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등 승소' 러시아 지재권 법원 판결 분석
'KAI 등 승소' 러시아 지재권 법원 판결 분석
  • 기사출고 2014.10.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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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de Lex]
얼마 전 상고심에 해당하는 러시아 지적재산권 법원이 KT-1 항공기의 조종 시뮬레이터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한-러 지재권 분쟁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두산인프라코어에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대목 중 하나는 베른협약의 적용법조에 관한 조항의 해석. 상세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러시아 로펌 Art de Lex에서 국제분쟁 및 분쟁해결 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Artur Zurabyan 러시아 변호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현대의 독점권 보호와 규제에 관한 원리는 1886년 베른협약의 비준부터라고 할수 있다. 특히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베른협약) 제5조를 둘러싸고 협약 비준 이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한 꾸준한 분석과 함께 적용법조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이 협약의 5조의 1, 2항은 다음과 같다.

(1)저작자는 이 협약에 따라 보호되는 저작물에 관하여, 본국 이외의 가입국에서 각 법률이 현재 또는 장래에 자국민에게 부여하는 권리와 이 협약이 특별히 부여하는 권리를 향유한다.

(2)권리의 향유와 행사는 어떠한 방식에 따를 것을 조건으로 하지 아니한다. 권리의 향유와 행사는 저작물이 본국에서 보호되는 지 여부와 관계가 없다. 따라서 이 협약의 규정과는 별도로, 보호의 범위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구제의 방법은 오로지 보호가 주장되는 국가의 법률의 지배를 받는다.

적용법조 놓고 의견 갈려

협약의 내용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특히 2항의 규정에 대해선 두 가지의 상호 반대되는 의견이 있다. 첫 번째는 이 조항은 적용법조가 충돌할 경우 적용되는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라는 의견이다. 표면적으로는 'lex fori(법정지법-소송이 행해지는 나라의 법)' 원칙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두 번째는 '내국민 대우' 원칙에 관한 조항이라는 것인데, 이 말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독점권 보호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불차별 원칙이 적용되고, 준거법에 관한 의미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베른협약 5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이런 해석은 이론적 의미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중요하다. 적절한 관할법원의 선택을 포함해 분쟁 해결 시 준거법을 적용해야 할 여러 이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베른협약의 규정은 우선 관할법원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지재권 분쟁이 러시아 지적재산권 법원에서 다뤄질 때 문제를 야기했다.

베른협약 5조 2항 근거로 들어

분쟁의 요점은 KAI가 만든 KT-1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터 SW의 저작권 침해 여부. 1990년대 중반 맺은 협약을 통해 KAI와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한 러시아 연구소는 KAI가 기술을 도용했다고 보고, 관할법원을 러시아 법원으로 하여 소를 제기했다. 그 근거로 러시아측은 베른협약 5조 2항을 들었다.

이 소송에서 러시아 중재법원은 1, 2심 모두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베른협약 5조에 따라 러시아 중재법원의 관할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상고심인 러시아 지적재산권 법원은 두 한국 회사에 500억원 규모의 연대배상을 명한 2심 판결을 변경했다.

지재권 법원 판결을 분석해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베른협약 5조는 논리적으로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독점권 발생국가 이외의 지역에서의 보호에 관한 내용을 규율하는 1, 2항과 독점권 발생 국가 내에서의 법적 보호에 대해 규율하는 3, 4항이다.

또 2항은 준거법에 관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이 조항에 따라 적용할 법을 선택할 수 없고, 외국에서 발생한 지적재산권에 관해 외국인 권리자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는 '내국민 대우' 원칙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의 학설들과 법적 연구결과들을 통해 추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WIPO 지침도 같은 입장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지침(Guide)에 따르면, '법적 분쟁에 대해 말하면, 저작자가 권리의 위반에 대해 소를 제기하려면 위반이 발생한 국가의 법원을 선택해야 한다. 또 저작자는 피고의 재산이 위치해 있는 국가의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때 법원은 적용법조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국제사법규범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지침은 베른협약 5조 2항이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또 인터넷 지적재산권 문제에 관한 조사 (Intellectual Property on the Internet : A Survey of issue)에서도 WIPO는 베른협약에 준거법에 관한 조항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은 세계 유명 전문가들 사이에서 또 나누어진다. Bernt Hugenholtz 교수와 Thomas Dreier 교수는 본인들의 연구인 'Concise European Copyright Law'에서 베른협약 5조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내국민 대우'에 대한 내용이 베른협약의 지적재산권 보호시스템의 근본적인 틀이라고 볼 수 있고, 5조 2항은 적용법조 선택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유럽연합 규정에서도 확인

이러한 입장은 2007년 7월 11일 제정된 유럽연합의 규정에서도 확인된다. 이 규정의 전문 15항을 보면 'lex loci delicti commissi(위반한 곳의 법)' 원칙이 비계약의무의 기본내용이라고 나와 있다. 직접적 피해에 대해서는 'lex loci damni(피해가 발생한 곳의 법, 제16항)'가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신체적 또는 재산적 피해가 생긴 경우 이러한 피해가 생긴 국가에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6항 전문과 이 규정 8조에서는 적재산권의 위반에 따른 결과로 생긴 비계약의무의 권리는 '보호에 대한 요구(lex loci protectionis)' 원칙에 따라 비계약의무가 발생한 국가의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내국민 대우'기본 시스템 규정

유럽사법재판소는 Tod's 사건에서, '명백히 베른협약 5조는 적용법조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국민 대우에 대한 기본 시스템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할법원 선택의 기본원칙 즉, 사건의 발생, 피해를 준 곳에 관할이 있다는 것은 민사 및 상사에 관한 재판관할과 판결의 집행에 관한 EU, EFTA 협약 제5조 3항에서 확인된다(1988.9.16. 루가노). 브뤼셀협약 제5조 3항, 그리고 2000년 12월 22일에 제정된 유럽연합규정에서도 확인된다.

다시 러시아 사건으로 돌아와 보면, 베른협약 5조에 적용법조에 관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지재권 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지재권 법원은 다섯 번에 걸친 재판 결과, 1심과 항소심에서는 베른협약 5조 2항의 해석을 통해 러시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으나 이것은 잘못되었고, 협약의 뜻과 반하는 내용이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러시아와 한국의 변호사들이 2인 자전거를 타듯 긴밀한 협력(tandem)을 통해 대리한 결과, 지재권 법원은 한국기업들의 입장을 납득하고 한국기업들에게 유리하게 판결했다. 하급법원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다시 심리하도록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독점권 보호의 '내국민 대우' 규범으로의 접근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19세기에 체결된 국제협약의 명확한 의미는 국제 혹은 국내 법원의 해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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