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 후퇴후 '한국 법치주의에 관한 저술' 준비중인 김인섭 변호사]
[2선 후퇴후 '한국 법치주의에 관한 저술' 준비중인 김인섭 변호사]
  • 기사출고 2004.05.3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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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독립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법개혁 추진돼야"
“사법개혁은 사법부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접근해야 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제대로 보장하고, 사법부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그런 목표를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쳐 나가는 게 개혁입니다.”

김인섭 변호사
최근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중인 사법개혁에 대한 김인섭 변호사의 생각엔 남다른 점이 많다.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는 ‘법치주의의 실현’이란 커다란 테마가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고 할까.

판사로, 변호사로 40여년을 살아 온 원로 법조인의 사법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배어난다.

법무법인 태평양을 손수 세웠으나 지난 2002년 10월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대표변호사가 된 그를 사무실로 찾아 사법개혁의 방향에 대한 고견을 들어 보았다.

“무엇보다도 대법원장의 임명 절차를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 안 고쳐지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김 변호사는 먼저 현행 헌법상의 대법원장 임명 방식부터 지적하고 나섰다.

“현행 헌법상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얼마든지 코드에 맞는 사람을 지명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돼 있는데 누구를 지명해 임명동의 요청하는 것은 순전히 대통령 마음대로 아닌가요. 그러나 이는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상의 이념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는 “코드에 맞는 인사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의 장을 코드대로 인사하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할 수 없다”며 대법원장의 임명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관추천위에서 복수 추천받아 대법원장 임명해야"

“법관추천위원회에서 대법원장 후보를 복수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사람을 지명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전에도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6공때 3당 합당을 하면서 이를 집어 넣으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초안에서 빠졌더군요.”

대법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 대법관 임명 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 비록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법권의 독립 보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대법원장 임명을 지금처럼 해선 그 다음 인사를 어떻게 하든 궁극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어 그가 문제삼은 대목은 법관의 승진 제도.

“하이어라키(hierarchy)가 법관에겐 맞지 않는다”며 “법관의 승진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법부는 지금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매우 시급합니다. 법관이 (승진을 의식해) 윗사람 눈치를 봐선 안되지요.”

그는 “선진국 어느 나라에 법관 승진 제도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지법판사는 지법판사로, 고법판사는 고법판사로 끝나는 것”이라고 못박는다.

연장선상에서 그는 “대법관은 출신, 계급, 서열 등을 문제삼아선 안된다”며 “서열타파가 이런 점에서 의미있을 수 있는데, 미봉적으로 서열타파를 하게 되면 조직만 엉크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법관들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고 찾으려는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이점에서 고시 성적순으로 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법관의 책무가 무엇이냐, 이런 것에 대한 의식과 자질을 갖춰야 겠지요. 영 · 미에선 성적순으로 하지 않고 검사와 변호사 또는 로 클럭(law clerk)중에서 골라서 법관을 시키는데 이런 함정을 피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변호사등 경험쌓은 사람중에서 법관 임명해야"

그는 “법관은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질이 있어야 한다”며 "변호사 등으로 경험을 쌓은 법조인중에서 선별해서 법관을 임명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배심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재판은 외부 사람이 간섭하면 엉망이 된다”고 말하는 그는 “ (국민의 사법 참여를 인정하더라도) 배심제 보다는 독일의 참심제 정도가 적절하지 않겠느냐”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변호사이긴 하지만 실제로 변호사 일은 하지 않고 있는 그가 2선 은퇴후 1년 넘게 몰두하고 있는 일은 건국 이후 한국 법치주의의 발전에 관한 연구.

법치주의가 건국 이후 반세기 넘게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돼 왔으며, 그 대안은 무엇인지 정치, 경제, 행정, 법조, 언론, 교육 등 6개 분야로 나눠 저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을 약속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기자에게 사법부의 역할에 관한 그의 지론이 한차례 더 이어졌다.

“남들이 모두 경제제일주의로 갈 때, 남들이 모두 개혁지상주의로 갈 때 사법부는 안정제일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법부의 존재가치이자 의미입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