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브로커와 법조 신뢰 회복
법조브로커와 법조 신뢰 회복
  • 기사출고 2006.07.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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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법조브로커가 법조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아도 전에 터진 비슷한 사건과는 규모나 내용이 비교되지 않는다. 법 · 검 · 경이 모두 연루돼 있다.

◇김진원 기자
이중 현직 판사가 4명. 차관급인 현직 고법부장도 들어있다. 사실심의 최종심인 항소심 재판장을 맡는 고법부장은 곧바로 대법관이 될 수 있는 법원내 요직이다.

이란산 카페트를 수입해 팔았다는 브로커 김홍수씨의 로비 리스트엔 현직 검사 2명의 이름도 나온다. 이중 김모 검사는 이 사건으로 이미 사표를 냈다.

검사 출신 변호사 2명과 서울시내 경찰서장으로 있다가 최근 대기발령된 총경과 또다른 경정도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김씨가 돈을 뿌려가며 범죄를 수사해 기소하고 재판하는 권력기관에 접근해 친분을 쌓고 영향력을 길러 온 것이다.

그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청탁 성공률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10개의 사건을 부탁하면 그중 9개는 로비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검찰이 확보한 김씨의 개인수첩엔 판 ㆍ 검사, 경찰 간부 등 80여명의 연락처가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사확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초대형 법조비리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원래 영어의 중개인을 뜻하는 '브로커'는 외국에선 고소득의 전문직업으로 통한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전문 직종의 세계를 소개하며 고액의 소개료를 받는 첨단 직업이다. 지금도 증권브로커나 브로커의 일종인 해운 딜러 등은 매력적인 전문 직업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중개 과정에 깨끗하지 못한 돈이 오가며 사기꾼과 같은 나쁜 의미로 변질되고 말았다.

법조 주변에도 오래전부터 브로커가 기생해 왔다. 구속과 처벌, 송사의 운명이 갈리는 힘 있는 기관이 법원과 검찰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단속으로 수그러들었다가도 약효가 떨어졌다 싶으면 또다시 고개를 드는 고질병처럼 브로커 비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때의 법조브로커는 사건브로커를 가리키는 말이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의 명함를 파 가지고 법원과 검찰 주변에서 변호사에게 사건을 물어다 주고 소개료를 챙기는 변호사브로커가 이들인 것이다. 직접 판, 검사를 상대하며 사건을 청탁하는 김홍수씨와는 다른 부류다.

사건 수임 과정에 브로커가 개입되면 소개료를 떼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 수임료가 올라가고 변호사업계의 물을 흐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이 판, 검사를 직접 상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판, 검사가 등장할 때는 가운데 변호사가 등장해 법조비리로 사건이 확산되곤 했다.

1997~98년의 의정부 법조비리, 1999년의 대전 법조가 바로 그런 사건들이다. 소개료 수수에서 불거진 이들 사건은 변호사와 판, 검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비화되며 여러 명의 판, 검사가 법복을 벗고 물러나는 법조비리로 비화됐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직접 판, 검사 등과 어울리며 사건의 해결을 청탁하는 브로커가 등장했다. 돈과 향응을 제공하며 사귄 판, 검사와의 친분을 이용해 사건 관계자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이 돈중 일부로 또다시 판, 검사를 접대하는 기업형 브로커가 검찰에 적발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최근 인천에선 서울에서 개업한 한 변호사가 부장판사 시절 다른 재판부가 맡고 있는 사건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구속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군산에서도 현직 판사들이 지방의 금융업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또 얼마전엔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이 터져 윤씨와 부적절한 돈 거래를 한 판사 3명이 사표를 내고, 고검장 출신 변호사 등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이런 가운데 현직 고법부장 등이 브로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법조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오고 간 돈의 액수도 떡값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가성이 입증될 경우 곧바로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유의 브로커가 법조 주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실기업 인수와 대출 등을 알선하겠다며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인 김재록씨나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채무 탕감을 위해 거액을 받고 로비스트로 나섰다가 검찰에 구속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도 실상은 브로커에 다름 아니다.

금융브로커라고 불리는 이들은 알선료로 챙긴 돈이 수십억원에 이른다. 금융기관 간부 등에게 뇌물로 건네진 돈도 억대를 호가하는 등 김홍수씨가 법조인들에게 건넸다는 돈과는 단위가 다르다. 로비의 목적이 된 사안도 금전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에 이르는 이권이다.

그러나 이번 법조브로커 사건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감정은 두 금융브로커 사건에 비할 바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죄를 묻고 벌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법을 돈, 향응과 맞바꿨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될까.

모 고법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대가성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안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그가 법을 다루는 판사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퇴임한 손지열 전 대법관은 법원내 월간잡지인 '법원사람들'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법관을 선비에 비유하며 선비의 덕목중에서도 '깨끗함(淸士)'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관은 필요 이상의 부를 탐하고 이재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는 특히 "법관은 잡스런 무리들과 어울려 불미한 언동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후배 법관들에게 경고했다.

손 전 대법관과 같은 날 퇴임한 강신욱 전 대법관은 "국민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와 같은 말들을 믿고 있다"고 질타했다.

11일 취임한 5명의 새 대법관은 한결같이 국민의 신뢰 회복을 강조하고 나섰다.

과연 법원과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사는 길이 무엇인지, 이번 사건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p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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