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동료 직원 고용 불안 걱정하다가 '이타적 자살'…업무상 재해"
[노동] "동료 직원 고용 불안 걱정하다가 '이타적 자살'…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18.06.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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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스트레스로 우울병 악화돼 자살"

동료 직원들의 고용 불안 문제를 걱정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이타적 자살'도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4월 26일 인력감축으로 이어지는 회사 정책에 반대하다가 자살한 A산업개발 직원 임 모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5구합82846)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1994년 A사에 입사한 임씨는 제주지점에서 A사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위탁받은 전기사용량 검침 업무 중 외근 검침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1년 10월부터는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외근 검침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였다. 임씨가 관리하는 36명의 외근 검침원들은 고객들의 집을 방문하여 전기계기를 검침하는 업무를 하였는데, 한전이 2014년 초 제주시 4만 5000호에 대하여 9월경부터 원격검침 사업을 확대 시행하고, 2020년경까지 제주도 전체 가구에 대하여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외근 검침원들이 고용 불안감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원격검침 사업은 '원격검침시스템을 이용하여 검침원의 직접 방문 없이 전기사용량의 검침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임씨가 관리하던 외근 검침원들 중 제주시 4만 5000호를 담당하는 검침원은 7명가량이었다.

업무량 과중과 원격 검침의 확대에 따른 동료의 실직에 관한 걱정 등에 시달리던 임씨는 2014년 5월 26일 새벽 제주시에 있는 야산 소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에 임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임씨의 자살은 이타적 자살로서 판단력 상실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임씨는 이에 앞서  2013년 5월 병원에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과 우울병 장애'로 진단받고 그때부터 2014년 4월까지 주기적으로 약물치료 등 진료를 받았다. 임씨가 직장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원격검침 시행은 착착 진행되고 7명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힘없는 약자는 막을 수가 없네. 비록 하찮은 하소연이지만, 나비효과가 되어 원격검침이 보류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재판부는 "임씨가 불면증 등 정신건강의 문제를 호소한 시점은 2011년경으로, 이는 임씨가 회사 제주지점에서 검침총괄 담당을 맡기 시작한 시점과 시기적으로 겹치고, 감정의도 이를 근거로 임씨가 검침총괄 업무를 맡은 시점과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한 시점의 시기적 관련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임씨가 2011년경 다른 사유로 불면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임씨의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과 우울병 장애' 등의 정신질환은 임씨의 업무상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임씨가 관리하는) 외근 검침원들과 임씨는 제주시 4만 5000호를 담당하는 외근 검침원 7명을 감축할지도 모른다는 고용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임씨가 2014년 초경 직장 동료에게 원격검침 사업 확대 시행 등과 관련하여 '올해는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지만, 내년에는 우리 직원이 그만두어야 될지 모른다'라고 말하였던 점이나, A산업개발 노조가 포함된 전기검침산업별노조 산별추진위원회가 2014년 9월경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이유로 원격검침 사업 확대 시행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전기검침 노동자 총력투쟁계획'을 마련하기도 하였던 점 등까지 고려하면, 그들의 고용 불안은 조만간 현실로 맞닥뜨릴 구체적 문제이었으며, 임씨는 직장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원격검침 사업의 시행으로 7명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현실과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막막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며 "특히 임씨는 외근 검침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면서 자신이 외근 검침원들 중 일부를 감축하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임씨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과 우울병 장애 등'이 업무와 원격검침 사업의 확대 시행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인다"고 지적하고, "임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임씨의 자살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