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헤어지자는 말에 사귀던 여성 때려 자살했어도 자살에 대한 배상책임은 없어"
[손배] "헤어지자는 말에 사귀던 여성 때려 자살했어도 자살에 대한 배상책임은 없어"
  • 기사출고 2018.09.11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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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폭행에 대한 위자료 배상만 인정

사귀던 여성이 헤어지자고 하자 남성이 여성을 때렸다. 그러나 이후 이 여성이 자살했더라도 가해 남성에게 자살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부(재판장 송인권 부장판사)는 8월 1일 자살한 김 모(여 · 사망 당시 24세)씨의 부모와 언니가 손해를 배상하라며 가해 남성인 이 모(28)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8나6517)에서 "김씨의 사망을 직접 원인으로 하는 김씨의 일실수익 손해와 장례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 "위자료 5000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씨가 폭행당해 김씨와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책임만 인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자살과 피고의 폭력 등 위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고, 김씨의 일실수익 손해를 포함한 전체 피해액 중 원고들이 일부청구로 요구한 1억 4000만원 모두를 지급하라고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다.

김씨와 이씨는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서울 지역 모 국회의원의 선거 사무소에서 선거 도우미로 만나 2주 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이씨는 이 국회의원이 당선되자 비서로 근무했다. 

이씨는 2016년 3월 6일 오전 1시쯤 김씨와 다툼을 벌였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르라는 자신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르지 않고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씨는 다툼 중 김씨가 집으로 가려하자 앞을 가로막으며 김씨의 팔을 잡아 쥐고 가슴을 밀다가 급기야 목을 손으로 가격하고 가슴을 미는 등 폭행을 가했다. 김씨는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화단에 부딪혔다.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김씨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씨는 폭행을 당한 다음 날인 3월 7일 경찰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이씨의 폭행을 신고한 다음 직접 경찰서에 가서 이씨를 고소하고 조사를 받았으나 조사 후 지인에게 '이씨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피해 사실이 묵힐까봐 답답하다'는 등의 심정을 토로했다. 분노와 억울함에 힘들어하던 김씨는 지인들에게 '계속 나쁜 생각만 하게 된다',  '나 진짜 미칠 것 같다'는 등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폭행을 당한 뒤 사흘 뒤인 3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김씨의 부모와 언니가 "이씨의 폭행으로 김씨가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며 이씨를 상대로 김씨의 사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 중 일부 청구로 1억 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불법행위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까지 포기하는 것은 흔한 일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에서도 피고가 폭행으로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끓을지도 모른다는 사정을 예측하였거나 예측할 수 있었던 때에 한하여 김씨의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통상 자살은 자신의 앞으로의 삶이 무의미해졌거나 불행이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절망에 빠졌을 때 최후로 취하는 선택으로 이해되는데, 타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경험칙상 폭행 피해자의 일반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특히 김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은 일이 없으며 다른 지병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사실, 김씨는 (이씨로부터) 폭행 피해를 당한 다음날인 2016년 3월 7일 경찰서에 출석해 피고를 고소하면서 폭행 당시 피고가 김씨를 붙잡고 있던 부위에 근육통이 있었으나 신체에 별다른 상처는 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김씨가 폭행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별다른 신체적 후유증을 입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어, 폭행으로 행사된 유형력이 평소 건강하던 피해자에게, 이를테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야기할 정도로 신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주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고, 이 점에서도 김씨의 자살이 폭행의 통상적인 결과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원고들은 이 사건 폭행은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어 폭행으로 인한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더라도 통상적으로 그 피해자에게 자살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모든 데이트 폭력이 피해자로 하여금 자살시도를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데이트 폭력의 유형, 강도 및 빈도 등에 따라 그 후유증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 사건 폭행이 데이트 폭력과 자살의 추상적인 관련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여러 데이트 폭력의 유형 중에서도 피해자의 자살을 초래하는 수준의 것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무상 군대, 학교 등 회피할 수 없는 단체생활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폭행은 그로 인한 피해의 의미가 일반사회에서의 폭행 등과는 크게 다르다는 이유로 폭행과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반면, 집단적 특성이 약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이나 일회성 · 우발적인 폭행과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점, 이에 따라 김씨가 폭행으로 피고를 고소한 형사사건에서 김씨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피고를 폭행치사가 아니라 폭행죄로만 기소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320 시간의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사회일반의 거래관념 또는 사회일반의 경험칙에 비추어 자살은 (이씨의) 폭행과 같은 정도의 폭행에 따라 통상 발생할 수 있는 결과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의 입장에서도 폭행 당시 김씨가 자살할 것이라고 예측하였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워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원고들이 구하는 김씨의 일실수입 손해와 장례비 손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가 김씨의 사망을 직접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책임은 부담하지 않더라도 김씨가 자신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르지 않고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장시간 반복적으로 심한 폭행을 가하여 김씨로 하여금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 등의 정신적 고통을 입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인 원고들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으므로, 피고는 그로 인하여 김씨와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액수를 김씨 2500만원, 김씨의 부모 각각 1000만원, 김씨의 언니 500만원 등 총 5000만원으로 정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