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안희정 전 지사 '무죄 판결' 이유는?
[형사] 안희정 전 지사 '무죄 판결' 이유는?
  • 기사출고 2018.08.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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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문…위력 행사 인정 어렵다"

유력 정치인이자 도지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월 14일 1심에서 무죄 판결(2018고합75)을 받았다. 이유는 업무상 상하관계 등 상호 지위상 위력관계는 인정되나, 위력을 행사하여 간음, 추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 재판부는 KTX 등에서의 입맞춤 등 강제추행(기습추행)에 대해서도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2017. 7. 30. 러시아호텔에서의 간음, 2017. 8. 13. 강남 노보텔에서의 간음, 2017. 9. 3. 스위스 호텔에서의 간음, 2018. 2. 25. 마포 오피스텔에서의 간음 등 4건의 피감독자 간음과 2017. 11. 26. 카니발 승합차에서의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 그리고 러시아 요트에서의 허리 감싸 안기, KTX에서의 입맞춤, 공중 화장실 앞 껴안고 입맞춤, 도지사 집무실에서의 포옹 등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주요쟁점인 ①업무상 위력이 존재하였는지, ②위력을 행사하였는지, ③위력의 행사와 간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④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가 성립하려면 위력관계 즉,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남녀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①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②그 위력이 행사되어야 하고, ③행사된 위력과 간음, 추행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④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먼저 "기본적인 위력관계는 존재하지만, 피고인이 이를 상시적, 일반적으로 행사해왔다고는 볼 수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개별 공소사실에서 위력을 행사해왔는지 여부와 관련, 사실상 직접적이고 주요한 유일의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인데, 여러 정황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이 다수 존재하며, 그 외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17. 7. 30.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과 관련, 재판부는 "피해자 주장에 따라 보더라도, 간음행위 전 단계에서 피고인이 행한 신체접촉이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자를 포옹한 행위이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 행위 부분을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해 피해자는 간음에 이르기 전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하여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였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피고인의 요구에 따라 피고인을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은 피해자가 안 전 지사로부터 처음으로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는 사건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처음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는 몇 시간 이후부터의 행동 즉,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샵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나아가 수행비서직을 수행하는 내내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의 상시적인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이러한 사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단지 간음피해를 잊고 수행비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에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7. 8. 13. 강남 호텔에서의 간음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투숙하게 된 경위, 특히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하였는데, 시간, 장소, 당시 상황,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추어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별다른 반문이나 저항 없이 이에 응하게 된 사정이 있다고 지적하고, 2017. 9. 3. 스위스 호텔에서의 간음과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객실을 교체해가며 피고인이 머무는 동에 숙소를 잡은 점, 당시 피해자는 이미 신 모씨에게 피해사실을 호소했고 신씨도 피고인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였다고 하고 있음에도 피고인의 객실로 들어가 간음에 이르게 된 점 등 의문이 가는 사정도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마지막 간음행위인 2018. 2. 25. 마포 오피스텔에서의 간음과 관련, 피해자는 피고인이 미투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겁에 질렸는데, 피고인이 이 상황을 이용한 것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피해자가 전날 피고인이 출연한 명견만리 촬영장에 가게 된 경위, 그날 밤 대전에 있다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경위, 오피스텔에서 나간 이후 행적,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피해자는 마지막 간음 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 준비에 들어가게 되므로 해당 텔레그램 대화는 주요한 증거일 것입니다만)는 모두 삭제되어 있는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특히 피해자는 이 시점에 이미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피고인과 미투 운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는데, 뒤이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는 것인데, 수행비서도 아니고 달리 당시 심리적으로 제압을 당한 상황이라 볼만한 정황도 없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심야에 대전에서 올라올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적어도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으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종합하여 보면,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의 상황에 있어서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가 어떠하였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피고인이 어떠한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이에 제압당할만한 상황이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성폭력 피해나 2차 피해로 인한 충격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고, 피고인이 성적인 길들이기를 하여 '그루밍'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하여 살펴보았으나, 제반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평가할 때 피해자가 이러한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관행화, 구조화된 폐습으로서의 권력형 성폭력 행위가 우리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점과 이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연대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하여 십분 공감할 수 있지만, 사안이 형사법정으로 온 이상 헌법적, 형사법적 원칙에 기초하여 사안을 심리하여야 할 것이고, 그 결과 재판부에서 본 사건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른바 'No means No rule'(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 'Yes Means Yes rule'(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성관계로 나아가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No means No rule'은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유럽 10개국에서 강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고, 'Yes Means Yes rule'은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웨덴이 이를 입법화했다.

재판부는 "두 기준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법제 하에서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증명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사안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며 "두 처벌체계의 도입 여부는 입법론적 문제이고,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할 뜻을 밝힌 만큼 사건은 항소심으로 이어져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