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 규모와 순위경쟁
로펌의 규모와 순위경쟁
  • 기사출고 2005.11.0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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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십명의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로펌(법률회사)들 사이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규모와 순위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다.

◇김진원 기자
어느 업종이나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공급자들로서는 시장에서의 순위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지만, 로펌들에겐 순위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위는 물론 2위, 3위도 시장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법적 분쟁은 대개 원, 피고의 대립당사자 구조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원고가 있으면 피고가 있는 식으로 최소한 둘 이상의 당사자가 전제돼 있다.

최근 들어선 원고와 피고 외에 사실상 제3, 제4의 여러 당사자가 서로 얽힌 가운데 복잡한 구조로 전개되는 분쟁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또 대형 로펌들이 주로 맡아 처리하는 이른바 빅딜의 경우에는 원, 피고의 개념을 떠나 관련 당사자가 이해관계인의 수만큼 따라 붙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듯한 기업이 M&A(기업 인수&합병)시장의 매물로 나와 입찰을 보기라도 하면, 외국의 기업과 펀드를 포함해 군침을 흘리는 여러 업체가 제각각 유명 법률회사를 앞세워 응찰에 나서는 대리전이 길게 펼쳐진다.

검사와 피고인의 구도로 짜여지는 형사재판의 경우도 피고인 하나만을 생각할 것은 아니다.

두산그룹 사건의 경우처럼 고소, 고발인과 피고소, 피고발인으로 당사자가 대립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2002년 16대 대선을 둘러싼 불법대선자금사건에선 여러 기업체로 수사가 확대되면서 변호사 또는 법률회사가 커버해야 할 피의자, 피고인의 수가 그만큼 늘어나는 등 형사사건도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당사자가 관련돼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건의 경우 특정 변호사나 법률회사는 원칙적으로 어느 한 당사자만을 맡을 수 밖에 없어 1위 로펌에 이어 2위, 3위 로펌도 시장에선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2, 3등만 하더라도 1등이 대리하는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당사자를 나누어 맡으며 1등 못지않게 많은 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는 법률시장의 논리가 선두다툼에 뒤이은 2위, 3위 경쟁으로 전선을 확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오래전 일이지만 기자에게 "완벽한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이 소속된 로펌의 경영 방침을 솔직하게 털어 놓은 적도 있다.

문제는 로펌간 순위 경쟁이 외형적인 규모를 둘러싼 그것에 집중된 감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고도의 서비스펌이라고 할 수 있는 로펌의 경쟁력은 전문성이라는 게 여러 조사 등을 통해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전문성을 가늠할 수 있는 또다른 지수나 수치에 관한 분석이 부족한 가운데 변호사 숫자로 압축되는 규모의 순위만이 거의 유일한 참고자료로 시장에 나돌고 있는 게 우리 로펌업계의 현실이다.

물론 규모도 로펌을 평가할 수 있는 주요 지표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숫자가 로펌의 실력이나 전문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로펌변호사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른 어느 업종보다도 더욱 복잡하게 순위 경쟁이 전개되는 법률시장인 만큼 법률회사의 순위를 제대로 매길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인 장치가 하루빨리 시장에서 가동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