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조영남 '그림 대작' 항소심 무죄 판결 이유는?
[형사] 조영남 '그림 대작' 항소심 무죄 판결 이유는?
  • 기사출고 2018.08.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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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친작 전제 구매 단정 불가…기망 인정 안 돼"

조수가 그린 그림에 가필(加筆)해 자신의 작품으로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은 가수 조영남(73)씨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과 달리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무엇일까. 항소심(2017노3965)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재판장 이수영 부장판사)는 8월 17일 "작품을 산 구매자들이 조영남의 친작(親作)임을 전제로 미술작품을 구매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조영남에 의하여 기망당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보조자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음에도 자신이 직접 그린 친작으로 오인한 구매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고 미술작품을 판매하였다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조씨 작품의 밑그림을 그린 송 모(63), 오 모씨는 보수를 받고 조씨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보조자 혹은 조수일 뿐, 조씨 미술작품의 작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문제는 조씨가 송, 오씨 등 보조자의 사용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고지함으로써 작품이 조씨의 친작이라고 믿고 있을 구매자들의 착오를 제거해주어야 할 고지의무가 있는지 여부.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을 구매하는 경우 그 작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는지 여부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지도, 아이디어의 독창성이나 창의성,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등을 포함하는 작품의 수준, 작품의 희소성, 작품의 가격 등과 함께 구매자들이 작품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제반 요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나, 작품의 구매의 동기나 목적, 용도 또한 감상용 · 소장용 · 전시용 · 투자용 등으로 다양하거나 중복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위와 같은 제반 요소들이 제각기 다른 중요도를 가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위 제반 요소 등 어느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작가의 친작인지 여부가 일반적으로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조씨 미술작품의 구매자들 역시, 조씨의 친작인 줄 아니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하고, 작품경향이 독특하고 작가의 유명세 등으로 수집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구입하였다거나, 심지어 팬으로서 소장하고자 하였고 구입한 그림이 대작(代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는바, 구매의 주관적 동기가 모두 같지 않고, 따라서 작품 제작에 보조자인 송, 오씨를 사용한 사실을 알았다면 작품을 해당 가격에 구매하지 않았을 것임이 명백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조씨가 작품을 구매한 피해자들에게 해당 작품 제작에 있어 보조자를 사용한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있었는지와 관련해서도, "구매자들 또한 작품 구매의 동기로 '아이디어나 화투를 소재로 삼은 것의 참신함, 창의성, 특이함, 발상자체의 신선함', '조영남의 팬, 조영남의 인지도 또는 이름값', '소장할 가치, 투자할 목적' 등을 진술하고 있어, '조영남의 친작인지 여부'라는 사정 외에도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여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조영남의 친작'으로 알고 구매하였다는 구매자들 역시 구매계약 단계에서 위와 같은 구매동기가 표시되었거나 작가 혹은 화랑 측에 그에 관한 문의를 한 바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구매자들이 조씨의 친작임을 전제로 작품을 구매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조씨가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하여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속이고 판매하였다거나 이 사건 미술작품들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닌 이상, 이 사건 미술작품들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구매자들이, 막연히 조영남의 친작일 것이라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조씨에 의하여 기망당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씨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인 장 모씨에 대해서도, "조씨의 지시를 송씨 혹은 오씨에게 전달하거나 판매계약을 주선하는 등 미술작품의 제작 및 판매를 위하여 협력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조씨의 고지의무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보증인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무죄"라고 판시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송씨와 오씨 등 화가 2명을 고용해 '화투 그림' 26점을 그리게 한 후 송씨 등이 90%를 그리면 가벼운 덧칠만 해 자신의 작품으로 판매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송씨 등은 그림 작업을 돕는 조수에 불과하고, 아이디어는 내가 냈으니 내 작품"이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또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도 조수를 썼고, 조수를 쓰는 것은 현대미술의 흐름이자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작품의 아이디어나 소재의 독창성 못지않게 아이디어를 외부로 표출하는 창작 표현 작업도 회화의 중요한 요소"라며 유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1심과 정반대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