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만 32년' 이수완 대표
'특허만 32년' 이수완 대표
  • 기사출고 2018.05.0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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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사무소에서 변호사 시작
AIP 세워 '특허 파수꾼' 도약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특허 등 IP 소송을 전문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특허사무소에 합류한 것이죠. 그리고 그때만 해도 IP 분야가 발달한 법률회사도 별로 없었어요."

◇이수완 대표변호사
◇이수완 대표변호사

특허사무소 진출 첫 변호사

특허법인 AIP 대표로 있는 이수완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는 1987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특허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보기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지금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어 변호사 중에 특허사무소로 진출하는 변호사들이 꽤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 변호사가 특허사무소로 진출한 최초의 변호사였다. 이어 1998년 3월 특허법원이 문을 열자 1기 재판부 판사로 임용되어 대법원 재판연구관까지 5년간 법원에서 근무한 그는 2003년 AIP 특허사무소를 열어 종합특허로펌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특허 등 IP 업무만 32년째. IP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는 'IP 전문 변호사'가 이수완 대표의 30년이 넘는 법조경력이다.

"특허사무소에 합류한 건 대학동기의 권유 때문이었어요. 나보다 먼저 사법시험에 합격해 IP가 발달한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대학동기 변호사가 코리아나 특허에서 변호사를 영입하려고 하는데 괜찮을 것 같다며 추천했는데, 특허를 배우려면 특허사무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코리아나 특허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코리아나 특허는 특허청장을 역임한 고(故) 이준구 변리사가 설립한, 당시 '빅 3'에 드는 특허사무소 중 하나로, 특히 제약 분야와 국제사건을 많이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수완 변호사는 "특허 관련 분쟁사건이 많았던 코리아나에서 변호사를 영입하려고 후보를 찾고 있었다"며 "사법연수원을 막 마친 내가 시기가 맞아 첫 케이스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코리아나 특허에 합류한 이 변호사는 특허분쟁을 도맡아 처리했다. 또 이때 주로 일본에서 나온 책과 논문 등을 보면서 특허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특허실체법 첫 석사논문

이 변호사는 코리아나 특허에 근무할 때인 1989년 그동안 미뤄두었던 석사논문을 제출,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특허청구범위의 해석". 특허실체법으로 석사논문을 쓴 첫 사례로, 그만큼 특허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때였다.

이 변호사는 또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 로스쿨에서도 특허침해론에 관한 연구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가 1993년으로, 특허법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Donald S. Chisum 교수가 지도교수였다.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특허법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32년째 특허를 붙들고 있다고 했다.

"다른 선택이 없어 사법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지만, 법대에 다니면서도 법학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특허법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가 특허법이 재미있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허법은 특허의 권리자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 항상 긴장 관계가 있어요. 공공의 이익을 더 우선할 것이냐, 아니면 특허를 보유한 권리자를 더 우선할 것이냐, 이 두 가치가 항상 대립되어 충돌하는데, 거기에 철학적인 면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특허법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대상일 뿐이죠."

◇이수완 대표변호사
◇이수완 대표변호사

이 변호사는 "특허법에는 발명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법논리적, 법정책적, 법가치적인 면이 있다"며 "개인의 권리와 산업정책적인 가치가 충돌하기도 하고, 특허권자의 보호와 제3자의 보호, 공공의 보호가 충돌하기 때문에 늘 이 문제를 따지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게 아주 재미있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이과 공부한 적 없어

그래도 어느 정도 기술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는 "당연히 기술에 관한 보좌, 전문 변리사의 보좌를 받아야 하지만, 특허소송의 핵심은 기술보다는 법 논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부산 해동고 문과,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변호사도 이과나 공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공부한 이력은 없다.

"특허소송은 기술보다는 특허법 이론과 논리가 더 중요한 싸움이에요. 기술은 그냥 베이스로 까는 거고, 그걸 결정짓는 것은 특허법 이론이죠. 기술에 대해 잘 몰라도 보좌를 받으면 됩니다. 바이오, 제약, 전자, 소프트웨어 등 어떤 기술도 다룰 수 있어요. 왜냐하면 특허소송은 쟁점을 추출한 후 거기에 법이론을 얼마나 잘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완전히 법적인 논리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그는 기술을 잘 아는 전문 변리사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변리사들이 중심이 된 특허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변리사와의 코웍을 중시하며 특허사무소, 특허법인을 설립해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특허소송의 이런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따고 돌아온 이 변호사는 그 후 코리아나 특허에서 독립해 변리사들과 함께 직접 특허사무소를 열어 운영했다. 코리아나 특허에 변호사로 합류한 지 8년 만에 직접 특허사무소를 설립해 대표가 된 것이다.

특허법원 초대 재판부 판사 임용

그러나 특허사무소를 세워 운영한 지 3년 만에 또 한 번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8년 특허법원이 문을 열며 대법원에서 특허 분야의 전문가를 수소문, 이 변호사가 특허법원 초대 재판부의 판사로 임용된 것이다. 이 변호사는 특허사무소를 떠나 특허법원에 합류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훨씬 소득이 높았지만 특허재판을 담당하면서 판례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판사 입장에서 특허법을 더 연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특허법원에 3개의 재판부가 있었는데, 제가 6명의 배석판사 중 한 명으로 임용되었어요. 물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임용된 사람은 제가 유일했지요."

지금은 법조일원화가 이루어져 판사가 되려면 먼저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아야 하고, 변호사로 있다가 판사로 임용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판사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허법원 판사는 또 고법판사급으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고법판사로 임용된 것도 이 변호사가 처음이었다.

2년간 대법관 보좌

이 변호사는 특허법원 판사로 3년 근무한 데 이어 2년간 대법원에서 지식재산권조 전담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며 대법관들을 보좌했다. 물론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관한 상고사건이 그가 기록을 검토하고 관련 법이론과 판례 등을 조사해 보고한 사건들로, 판사로 근무하며 특허사건만 내리 5년을 취급한 것은 민, 형사 등 다양하게 사건을 취급하는 일반 법관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2003년 그는 5년간의 법원 근무를 마치고 다시 재야 법조계로 돌아왔다. 특히 11년의 변호사 경력에 특허전문 판사로 5년간 재직한 그가 특허사무소를 열겠다고 하자 특허법원과 대법원에서 기술심리관, 특허조사관 등으로 근무했던 상당한 경력의 변리사들이 함께 하겠다며 이 변호사를 따라 나왔다. 조진태, 이재웅, 윤종섭 변리사 등이 그들로, '체임버스앤파트너스(Chambers and Partners)' 등 유명 법률매체에서 한국의 지재 분야 리그테이블을 발표할 때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특허법인 AIP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특허법인 AIP는 이수완 변호사가 설립한 두 번째 특허사무소이자 코리아나 특허까지 포함하면 그가 근무한 세 번째 특허사무소가 된다. 무엇보다도 이 변호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로펌 등 법률사무소가 아니라 특허사무소에 둥지를 튼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 이 변호사는 "특허소송은 변리사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30년 넘게 특허소송을 다루고 있는 제 소신"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법논리로 승패가 갈리지만, 특허소송 수행에 있어서 변리사가 기여하는 비율이 70%"라고 역설했다.

◇이수완 대표변호사
◇이수완 대표변호사

변리사 기여 70%

이 변호사가 5년간의 판사 근무를 뒤로 하고 법복을 벗게 된 데도 그의 남다른 특허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사연이 있다. 특허 사건을 계속하기 위해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선 법원의 부장판사 자리를 포기하고 특허변호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법원에서 부장판사 재판연구관으로 있었는데, 2년이 지나 판사 순환근무제에 따라 지방법원의 일선 재판장 보직을 받아야 했어요. 지방법원에 가서 일반 민, 형사 재판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특허전문가로 법원에 들어왔는데, 일반 민, 형사를 하라고 하면 더 이상 법원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사표를 내고 나왔죠."

특허소송 수행에 있어 변리사와의 협업을 중시하는 이수완 대표는 AIP의 운영과 관련, 특히 소송과 출원업무의 조화를 강조했다.

"특허출원과 특허소송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출원을 통해 기본을 쫙 깔아 놓아야 소송 등 분쟁 사건도 생기고, 출원과 소송이 같이 가야 종합특허 부티크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소송만 있고 출원 한 쪽이 없으면 특허사무소로서 한 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로 설립 15년을 맞은 AIP는 출원을 강조하는 이 대표의 방침에 따라 출원업무가 지속적으로 늘어 전체의 70%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이중 40%가 외국 클라이언트가 한국에 특허를 등록하기 위한 국제업무로 AIP는 해외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출원과 소송의 업무비중이 그렇다는 얘기로, 이 대표 등 5명의 변호사가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특허소송도 연 100건에 이를 만큼 꾸준히 사건이 의뢰되고 있다.

특허소송 연 100건 처리

이 대표에게 특허분쟁의 최근 동향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삼성과 애플 사건 이후 IP 분쟁건수가 그리 늘어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도 "전통적인 기계, 잡화 등의 분야보다는 전자, 통신, BM(영업방법) 등 4차산업 분야의 특허분쟁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허 전문가로서 기업체들에게 조언할 것은 없을까. 이 대표는 "특허를 출원할 때 권리범위를 작성하게 되는데 나중에 침해소송 등 특허분쟁이 발생할 경우까지 예상해 범위를 특정해야 쓸모 있는 특허가 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또 "건수 위주로 무분별하게 특허 등록을 남발할 경우 연차료 등 관리비용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며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속된 말로 똘똘한 특허 위주로 등록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갈수록 특허가 중요해지는 시기에 30년 넘게 특허 한 우물만 파고 있는 특허 전문 이수완 변호사의 조언이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