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의 법률시장 개방
싱가폴의 법률시장 개방
  • 기사출고 2006.06.21 15: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합작 허용까지 30년…선진 로펌 기술 접목 노력 활발 정부의 적극적 보호정책 통해 자국 로펌 피해 최소화
한미 FTA 협상 등 국내법률시장의 개방이 임박함에 따라 성공적인 개방에 대한 논의가 연일 이슈화되고 있다.

◇임석진 미국변호사
우리보다 한발 앞서 법률시장을 개방한 싱가폴의 사례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싱가폴에 외국 로펌이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2000년도까지 싱가폴에는 이들을 규제하기 위한 별도의 법규가 전무한 실정이었고, 법무검찰청장(Attorney-General)이 관습과 선례(Custom and Precedent)에 의존해 외국 로펌과 법률가들을 규제해 왔다.

2000년도에 이르러 싱가폴을 세계 금융서비스 산업의 중심지로 세우고자 싱가폴 정부는 법무전문직(개정)법[Legal Profession (Amendment) Act 2000]과 이를 시행하기 위한 국제법무서비스규칙[Legal Profession (International Services) Rules 2000]을 개정했다.

2000년 법개정…JLV, FLA 허용

이 개정법에 의해 싱가폴 내의 외국 로펌과 싱가폴 로펌 간의 합작법률회사(Joint Law Venture)와 법무제휴단체(Formal Law Alliance)의 설립이 허용됐다.

이미 싱가폴에 진출해 있는 외국법률가의 경우 업무범위가 해외 거래와 관련된 자문으로 제한돼 왔으나 개정법 이후 합작법률회사 소속의 외국법률가에 한해 기업, 금융, 은행관련 업무의 수행이 허용됐다.

싱가폴 변호사가 동행하지 않는 한 법원이나 기타 소송 관련 업무는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송관련 업무는 외국변호사들의 관심이 아니어 상호간에 큰 이슈는 없었다.

개정법에 따르면 외국 로펌이 싱가폴 로펌과의 합작법률회사를 등록하기 위해선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두 로펌 모두 은행 및 금융업무에 관한 법률적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며, 둘째로 외국 로펌은 싱가폴에 거주하는 5인 이상의 외국법률가를 보유해야 한다(이중 2명 이상은 파트너).

이들 외국법률가에게는 은행이나 금융업무에서 최소 5년의 관련 경력이 요구되며, 외국 로펌과 합작하는 싱가폴 로펌은 5인 이상의 싱가폴 법률가를 보유해야 한다(마찬가지로 2명 이상의 파트너 필요).

이외에도 합작회사가 파트너쉽(Partnership)일 경우 외국 로펌의 파트너가 싱가폴 파트너보다 많을 수 없으며, 외국 파트너가 싱가폴 로펌의 파트너가 되면 외국 로펌의 지분을 포기해야 하는 등의 제약이 따른다.

또한 외국 로펌과 싱가폴 로펌은 공동경영에 관한 서면 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두 로펌 간의 동등한 경영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라 볼 수 있다.

외국 로펌과 합작 활발…일부 외국 로펌은 합작 포기도

개정법 실행 이후 싱가폴의 법률시장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소형 로펌은 대형 로펌과의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고, 거대 영미 로펌과 싱가폴 로펌 간의 합작 또한 활발해졌다.

이 시기에 클리포드 챤스 (Clifford Chance), 화이트&케이스(White & Case), 베이커& 멕킨지(Baker & McKenzie), 셔먼&스털링(Shearman & Sterling) 등 일곱 개의 거대 외국 로펌이 싱가폴 로펌과의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앞세워 싱가폴내의 유능한 변호사들을 흡수하기 시작한 이들은, 곧 인수 · 합병(M&A)을 비롯한 크고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합작회사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싱가폴 로펌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부진과 소득분배의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화이트 앤 케이스와 셔먼&스털링은 합작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로도 싱가폴은 미국, 일본, 호주와의 FTA 협상을 통해 외국 로펌의 싱가폴 진출 장벽을 더욱 낮추고, 법률전문인 요건에 대하여 미국과 호주의 유수 로스쿨의 학위를 인정해 주는 정책을 펼친다.

2004년에는 국제 중재 관련 업무에 있어 싱가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외국 변호사에게 단독으로 싱가폴 법에 관련된 중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로써 외국 변호사가 할 수 없는 일은 법원에서의 소송으로 한정됐다.

최근 싱가폴의 법무서비스 검토위원회 (Legal Service Review Committee)는 외국 변호사가 싱가폴 로펌의 25%에 달하는 지분 또는 이익을 소유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또한 기존의 합작회사나 법무단체의 금융 분야 서비스에의 제한을 완화하여 지적재산권 및 해상법까지도 포함, 국제 법무 서비스의 다양화를 장려했다.

이는 미국 FTA 협정규정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계약 절반 이상 싱가폴법이 준거법

현재 빠른 속도로 국제화 되어가는 싱가폴의 법률시장에는 기존의 영미 로펌 이외에도 중국, 인도 등지의 로펌이 진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외국계 로펌이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특유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내세워 중재 관련 분야, 특히 투자협정중재(Investment Treaty Arbitration) 분야에 있어 싱가폴을 중재지구로 선택하게끔 하는 홍보가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국제 중재업무의 준거법으로 싱가폴의 법을 채택하도록 하여 이 분야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이런 싱가폴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2005년 싱가폴 국제중재위원회 (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의 통계에 의하면 국제 계약의 절반 이상이 싱가폴을 계약서의 준거법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법(Intellectual Property), 상사관련소송법(Commercial Litigation), 회사금융법(Corporate Finance), 프로젝트 파이낸스(Project Finance), 반독점법(Competition Law)과 같은 분야에 있어서도 싱가폴의 시장 점유율은 나날이 높아져 고 있다.

법률시장개방으로 인한 외국 로펌의 진출은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싱가폴은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 정책을 통해 외국 로펌의 진출로 인한 자국 로펌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동시에 선진 로펌의 기술을 자국의 특성에 맞게 접목한 수준 높은 법무서비스로 법률, 금융산업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임석진 미국변호사는 미 브라운대와 콜럼비아 대학원, 보스톤 칼리지 법과대학원과 런던대 킹스 칼리지 법과대학원을 나왔습니다. 클리포드 챤스(Clifford Chance) 국제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에서 다년간 활동한데 이어 지금은 SL Partners (법무법인 한승)에서 미국변호사로 활약중입니다.

본지 편집위원(sjlim@slpartner.com)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