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성희롱, 일반인 아닌 피해자 처지에서 판단해야"
[행정] "성희롱, 일반인 아닌 피해자 처지에서 판단해야"
  • 기사출고 2018.04.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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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희롱 여부 판단기준 제시성희롱 교수 해임 적법 취지 판결
대법원이 소속 학과 학생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교수를 해임한 것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성희롱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해 주목된다.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 ·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4월 12일 대구에 있는 대학의 컴퓨터계열 교수인 장 모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두74702)에서 피고보조참가한 대학 측의 상고를 받아들여 "장씨에 대한 해임처분을 정당하다고 판단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장씨는 2013∼2014년 소속 학과 여학생들에게 수차례 반복하여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2015년 4월 해임됐다. 장씨는 소속 학과 학생인 A양에게 "뽀뽀를 해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는 등의 말을 하고 수업 중 질문을 하면 A양을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해 문제가 됐다.

장씨는 또 B양에게 수업시간에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는 한편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 주며 신체적 접촉을 하고 복도에서 얼굴에 손대기, 어깨동무, 허리에 손 두르기와 함께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는 행위 등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과 MT에서 아침에 자고 있던 B양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기도 하고,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주겠다고 해 B양이 본인에게 뽀뽀를 하게 하기도 했다.

해임당한 장씨는 징계에 불복해 2015년 5월 소청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당하자 해임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해임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교원소청심사위의 결정은 적법하다"며 장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해임처분이 잘못됐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교수인 원고가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실습실에서 소위 '백허그'를 시도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A양이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원고의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발생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다만 원고가 A양의 손 위로 마우스를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등의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는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고 A양이 그 후에도 계속하여 원고의 수업을 수강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징계사유와 같은 말을 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고 이는 부적절한 면이 없지 않지만, 원고는 평소 A양을 비롯한 소속 학과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거나 가족 이야기, 연애상담을 나누기도 한 점, 원고와 A양의 대화 가운데 극히 일부분을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이는 피해자인 여학생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B양의 진술 내용에 의하더라도 원고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가 매우 좋았던 점, 원고가 평소 친밀감의 표현으로 다수의 제자들을 향하여 팔을 벌려 안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것을 과장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점, B양이 원고에게 뽀뽀를 한 것은 그녀의 친구들이 벌인 장난 가운데 일어난 일로서 원고가 이를 강요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징계사유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며 "가사 징계사유가 모두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여학생들도 대부분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 A양의 문제 제기로 인하여 신고하게 된 것이라는 점 및 사건 발생 경위와 피해 정도에 비추어 볼 때, 해임처분은 원고 행위의 비위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무거워 징계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 · 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양이 자신의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 내용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까지 일어난 일들이어서 A양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더라면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고, "(B양이) 원고에 대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도 자신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하지 않도록 요구하여 그러한 내용의 원고 명의 각서를 공증사무소에서 인증받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먼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양성평등기본법 5조 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원심이 원고가 수업 중에 실습실에서 소위 '백허그'를 하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관련, "원심은 위 행위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원고가 피해자 A양에 대하여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 행위 부분에 대해서는 위 피해자가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원고의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든가 또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원고의 수업을 수강한 점 등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였으나, 이는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법원이 충분히 심리를 한 끝에 상반되는 증거를 비교 · 대조하여 증명력을 평가하여 내린 결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B양의 진술을 배척한 이유들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자신의 성희롱 피해 진술에 소극적이었다거나 성희롱 사실 발생 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등의 사정이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할 사유가 아님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고, 특히 원심이 A양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더라면 과연 피해자에게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한 부분은 성희롱 사실 발생 자체를 배척하는 근거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원고가 평소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거나 가족 이야기, 연애상담을 나누기도 한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원고가 피해자에 대하여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이는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고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 이후에도 계속하여 원고의 수업을 수강한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원고의 행위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분은 수긍할 수 없다"며 "원고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성희롱 행위가 학교 수업이 이루어지는 실습실이나 교수의 연구실 등에서 발생했고, 학생들의 취업 등에 중요한 교수의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이루어지기도 한 점, 이러한 행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정황이 있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 · 판단했어야 옳았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학 측을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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