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삼성전자 이어 삼성전기 근로자 백혈병도 산재 인정
[노동] 삼성전자 이어 삼성전기 근로자 백혈병도 산재 인정
  • 기사출고 2018.09.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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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전리방사선, 벤젠 등 발암물질에 지속적 노출"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에서 TV  · 모니터 부품을 만들다가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가 소송을 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 근로자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한 사례가 있었지만 삼성전기 사업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의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심홍걸 판사는 8월 16일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 김 모(여 · 43)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7구단62399)에서 "업무상 재해"라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씨는 1993년 1월경부터 삼성전기 수원공장에서 TV  · 모니터 부품인 FBT(Fly Back Transformer) 조립공정 업무 등을 3년 4개월 동안 수행하다가 1996년 5월경 퇴사했으나, 퇴사 후 5년 후인 2001년경 출산을 한 후 지혈이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 진단을 받을 당시 김씨의 나이는 만 26세. 김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였고, 근무기간이 약 3년 3개월로 짧은데다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기간도 3개월로 짧아 누적 노출량이 많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조립공정은 검사, 홀더 조립, 납 도금, 납 제거, 제품 케이스 조립, 신너 주입 순으로 이루어졌는데, 김씨는 입사 후 보호복과 장갑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보호장구 없이, 약 3개월 동안은 X-ray 검사 업무를 주간 8시간 근무 형태로, 이후 퇴직할 때까지 약 3년 1개월 동안은 주로 조립공정 중 납 제거 업무를 주야간 2교대(12시간) 또는 3교대(8시간)근무 형태로 1주일에 6일간 수행했고, 때로는 납 도금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김씨가 수행한 납 제거 업무는 납 도금 후 보빈에 묻은 뜨거운 상태의 납을 핀셋 등을 이용하여 제거하는 것으로, 김씨는 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납 물이 김씨의 옷에 묻는 일이 빈번했다. 또 장비와 건물의 배기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납 제거 직전 단계인 납 도금 과정에서 발생한 납 분진과 흄에, FBT와 생산장비 등을 세척하는 과정과 납 제거 이후 단계인 신너 주입 과정에서 사용된 신너에, 조립공정 이후 단계인 주입공정에서 사용된 에폭시 수지에 각각 노출되었다.

심 판사는 "원고는 약 3개월 동안 X-ray 검사 업무를 하면서 발암물질인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었고, 약 3년 1개월 동안 납 제거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FBT와 생산장비 등을 세척하면서 벤젠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신너를 사용하고, 원고가 직접 수행한 작업은 아니지만, 작업장 자체의 구조로 말미암아 인접한 납 도금 작업이나 신너와 에폭시 주입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이 전파 · 확대됨으로써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더욱이 원고는 납 제거 업무를 하면서 중금속인 납 등에 노출되었는데, 비록 납에 노출될 경우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점에 관해 의학적으로 뚜렷히 증명된 바는 없기는 하나, 납 등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은 분명하고, 이러한 물질들에 의하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였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 판사는 이어 "원고는 수원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백혈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이 사업장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후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26세 무렵 상병이 발병하였다"며 "원고가 수원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된 납,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원고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상병을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경험칙에 부합하므로, 원고의 업무와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씨의 백혈병 발병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심 판사는 이와 관련, 대법원 판결(2015두3867)을 인용,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 · 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며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율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율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율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율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고,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심 판사는 "(원고가 근무한) 수원사업장과 근무환경이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발병률이 우리나라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원고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발병률과 비교하여 유달리 높다면, 이러한 사정 역시 원고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