논의가 시작된 이래 2000년대 초반 9.11 테러 이후 그 영역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최근에는 이란, 북한 등과 관련된 금융거래에 대한 주요 제재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아가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수단으로 확대되는 등 그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고, 규제수단 또한 강화되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에 관련된 이러한 논의는 자금세탁방지제도가 전통적인 금융거래를 넘어서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즉 자금세탁방지제도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거래가 출현하는 경우 이에 적용될 마땅한 제도적 규제수단이 없을 때 우선으로 고려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이는 올해 초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에 대해서 일제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이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된 가상화폐거래소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터키 기업 등 12명에 신규 제재

2016년 이후 미국 정부는 외국 금융회사가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자금세탁 대상국 지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최근 북미 관계의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은 지난 10월 북한과 거래를 시도한 터키 기업 등 기관 8개와 개인 4명에 대해서 신규 제재를 가하였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 9월 미국에서 영업 중인 국내 은행의 준법감시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준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미국이 한국계 은행에 대해서 자금세탁 방지의무 준수를 요구한 것은 지난 2014년경 시작되었다. 기업은행 뉴욕지점이 2015년 미국 연방준비은행(FRB) 및 뉴욕금융청(NYSDFS)로부터 이란과의 금융거래에 대해서 검사를 받고 의심거래 모니터링 시스템 미흡 등을 지적받아 2016년 2월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서면 합의를 하였다. 신한은행 뉴욕현지법인도 2016년 뉴욕금융청의 검사결과 고객확인 및 이에 관련된 위험평가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농협은행 뉴욕지점은 검사결과 자금세탁방지 관련 시스템 및 내부통제제도 미흡 등으로 지적받아 뉴욕금융청으로부터 1110만 달러 즉 120억원 상당의 제재금을 포함한 공식적인 제재를 부과 받았다.

농협銀 뉴욕지점에 1110만$ 제재금

최근 미 금융당국은 자국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은행에 대해서 자금세탁방지와 관련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고, 위반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미 금융당국의 요구는 특히 자금세탁방지규정의 형식적인 준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의 효과성에 주안점을 두고 현장 검사 시 이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에 대응하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즉 미국 금융당국의 검사는 일회성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검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5개 등급으로 나누어 책정하고, 이후 검사 시 기존 등급과 비교하여 등급이 하락했는지 여부, 취약 등급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평가하며, 1년에서 1년 반의 주기로 이전 검사 지적사항의 개선여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여 등급이 하락할 경우 또는 개선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 제재조치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미국에서 영업하는 외국 금융회사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자금세탁방지 관련 컴플라이언스 요구 강화에 직면한 국내 은행들은 전문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는 등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올 6월부터 8월까지 미국의 컴플라이언스 강화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와 합동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TF를 운영했다. 나아가 향후 미국에서 지점 내지 현지법인을 운영하는 금융회사들에 대해 국내 본점 차원의 관리감독을 개선 또는 강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본점 차원 관리감독 강화 검토

2002년경 국내에 최초로 도입된 자금세탁방지제도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그 적용 범위와 깊이에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최근 미국의 압박강화를 계기로 국내 금융회사들도 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즉 사전적으로는 자금세탁 방지의무의 준수 여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각각의 거래의 적법성에 관한 확인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고, 사후적으로는 국내의 감독당국 및 로펌 등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서 규제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정유철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youchull.jung@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